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싱글맨>은 사랑의 본질을 조금 더 깊게 조각한 영화다.

영화 <싱글맨>은 사랑의 본질을 조금 더 깊게 조각한 영화다. ⓒ 스폰지이엔티

영화 <싱글맨>, 1962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영상미 보다 대사가 흥미롭다.

"내 미래는 과거에 있어." 주인공 조지(콜린 퍼스)와 이웃이자 친구인 살롯(줄리언 무어 분)이 무심코 던진 말이다. 이 대사는 홍상수 감독의 2004년작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가 떠오르게 한다. 가령 인간들이 서로의 관계 속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찾듯이 말이다.

그럼 이 영화 주인공 조지는 어떤 사람인가? 대학교 문학과 교수다. 스탠퍼드 대학교로부터 교수직 제안을 받을 정도로 실력파다. 게다가 모던한 단층집과 정원을 갖춘 자택, 깔끔한 양복과 넥타이, 이탈리아산 정장구두를 신고 벤츠 리무진으로 출퇴근하는 그의 주변은 완벽하다.

조지의 겉모습은 훌륭하다. 그런데 그의 내면은 상실과 피폐, 이를 그 누구에게도 말도 못하고 완벽함을 유지하고자 바둥거리는 불쌍한 사람이다. 그는 애인 짐(매튜 구드 분)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 상실감에 빠져 사는 동성애자이기 때문이다.

영화 장면이 이 정도까지 나오면 '배가 부른거 아냐? 이 영화 왜 이래?'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스토리가 간단치 않다. 이를테면 흔히 말하는 사랑이란 보편적이고 일반화된 모습이지만 수녀님과 신부님이 하느님과 온 인류를 사랑하듯, 남녀관계뿐 아니라 남자끼리, 혹은 여자끼리 사랑은 68운동이 지나 20세기 말이 되서가 겨우 공인됐다.

사랑이라는 것

결국 사랑은 모두에게 적용되는 단어이자 모든 인간관계의 시작과 끝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 싱글맨은 위 같은 이야기들이 금기시 되던 1960년대임을 감안하면 주인공 조지의 애환과 아픔을 다소나마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앞서 소개한 조지와 샬롯은 영국에서 알고지낸 죽마고우다. 미국영화 <해리와 셀리가 만났을 때>(1983) 장면들을 기억하자면 "무릇 남녀사이에는 섹스 빼고 우정이란 없다"라고 봐야 맞는데 이들은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다. 어쩌면 이혼녀 살롯이 가장 사랑한 남자는 죽마고우 조지였지만 정작 조지가 사랑하는 대상은 남성이라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사랑은 보편타당한 자연스러운 관계의 시작이다. 그렇지만 그걸 인위적으로 거부하고 말조차 못하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힘겹고 고통스러운 형태가 사랑이다. 결국 연인을 잃은 조지는 자살로 귀결되길 바랬던 것 같다.

왜 죽을려고 했을까? 영화 속 장면들을 돌이켜보면 이렇다. 조지는 연인 짐이 사망하고 그의 사촌으로부터 부고를 연락받지만 "가족들만 장례식을 치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절망하고 그러면서도 당연하고도 태연한 척하면서 "아, 예, 그렇군요"라고 대답해야만 하는 사람의 입장이란 참으로 기구한 삶이기 때문이다.

변화, 그리고 변하지 않는 것들

사막에서 짐과 함께했던 조지 동성애자 조지의 연인 짐과 사막으로 밀월여행 중 한 장면. 영화 <싱글맨>의 주인공 조지는 짐을 만나고부터 사랑도 없는 황량한 사막에서 꽃을 발견한 편안함을 느낀 것 같았다.

▲ 사막에서 짐과 함께했던 조지 동성애자 조지의 연인 짐과 사막으로 밀월여행 중 한 장면. 영화 <싱글맨>의 주인공 조지는 짐을 만나고부터 사랑도 없는 황량한 사막에서 꽃을 발견한 편안함을 느낀 것 같았다. ⓒ 스폰지이엔티


케네디 대통령 재임시절, 쿠바 사태로 미국과 소련이 긴박한 상황으로 치닫던 당시를 조명한 이 작품을 관통하는 모습은 하나다. 정치·사회·경제가 무엇이건 간에 사람과 관계하는 한 사람의 삶은 '사랑' 하나로 희비가 엇갈린다는 것이다.

이 영화 주인공 조지의 운명이란 곱씹어보면 스스로 선택한 삶이 아니다. 그의 일상이란 그저 물 흐르는 대로 살아왔고, 자기 정체성에 대해 무엇 하나 만족스럽게 정의내린 적도 없는 데다 무료한 것을 뛰어넘어 죽음만도 못한 삶을 살았다.

조지에게는 남들도 다하는 그 흔한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기 때문에 화려하고 수려한 겉모습과 달리 내면은 마치 사하라 사막과 같은 모습이었고, 그 사이에 발견한 꽃이 동성애자 짐이다. 하지만 그는 고향집을 방문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렇게 해서 연인 짐이 사라진 뒤 조지는 오아시스도 없는 사막 한 가운데에 버려졌다. 그럼 어떻게 해야만 할까. 한 때 유명했던 목사처럼 사고를 치고 가던 길을 멈춘 채, 천주교와 불교로 갈아타면서 삶의 목표를 수정하는 게 나아보일까. 아니면 나름의 인맥을 구축하고 정계에 관여하며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사는 게 나을까.

알고보면 변화는 늘 존재했다. 겉은 그렇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원작소설을 영화화 한 <싱글맨>은 변화보다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헤쳤다. 다시 살롯이 한 대사가 생각난다. "내 미래는 과거에 있어." 미래와 현재, 그리고 과거는 이렇듯 하나의 실타래로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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