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났다. 지난 10년동안 그럴만하다고 생각한 영화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스스로를 버리면서까지 자신에게 따뜻함을 주었던사람을 지켜주고 싶은 그 지극에 가슴 한복판으로 뜨거움의 줄기가 흘러내렸다. 부모와 자식 관계를 제외하면 절대적 사랑같은 것이 있는지 의심하는 나조차도 사람에 대한 사랑이 이토록 절절할 수 있는지, 이런사랑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선(이요원)의 따뜻한 마음에 사랑을 키우는 석고(류승범).

화선(이요원)의 따뜻한 마음에 사랑을 키우는 석고(류승범). ⓒ K& 엔터테인먼트


그냥 사랑 이야기면 이런 감동은 어림도 없다. '골드바흐의 추측'을 푸는 것을 오직 필생의 업으로 삼았지만, 그 성공에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머리는 예전 같지 않아 삶의 의미를 잃고 생을 마감하려는 천재 수학자 석고(류승범). 그의 삶에 왜 나의 삶이 우리 보통 사람들의 삶이 겹쳐 보이는 걸까? 모두들 각자 삶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지만 늘 높은 사회의 벽 앞에 미끄러져 허우적대는 우리의 모습들 말이다.

그 깊은 절망의 골짜기에 나타난 이웃집 여자 화선(이요원)과 그녀의 조카(김보라). 그들이 가져다준 이사 이바지 음식과 따뜻한 미소가 석고에겐 삶의 구원이 된다. 화선의 모습에서는 늘 폭력이 도사리는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그 폭력을 피하기 위해 발버둥치기도 하고, 때론 경제력 있는 남성에게 의지하기도 하지만 올곧게 살아가려고 생존을 위해 끈질기게 살아가려는 애련한 여성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결혼에 실패하여 상처를 입은 삶이지만 조카와 오손도손 살아가며 작은 행복을 쫓으려고 노력하는 그녀에게 나타난 전 남편, 그리고 이어지는 폭행과 성추행이 낳은 우발적인 살인.

 나약해 보이지만 강한 생존력을 지닌 여성을 연기한 이요원.

나약해 보이지만 강한 생존력을 지닌 여성을 연기한 이요원. ⓒ K& 엔터테인먼트


석고는 사건을 300년 가까이 누구도 풀지 못한 '골드바흐의 추측'처럼 만들어 경찰이 범인을 찾지 못하는 미궁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것에 말려드는 경찰의 모습들을 보면서 마치 수학공식 같은 세상의 모든 형식논리들을 조롱하고 그런 형식논리에 지배당하는 세상의 모습을 풍자하는 듯하여 재미가 더해졌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 사람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사랑이 뒤덮으면 결함이 실수가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석고와 화선은 석고의 고교 동창인 집요한 베테랑 형사 민범(조진웅)에게 마음을 들키고 만다.

 배테랑 형사를 연기한 조진웅

배테랑 형사를 연기한 조진웅 ⓒ K& 엔터테인먼트


자신이 죽으려는 순간, 세상의 따뜻함을 알게 해준 화선과 조카를 끝까지 지켜주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행한 석고. 화선의 전 남편 살인범으로 자수하는 그에게 사랑은 이게 아니라며 사랑에는 그런 것이 의미 없다며 절규하듯 다그치는 민범. 자신들을 지켜주기 위해 아무 것도 바라지 않은 채 맹목적인 마음을 쏟으며 감옥으로 향하는 석고를 향해 울부짖는 화선.

감독은 미제사건을 만들려는 석고와 사건을 해결하려는 민범의 대결을 통해 극의 팽팽한 긴장감을 보여주면서 사실은 상처받고 좌절하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마음과 그 마음들이 만들어내는 심리적인 갈등을 더 잘 담아내고 있는 것 같다.  

 맹목적인 사랑의 마음을 지닌 천재 수학자를 연기한 류승범.

맹목적인 사랑의 마음을 지닌 천재 수학자를 연기한 류승범. ⓒ K& 엔터테인먼트


이요원과 류승범의 연기 변신도 좋았다. 이요원은 남성의 폭력에 익숙하지만 또 그것에 벗어나려는 생존의 존엄을 지키고 싶어하는 여성의 모습, 살인 후 경찰 수사 기간 동안 불안해하는모습과 석고에게 퍼붓는 불안한 마음의 폭발, 여린 모습이지만 강한 생명력을 지닌 여성을 모습을 잘 표현한 것 같다. 류승범은 기존 역할과 다르게 서생 같은 외모를 지녔지만 철두철미하게 논리에 따라 행동하고 사랑하는 그래서 더 흠뻑 빠져드는 잔인함과 맹목성을 감춘 수학자의 모습을 잘 표현했다.
아, 사랑이여 대체 너는 무엇이냐? 

용의자X 방은진 류승범 이요원 조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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