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위험한 관계'는 사랑을 게임과 비즈니스로 만들어 버리는 자본주의적 사랑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영화다.

 셰이판(장동건)은 모지에위(장백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기 위한 게임을 시작하는데....

셰이판(장동건)은 모지에위(장백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기 위한 게임을 시작하는데.... ⓒ 데이지엔터테인먼트


게임은 여고생에게 반한 상하이 최고의 부자한테서 남성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살아남은 사업가 모지에위(장백지)가 차이면서, 플레이보이기업가 셰이판(장동건)이 그런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려고 시도하면서 시작된다.

고풍스럽고 우아한 음악이 흐르는 셰이판의 화려한 호텔에서 상류계급의 자선행사를 여는 모지에위. 그녀는 상하이 최고의 부자가 여고생과 결혼하려는 조건에는 처녀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셰이판에게 여고생의 처녀성을 빼앗아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그는 너무 어린 그녀에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지만, 호텔의 음식들을 거리의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따뜻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에게는 거리를 두려고 하는 뚜펀위(장쯔이)를 목표물로 삼는다. 그리고 내기를 한다. 뚜펀위와 자는데 실패하면 셰이판은 자신의 땅을 모지에위에게 주고, 성공하면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되는 것으로.

 셰이판(장동건)은 뚜펀위(장쯔이)와 하룻밤을 위한 게임을 벌이지만 오히려 진심으로 사랑에 빠져들고....

셰이판(장동건)은 뚜펀위(장쯔이)와 하룻밤을 위한 게임을 벌이지만 오히려 진심으로 사랑에 빠져들고.... ⓒ 데이지엔터테인먼트


우리는 왜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이 다른 사람을 선택했을 때, 모지에위처럼 행복한 사랑을 하라고 박수치면서 보내주지 못할까? 그건 사랑하는 대상과 상대방의 감정 마저 자신의 소유물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한 자본가가 노동자들에게 임금으로 지불하지 않은 노동으로 생산한 잉여가치가 포함된 상품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는, 또 그렇게 해서 축적된 자본을 자신들의 고유한 재산으로 생각하는 관념이 사랑에 까지 확산되어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다.   

셰이판은 늦은 밤 자신이 일부러 고장 낸 뚜펀위의 방 전등을 갈아 끼워주면서 가벼운 터치로 그녀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바람둥이라는 소문 때문에 그녀가 계속 도망가려 하자, 진지함을 담은 편지를 끈질기게 보내면서 마음을 빼앗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녀가 그의 입술을 받아드리려고 하는 순간, 마음이 없는 듯이 무시하는 고난위도의 '밀고 당기기' 기술을 선보이며 사랑에 게임의 원리를 적용한다. 끝내 그녀와 잠자리를 하고 사랑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한다.

이건 영화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의 사랑도 게임의 법칙이 지배한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진지하게 고백하고 다가가면 오히려 가슴에 빗장을 걸고 도망간다. 아니면 그냥 선물이나 주고 밥이나 사주는 곁에 있어 좋은 사람으로서 호구(provider)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마음 있는 척 다가섰다가 상대방이 호감을 표현하면 마음 없는 척 무시했다가, 좀더 깊은 터치와 표현으로 더 깊게 끌어들이는 왜곡된 소통을 해야 사랑을 얻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게임처럼 해야 차이지도 않으며 사랑도 길게 지속된다. 마음을 담은 말과 행동이 투명하게 전달되지 않는 것도, 셰이판이나 모지에위처럼 '나쁜 남자' '나쁜 여자'가 사랑의 권력을 갖는 것도 자본주의라는 거꾸로 선 사회가 빚어낸 것이다. 상품이라는 것에 자본과 임금노동이 맺는 관계는 보이지 않고, 얼마짜리 가격으로만 인식되고, 그 가격을 갖게 한 노동자들이 쏟아 부은 노동시간이 만들어낸 가치는 은폐되고, 아이폰에 오직 스티브잡스의 얼굴을 떠오르고 직접 공장에서 만드는 팍스콘 노동자들은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일자리와 삶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려는 자본가와 끊임없이 임단협 테이블에서 협상하듯, 사랑에도 그런 게임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플레이보이 사업가를 연기하며 옴므파탈의 모습을 물씬 풍긴 장동건.

