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바비>에서 망택 역의 배우 이천희가 17일 오후 서울 역삼동 판타지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미소를 짓고 있다.

영화<바비>에서 망택 역의 배우 이천희가 17일 오후 서울 역삼동 판타지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미소를 짓고 있다. ⓒ 이정민


요즘 배우 이천희가 독해졌다. 그동안 예능 프로그램 <패밀리가 떴다> 혹은 케이블 방송 <아드레날린>에서 나타낸 소탈함과는 달리 작품에서만큼은 거칠고 패륜적인 모습을 보이기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곧 관객과 만날 이상우 감독의 신작 <바비>에서도 그랬다. 포항의 작은 마을인 구룡포에서 벌어진 한 가정의 불행한 서사를 표현한 작품에서 이천희는 형과 조카를 학대하고 구박하는 못된 동생, 못된 삼촌으로 등장했다.

처음엔 두려웠던 <바비>와의 만남

 영화 <바비>의 한 장면.

영화 <바비>의 한 장면. ⓒ 미로비전


공식석상에서도 밝혔듯 이천희는 이상우 감독과의 만남을 주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상우 감독은 그동안 <엄마는 창녀다> <아빠는 개다> 등으로 한국 영화에 말 그대로 파격을 던진 인물. 인간의 강한 욕망을 파격적인 장면으로 표현하는 이 감독과의 작업은 기성배우인 그로선 분명 부담스러울 법했다. 

"고민은 그거였죠. 감독님의 전작을 봤는데 '<바비>도 전작처럼 파격일까?'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고요. 얘기하고자 하는 게 확실했어요. 감독님을 만나기 전까진 이상한 분일 거 같다는 생각이었는데 실제로 보니까 좋더라고요."

16일 만에 16회분 촬영. 영화 <바비>는 그렇게 탄생했다. 배경이 된 포항 구룡포의 한 마을에서 감독과 스태프, 배우들은 말 그대로 합숙했다. 

"사실 굉장히 힘들었죠. 씻는 것도 문제였고요. 스태프들이 잘 견뎌줬어요. 짐 싸서 나가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웃음) 저예산 영화라 돈도 많이 들이진 못하는데 열정으로 찍은 거예요. 저도 사실 '한류스타, 에이급 스타가 될 거야'라는 마음보단 지금에 만족하고 있어요. 연기가 아닌 생활적인 면에서도 연기자로 사는 인생이 좋아요.

감독님은 더 세게 가자고 했지만 전 그래도 관객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막 나가면 이해할 수 없잖아요. 적어도 인간다움은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했죠. 그 조율과정이 조금 힘들었죠. <바비>에서 삼촌 망택이는 상황이 만든 악함이라 생각했어요. 태어날 때부터 악한 사람이 있을까요? 사람을 그렇게 만든 환경이 문제인 거죠."

 영화<바비>에서 망택 역의 배우 이천희가 17일 오후 서울 역삼동 판타지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바비>에서 망택 역의 배우 이천희가 17일 오후 서울 역삼동 판타지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이천희가 바라본 <바비>, 이렇게 해석했다

입양을 가장한 장기 밀매. 영화 <바비>는 1980, 90년대 실제로 국내에서 자행됐던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조카의 장기를 돈 받고 팔아넘기려는 삼촌과 영문도 모른 채 싸우는 두 자매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와 가족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입양 문제와 장기 밀매도 다루고 있지만 결국 주제는 가족 같아요. 외국에서도 번번이 일어나는 일이잖아요. 인간이 인간을 팔아넘기는 현실을 각성해야죠. <바비> 역시 많은 사회 운동 중 하나일 수 있어요. 우리 주변 가난한 이웃들 이야기를 짚어볼 수 있고요.

정신 지체 아버지인 망우(조용석)와 그의 동생 망택이도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순영이(김새론)와 순자(김아론)도 그렇고요. 혼자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 없었죠. '서로 이용하려고만 하는 저들은 과연 행복할까? 이 가족은 어쩌면 뭉쳐서 살 수 없는 운명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어요. 가족 영화죠. 결국은."

 영화<바비>에서 망택 역의 배우 이천희가 17일 오후 서울 역삼동 판타지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며 미소짓고 있다.

영화<바비>에서 망택 역의 배우 이천희가 17일 오후 서울 역삼동 판타지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며 미소짓고 있다. ⓒ 이정민


<바비> 이천희, 그는 영화계 소중한 배우

이천희는 개런티를 받지 않고 <바비>에 출연했다. <바비>와 함께 곧 개봉할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에서도 마찬가지다. 두 작품에서 강한 느낌의 악역 캐릭터를 맡았던 이천희에겐 분명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법했다.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좋아요. 앞으로도 계속 배우할 건데 흥행 하나에 목숨을 걸 필요가 있나 생각도 들어요. 숲을 보면 잎이 뾰족한 나무도 있고 넓은 나무도 있고 다양한 나무들이 모여 하나의 환경을 이루잖아요. 각자의 성향과 특성이 있는 거니 누가 옳은 거고 좋은 건진 모르는 일이죠.

사람들은 연예인, 스타라고 하면 다들 비슷하게 인기에 반응하며 살겠지 생각하는데 제가 그런 가치가 중요했다면 결혼도 안 했을 거고, <바비>는 찍지도 않았을 거예요. 제 필모그래피 중에 코미디가 없는데 이상하게 작품의 재미만 가지고는 선뜻 선택을 못 하겠더라고요. 마음 편히 웃고 가는 것도 좋겠지만 2시간을 관객들이 의미 있게 쓰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코미디도 어렵고요."

이천희가 모델로 데뷔한 이래 영화 <바람난 가족>(2003) 이후 걸어온 발자취를 기억하자. 화려한 스타 배우로 발돋움하진 않았지만 상업 영화, 드라마와 함께 유독 그는 TV 단막극, 저예산 영화에 꾸준히 출연했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이천희의 존재감이 희미하다며 비판 아닌 비판을 한 기사는 이천희의 진가를 잘못 짚은 시각이라 할 수 있겠다.

 영화<바비>에서 망택 역의 배우 이천희. 17일 오후 서울 역삼동 판타지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미소짓고 있다.

영화<바비>에서 망택 역의 배우 이천희. 17일 오후 서울 역삼동 판타지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미소짓고 있다. ⓒ 이정민


수많은 배우가 존재하는 연예계 역시 하나의 환경이라면 다양한 결을 지닌 배우가 존재하는 게 그만큼 건강한 조건이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바비>와 <남영동 1985>를 통해 그의 진가를 새삼 확인하자. 인터뷰 중간에 남긴 그의 말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바비>나 <남영동> 이런 영화는 모든 사람이 다 봐야 한다고 말하기보다 보실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어요. 영화가 제기하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각성할 수 있다면 미성년자든 아이든 어른이든 상관없다고 봐요. 많은 분이 보는 것보단 보시는 분들이 많은 걸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특히 정치인분들은 밑바닥 서민의 삶을 잘 알지 못할 수 있잖아요. 다 잘 사는 나라가 아니고 그 격차도 너무 심한 우리나라인데 그런 곳에서 모든 사람들이 적어도 희망을 갖고 행복을 꿈꿀 수 있게 하는 게 그분들의 몫이라고 봐요. 저 같은 배우야 그런 변화를 꿈꾸며 영화를 찍는 거고요. 그런 분들이 좀 영화를 보셨으면 좋겠네요."

이천희 바비 김새론 김아론 이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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