'괴물' 류현진의 메이저리그행이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갔다.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원소속팀 한화는 12일에 입찰 구단을 밝힐 예정이었지만, 각종 언론보도와 SNS 등을 통해 류현진의 LA 다저스행이 알려졌다.

류현진의 메이저리그행이 고무적인 이유는 당초 우려했던 것과 달리 포스팅 시스템에서 류현진에게 관심을 나타낸 구단이 많았다는 것과 입찰액이 무려 2573만 달러(한화 약 280억 원)에 이르는 매머드급 계약이라는 점이다. 이는 메이저리그 포스팅 시스템 역사상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그동안 마이너리그를 거쳐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사례는 있어도, 한국 프로야구에서 곧장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사례는 전무했다. 류현진이 한국 최고의 투수이기는 해도 미국 무대에서는 무명에 선수이기에 과연 제대로 된 배팅을 할 만한 팀이 있겠느냐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야구 전문가들도 류현진의 몸값을 두고 '많아야 1000만 달러 내외' 정도로 예상했다. 이보다도 더 낮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입찰액은 예상을 뛰어넘는 액수였다.

물론 포스팅 금액과 류현진이 구단과 계약 시 직접 받을 연봉은 별개지만, 이번에 공개된 류현진의 입찰액은 선수 개인의 수준과 한국야구의 위상이 높게 평가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코리안 특급'의 향수가 남아 있는 LA 다저스

 한화 류현진 투수

한화 류현진 투수 ⓒ 연합뉴스


무엇보다 류현진을 가장 원한 팀이 바로 LA 다저스라는 점도 반가운 부분이다. LA 다저스는 이미 최초의 메이저리거인 코리안특급 박찬호의 첫 소속팀이었다는 점에서 국내 팬들에게 친숙하다.

박찬호는 1994년 LA 다저스에 입단해 2001년까지 활약하며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선발투수로 자리매김했다. 전성기였던 1997년부터 2001년까지 5년간 무려 75승을 거두기도 했다 투수 친화적인 LA 다저스 스타디움과 당시 다양한 국적의 유망주들에게 고루 기회를 주려던 구단의 리빌딩 정책은 박찬호에게 호재로 작용했다.

박찬호 선발경기를 보려고 새벽마다 한국의 시청자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텔레비전 앞을 지켰고, IMF로 휘청거리던 암울한 사회 분위기 속에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 무대를 호령하는 박찬호의 활약은 국민적 자긍심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LA 다저스 역시 '박찬호 효과'로 관중 동원과 한국 마케팅에서 짭짤한 이익을 거뒀다. 박찬호는 2008년에 중간 계투로 LA 다저스에 깜짝복귀해 다시 활약하기도 했다.

LA 다저스에는 아직 박찬호의 활약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이 류현진의 입단을 바라보며 박찬호의 향수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부분이다. 메이저리그 진출 당시의 박찬호가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었다면, 류현진은 이미 완성형 투수에 가깝다. 메이저리그와 한국 프로야구의 수준 차이를 감안한다고 해도 류현진의 풍부한 프로 경험과 침착한 완급 조절 능력은 당시의 박찬호에 비해 비교우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더구나 LA는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대도시며 한인 교민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LA 다저스에서의 활약상에 따라 류현진이 전국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기회가 늘어난다. 만일 류현진이 홈 경기에 등판할 때마다 현지 교민들의 열광적인 응원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은 그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비즈니스에 강한 LA 다저스 역시 류현진으로 인한 마케팅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류현진, LA 선발 꿰찰 수 있을까

LA 다저스는 1988년 이후 24년째 월드시리즈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박찬호도 LA 다저스 소속 시절 두 차례(1996·2008년)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지만, 정작 선발투수로 전성기를 구가할 때는 소속팀이 부진해 한 번도 기회를 잡지 못했다. 2013 시즌 명예회복을 노리고 있는 LA 다저스에게 류현진의 영입은 우승을 위한 투자의 일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류현진이 입단 첫해부터 LA 다저스 선발진의 한 자리를 꿰차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LA 다저스는 전통적으로 '투수 왕국'으로 불린다. 선발 마운드는 지금도 탄탄하다. 2012 시즌 14승 9패와 평균자책점 2.53을 기록한 왼손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를 필두로 크리스 카푸아노(12승 12패)·채드 빌링슬리(10승 9패)·애런 하랑(10승 10패) 등 두 자리 수 승리를 거둔 선발투수만 4명이다. 여기에 조시 베켓(7승 14패)과 테드 릴리(5승 1패) 등 검증된 수준급 자원들이 있다. LA 다저스는 지난 시즌 팀 평균자책점 3.34로 워싱턴 내셔널스(3.33)에 이어 내셔널리그 2위에 올랐다. 선발진 평균자책점도 3.41로 워싱턴 내셔널스(3.40)에 이어 2위다.

현재로서는 검증된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류현진의 공이 메이저리그에서 얼마나 통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하지만 유리한 부분은 LA 다저스 스타디움이 투수 친화적인 구장이라는 점, 커쇼 이외에 확실한 좌완 선발요원이 부족하다는 점 등이다. 커쇼와 빌링슬리를 제외하면 선발 요원은 대부분 30대 중·후반으로 평균 연령이 높은 편이다.

몸값도 중요한 변수로 꼽힌다. 류현진의 연봉이 어느 정도가 될지는 몰라도, 포스팅 입찰액만으로 살펴봤을 때 이미 LA 다저스가 류현진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메이저리그는 철저한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비싼 몸값을 들인 선수일수록 충분한 기회를 보장하는 곳이 메이저리그다. 20대 중반이지만 국내 프로야구와 올림픽·WBC 등 각종 큰 무대를 거치며 담금질한 경험, 선발투수로서 검증된 완급 조절 능력, 위기에 흔들리지 않는 침착한 정신력 등은 류현진에게 메이저리그라는 새로운 무대에서 위축되지 않을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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