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배우 독고영재를 사칭한 한 트위터 이용자가 올린 글이 논란이 됐다.

9일 배우 독고영재를 사칭한 한 트위터 이용자가 올린 글이 논란이 됐다. ⓒ 트위터 화면 캡쳐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혹은 트위터)에 한 연예인에 대한 글이 올라온다. 기자가 해당 글을 발견한다. 기사화가 된다. 여타 매체가 비슷한 기사를 생산한다. 포털 검색어 순위에 등장한다. 후발 매체들이 앞다퉈 기사를 쓴다. 그제야 확인 혹은 해명 기사가 뜬다. 검색어 순위가 하락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잠잠해진다.

인터넷 포털을 중심으로 활황 중인 이른바 '게시판 저널리즘'과 '경마 저널리즘의 결합'. 9일 인터넷을 달궜던 '독고영재 트위터' 오보 사태는 그간 온라인을 중심으로 형성된 언론의 선정성과 무책임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해프닝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오보 사태에 책임은 지는 이는 없다. 남은 것은 당사자들을 할퀴고 간 날선 언어 뿐.

9일 오전 한 경제지는 '독고영재, "안철수, 어느 별에서 왔니?" 논란'이란 기사를 게재했다. 배우 독고영재가 8일과 그 이전 자신의 트위터에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철수․문재인 대선후보를 비방하는 글을 게재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논란을 빚고 있으며, 독고영재가 예전 드라마 출연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영광'이란 발언을 한 바 있다는 것이 그 기사의 요지였다.

트위터 안 한다는 독고영재와 게시판 저널리즘이 블러온 시트콤

최초 기사가 나간지 몇 시간 후인 9일 오후부터 다른 매체들이 유사한 기사를 양산해내면서 결국 배우 독고영재는 검색어 1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다. 지난 선거에서 여당을 지지했던 독고영재의 정치적 성향과 트위터에 게재된 원색적인 비난이 결합되면서 논란은 일파만파 커졌다. 트위터는 물론 최초로 기사를 쓴 경제지 기자가 참고했던 온라인 게시판에서까지 독고영재 트위터 계정의 진위 여부가 도마 위에 올랐다.

하지만 9일 저녁 <오마이스타>의 '독고영재 직접 해명, 문재인 비난? "사실 아닌 사칭"'과 같은 확인 기사가 보도되기 전까지, 유력 일간지를 비롯한 각종 매체가 엇비슷한 내용의 기사로 도배됐다. 이른바 한탕식 '경마장 저널리즘'의 재림. 오히려 해당 온라인 게시판엔 독고영재의 트위터가 프로필 사진을 바꿨다며 사칭 의혹이 제기됐지만, 수 시간이 지난 뒤에도 이러한 기사들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SNS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독고영재는 "이런 일이 종종 있었다. 내가 이런 발언을 할 만한 사람으로 보니까 일이 난 것 같다. 내 정치적 성향을 보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말을 인터넷에 올린 적도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9일 밤 이후 독고영재를 사칭한 트위터 계정은 없어진 상태. 하지만 독고영재가 글을 쓴 것으로 적시한 기사들과 또 그 기사에 담긴 사칭 계정에 적시된 정치인들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 내용은 여전히 해당 언론사 홈페이지와 포털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누리꾼이 비웃는 오보의 책임은 누가 지나?

 미실의 남편인 세종(독고영재)

배우 독고영재 ⓒ MBC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사진들이 하나의 기사로 인정받는 시대에 벌어진 참극. 지금 당장 포털에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을 검색해 보자. 하루에도 수십개에 이르는 기사가 쏟아지는 것은 물론이요,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만 쓰면 나도 기자'란 비아냥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개됐다'는 기사의 주체는 누구일까.

다시 독고영재 트위터 오보 사태를 보자. 본인 확인을 위해 전화 한 통만 했다 해도 독고영재 본인이나 대권 주자들이 상처를 받을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으리란 사실은 두말 하면 잔소리다. 해당 트위터 글 외에 그간 사칭 계정에 올라온 글을 꼼꼼히 살펴봤다면, 원색적인 글과 편파적인 정치성향의 리트윗글이 넘쳐나는 그 계정이 연예인의 것이라고 보기엔 심각한 수위라는 것 또한 불 보듯 뻔하다.

그런 글을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최초 보도한 그 기자와 데스크는 순진한 걸까, 게으른 걸까. 설상가상으로 '진실 VS 허위'란 수사까지 동원하며 후속 기사를 양산해낸 매체들의 행태는 블랙코미디나 시트콤이 따로 없다.

하지만 그 누구도 책임은 지지 않는다. 심지어 오보에 대한 정정 기사도 찾아 볼 수 없다. 대선 정국이란 점을 악용한 사기 트위터 계정에 놀아난 언론들. 오히려 최초 기사가 참조한 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해당 기자와 언론사를 비웃고 있을 정도다.

대선 구도가 가열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러한 트위터 사칭 사건이 또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연예인의 정치참여 그 자체만으로도 논란이 되는 분위기 속에서 독고영재와 같은 피해자가 속출하는 보도 환경은 코미디를 넘어선 비극이다.

연예 담당기자나 이슈팀 기자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절대 끊지 못하리라는 점은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안처럼 당사자들을 할퀼 수 있는 보도의 경우, 사실 확인이란 최소한의 성의를 보일 필요가 있다. 아니, 이것은 성의의 문제가 아닌 '기본적 도의' 차원이다. 더욱이 '정치적 견해'에 대해서 민감할 수밖에 없는 시절이지 않나.

독고영재 트위터 사칭 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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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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