플레이보이 사업가를 연기하며 옴므파탈의 모습을 물씬 풍긴 장동건. ⓒ 데이지엔터테인먼트


게임의 결말은 모두에게 불행을 가져다 줄 뿐이다. 셰이판이 뚜펀위에게 다가갈 때 바람둥이라고 조심하라면서 방해한 엄마에 대한 보복으로 그에게서 처녀성을 빼앗긴 여고생. 그녀의 결혼을 사회적 지위를 높이려는 수단으로 삼으려는 엄마. 모지에위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기 위해 게임을 시작했지만 오히려 그를 이용한 모지에위의 게임에 말려든 셰이판. 그의 공로로 상해 갑부가 자신에게 다시 돌아왔지만 게임 속에서 진짜 마음을 주어버린 셰이판이 자신의 집에 술 취해 잔 날 뚜펀위를 불러 잔인하게 둘 사이를 떼어 놓는 모지에위. 셰이판의 게임에 걸려들어 죽은 남편을 힘들게 잊으며 모든 마음을 다 주어 사랑했는데, 모든 것이 게임이었다는 말에 충격받아 자살을 기도하는 뚜펀위. 그리고 그녀와 자는 게임에 이겼는데도 잠자리를 같이하는 약속을 지키지 않자 모두 박살내 주겠다고 엄포하는 셰이판을 모지에위는 상해 갑부에게 고등학생의 처녀성을 빼앗은 장본인이라고 알려 암살되게 한다.

 게임의 최종 승자이지만 진정한 사랑을 잃은 잔인한 패배자 팜므파탈을 연기한 장백지.

게임의 최종 승자이지만 진정한 사랑을 잃은 잔인한 패배자 팜므파탈을 연기한 장백지. ⓒ 데이지엔터테인먼트


모지에위는 게임에서 겉으로는 가장 큰 이익을 얻었지만 그녀를 사랑했던 셰이판이 죽는 가장 큰 손해을 입은 피해자중 한 사람이 된다. 셰이판이 생전에 주문했던 아름다운 드레스가 배달되어 입었지만 그가 죽고 없는 현실에 오열하는 그녀. 그런 모습을 사방에 둘러져 있는 단절된 거울에 비추면서 감독은 화려한 겉모습만 쫓는 왜곡된 사랑의 결말을 보여준다. 게임에서 이긴 사람이 얻는 걷은 허울이고, 잃는 것은 진실된 사랑임을.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했지만 장쯔이의 연기가 단연 돋보였다. 일제시기 중국 아이들의 교육사업에 힘쓰고 죽은 남편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정숙한 여인으로 새로운 사랑을 하는데 보수적이지만 사랑하기 시작하면 목숨을 버릴 듯 돌진하는 여성을 잘 표현했다. 셰이판이 다가가자 겉으로는 싫은 듯 밀어내지만 그가 사랑을 고백하며 계속 다가오자 마음 속에서는 이미 사랑을 키우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눈빛에서 표정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묻어났다. 그리고 셰이판이 안고 키스를 하자 몸이 달아올라 자기 옷의 단추를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자신의 손으로 푸는 여성, 밖으로는 드러내지 않지만 농밀한 욕망을 뜨겁게 감추고 있는 여성을 모습을 잘 표현했다. 지금껏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혹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농밀한 욕망을 감추고 있는 그래서 더 치명적인 정숙한 여성을 연기한 장쯔이.

농밀한 욕망을 감추고 있는 그래서 더 치명적인 정숙한 여성을 연기한 장쯔이. ⓒ 데이지엔터테인먼트


장동건의 변신도 좋았다. '친구'와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로는 별로 개성있는 강렬한 연기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연기파로서 개성이 살아난다는 모습을 보여줬다. 장백지도 아름다운 몸과 얼굴을 바탕으로 잔인한 게임을 즐기고 주도하는 영악한 팜므파탈의 모습을 유감없이 뽐냈다.

1930년대 상해 거리의 재현과, 그시절에 맞는 고풍스런 음악들이 훌륭했고, 영상들도 뛰어났다. 

가장 아쉬운 것은 괜찮은 소재와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내용에 감동이 작다는 것이다. 플롯의 형식에 치우친 나머지, 심리의 묘사나 내용이나 언어가 많이 비어 있다. 그래서 건조하다. 그런 부분을 음악과 영상으로 채우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한 면이 많다. 사랑 영화이지만 그렇다고 본격적인 사랑 영화도 아니고, 오락영화인 것 같지만 그렇다고 웃음 많이 주는 것도 아닌 아주 애매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8월의 크리스마스'나 '봄날'이나 '행복' 같은 영화에서 보여줬던 사랑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결여돼 있고, 사랑에 대한 인식의 확장이 없는 것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새로운 그릇은 만들었는데, 새로운 내용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 경향은 '호우시절'부터 나타난다. 허진호 감독이 예전의 그런 진지하고 용기 있는 눈으로 돌아오길 기대해본다. 어쨌든 부산국제영화제,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초청된 것은 축하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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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문제와 기후위기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은 새로운 사회경제체제(사회주의)의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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