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서는 결혼한 여자가 다른 남자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 없습니다, 제발요."

소작농 무랏의 애원에도 지주는 완강했다. 그는 되려 함께 온 외국인 손님 앞에서 버릇없이 행동한다며 아내의 꾀꼬리 같은 노래 실력을 보여줄 것을 강요한다. 결국 지주의 압박에 못이긴 아내 사누발은 남편의 등 뒤에 숨어 노랫가락을 뽑아낸다. 무랏은 모욕감과 분노에 휩싸여 사색이 되지만 노래를 들으며 즐거워하는 이방인들에게 무랏의 '명예' 따위는 안중에 없다. 부부의 소박하고 평화로웠던 삶은 일순간 파괴된다.

 소작농 무랏의 집에 이방인들이 찾아오면서 무랏 부부의 평화로웠던 삶은 깨지기 시작한다.

소작농 무랏의 집에 이방인들이 찾아오면서 무랏 부부의 평화로웠던 삶은 깨지기 시작한다. ⓒ BIFF 홈페이지 갈무리


부산 영화제 찾은 아프가니스탄 영화의 향연

1986년 제작된 아프가니스탄 영화 <이방인>의 스토리다. 전쟁으로 얼룩진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무척 생소하고 낯선 아프가니스탄 영화가 지난 17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아프가니스탄 국립 영상자료원 특별전>이라는 주제로 아프가니스탄을 대표하는 영화 중 6편이 소개됐다. <이방인>의 감독 시디크 바르막 감독은 직접 영화제를 찾아 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아프간 영화에 대한 보다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외부 압력으로 인해 전통과 가치관을 포기해야 했던 무랏이 처한 상황은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의 사회상을 반영한다. 1979년 소련은 아프간 내 공산정권을 지지한다는 명분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소련군과 이슬람반군 사이의 권력투쟁과 내전이 지속되는 동안, 아프가니스탄 사회에는 서구 문물이 유입되고 이슬람 전통은 위협 당한다.

시디크 바르막 감독이 영화를 제작한 1985년 당시 그는 모스크바 영화학교에서 공부 중이었다. 그는 "소련의 침략으로 인해 아프간 사회가 받고 있었던 억압적인 상황과 어려움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영화 제작에 대한 강한 검열과 억압이 있었던 탓에 무랏의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시대가 겪고 있던 이데올로기적 갈등, 동서양의 갈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제작 의도를 밝혔다. 

몰이해가 부른 비극적 종말

등장인물간의 갈등은 서로에 대한 '몰이해'로 인해 결국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이미 한 번 수모를 겪은 무랏에게 지주는 그날 밤 파티에서 아내가 노래할 것을 또다시 강요한다. 결국 아내를 처가에 피신시키기로 하지만 무랏이 밭일을 마치고 돌아온 사이 아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그들이 아내를 데려갔다고 생각한 무랏은 총살을 결심하고 파티장을 찾아간다. 집안에 들어설수록 아내의 노랫소리는 점점 크게 울려 퍼진다. 결국 무랏은 자신의 명예를 더럽힌 이방인들을 처단하지만 무랏 역시 죽음을 당하고 만다.

 지주의 압력으로 아내 사누발이 손님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자 무랏은 모욕감과 분노에 휩싸인다.

지주의 압력으로 아내 사누발이 손님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자 무랏은 모욕감과 분노에 휩싸인다. ⓒ BIFF 홈페이지 갈무리.


무랏의 죽음이 더욱 비극적인 까닭은 파티장에서 들려오던 아내의 노랫소리가 사실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아내는 그들이 오는 모습을 보고 미리 아버지 댁으로 달아난 상황이었다. 새로운 기술이자 서구문물로 대변되는 녹음기의 존재를 무랏이 알 리 없었다. 무랏의 아내에게 노래를 요구하던 지주와 미국인 역시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명예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더라면 애초에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하지 않았으리라.

영화는 당시 아프간 사회가 서구의 침략으로 겪어야 했던 갈등과 전통의 훼손에 대해 간접적으로 전달한다. 동시에 영화는 2012년의 현실에도 동일한 메시지를 던진다. 다양한 문화와 가치관이 공존하는 오늘날, 서로에 대한 몰이해는 여전히 수많은 갈등과 분쟁을 야기하고 있다. 소작농 무랏과 지주와 같이 그 안에 존재하는 권력관계는 강요와 억압을 불러일으키고 이는 영화의 결말처럼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는' 비극적 종말을 낳는다.

영화에서는 비틀즈의 노래와 아프간 전통음악이 미묘한 대비를 이루며 함께 흘러나온다. 둘 중 무엇이 더 아름답고 우월하다고 평가할 수 없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 없이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경쟁의 대상 혹은 열등한 존재로 바라보는 일은 슬프고도 무의미한 일이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이방인으로서 존재할 뿐이니까.

전쟁과 폭력의 역사에서 영화를 지키다

부산영화제에서 선보인 <아프가니스탄 국립영상자료원 특별전>은 사실 아프가니스탄이 아닌 아프간 영상자료원에 대한 특별전이다. 1968년 설립된 아프가니스탄 국립영상자료원 '아프간 필름'은 영화 제작은 물론 영세한 제작사들이 만든 영화를 보관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1992년 이슬람 원리주의를 표방하는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면서 아프간 영화는 모두 소각될 위기에 처하게 됐다.

 지난 9일 부산영화제를 찾은 시디크 바르막 감독이 영화 상영 후 관객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지난 9일 부산영화제를 찾은 시디크 바르막 감독이 영화 상영 후 관객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김희진


시디크 바르막 감독의 영화 <이방인> 역시 그 중 하나였다. 1987년 텔레비전을 통해 일반 사람들에게 첫 공개된 영화는 '영화 이면에 숨겨진 의미가 있다'는 이유로 곧바로 상영금지 선고를 받았다.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상영 허가를 받기는 했지만 탈레반 정권의 엄격한 정책으로 하마터면 불태워질 뻔했다. 그러나 아프간 필름 11명의 직원들이 <이방인>을 비롯한 각종 중요한 기록영화를 보관소 안으로 옮긴 뒤 새로 칠을 하고 포스터를 붙이는 등 은폐 작업을 벌여 정권의 탄압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렇게 살아남은 약 40편의 극영화가 아프간 필름에 보존돼 있다. 부산 영화제에서는 그 중 6편의 영화를 만나볼 수 있다. 전쟁과 폭력, 서구화되어가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낯선 아프가니스탄의 문화와 전통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다. 전쟁이 끝나지 않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아프간 영화는 여전히 폭격의 위협에 방치돼 있다. 부산에서 만난 아프간 영화를 통해 우리는 '영화의 의미'를 발견한다. 전쟁으로 얼룩진 뼈아픈 역사 속에서 목숨을 걸고 지킬 수밖에 없었던 그 위대한 정신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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