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면 MBC <골든타임>은 번번이 시청자의 기대를 저버리곤 했다. 형사와 유괴범이 동시에 응급실에 실려 온 에피소드의 경우, 최인혁 교수(이성민 분)와 이민우(이선균 분)는 입장 차이를 보였다. 유괴범보다 형사를 먼저 수술시켜야 한다는 이민우와 달리 최인혁 교수는 객관적으로 더 위중한 유괴범을 먼저 수술대에 올렸다. 결과적으로 유괴범은 살았고, 형사는 죽었다.

어차피 드라마니까 유괴범을 살린 뒤 위급한 상황에 놓인 형사까지 수술을 통해 살리더라도 이야기 전개에 큰 무리가 없지만 <골든타임>은 그런 드라마적 감성을 허용치 않았다. '모든 생명은 똑같은 무게와 가치를 가진다'는, 의사로서의 마음가짐을 설명하기 위해 이 드라마는 굳이 시청자의 기대를 저버리면서까지 가슴 먹먹한 장면을 연출하곤 한다.

박원국 환자를 소재로 한 에피소드는 또 어떤가. 현실에서 철가방 천사로 알려진 故김우수씨는 사망했지만, 드라마는 박원국 환자를 결국 살려내고야 만다. 하지만 온전히 살려내지는 않았다.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극단의 상황을 만들어 '모든 게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시청자에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나지막하게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현실과 달리 다리를 절단하고 박원국 환자를 살려낸 <골든타임>

현실과 달리 다리를 절단하고 박원국 환자를 살려낸 <골든타임> ⓒ MBC


시청자의 뒤통수 때리는 <골든타임>, 오히려 고맙다

종영까지 불과 1회가 남은 어제 방송도 마찬가지였다. <골든타임>은 끝까지 지나치게 현실적인 묘사로 시청자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골든타임>의 '기대를 저버리는 연출'이 고맙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그렇게 시청자의 뒤통수를 때리는 드라마를 통해 우리의 현실을 한 번 더 되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종영을 향해 달려가는 마당에 해피엔딩을 연출해도 뭐라 할 사람 없건만, 지금껏 해온 대로 끝까지 현실적이었던 이날 <골든타임> 속 몇 가지 장면을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지난 21회에서 황과장의 후배가 교통사고로 심하게 다쳐 세중병원의 응급실로 실려온 장면.  환자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다들 우왕좌왕 하는 사이 이민우는 다른 과장들의 자존심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고 만다. 바로 "최인혁 교수님 부를까요?"하고 내뱉은 것이다.

이민우는 눈치 없는 발언으로 인해 레지던트 선배들에게 한바탕 꾸지람을 듣게 되고, 결국 환자는 한 번의 어레스트(심정지) 위기를 겪은 뒤 수술실로 올라가게 됐다. 흉부외과와 외과에서 누가 수술을 주도할 것이냐를 두고 시간을 잡아먹는 사이 환자의 고관절이 탈구되었다는 새로운 부상이 밝혀지고, 그야말로 수술실은 난장판이 되었다.

 시청자의 기대와 달리 24일 방영분에서 최인혁 교수는 끝내 수술장면에 등장하지 않았다.

시청자의 기대와 달리 24일 방영분에서 최인혁 교수는 끝내 수술장면에 등장하지 않았다. ⓒ MBC


이쯤되면 시청자는 자연스레 최인혁 교수를 떠올리게 된다. 다들 어디서부터 수술을 해야 하는지 망설일 때, 최인혁 교수가 구세주처럼 등장하여 멋지게 수술을 성공하는 그림을 그리게 되는 것이다. 사실 기존 드라마의 문법에 따르면 위기의 상황에서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이 백번 맞다.

하지만 <골든타임>은 끝내 최인혁 교수를 등장시키지 않았다. 더구나 최인혁 교수없이 다른 과장들이 진두지휘아래 수술도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 황 과장의 지인인 만큼 각 과에서 매우 협조적으로 수술에 응했고, 또 무려 3명의 과장이 수술에 참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였다.

그런데 그 환자가 황 과장의 지인이 아니라 그냥 교통사고를 당해 실려온 평범한 환자였다면 어땠을까? 그때도 과장들은 자신들의 자존심을 내세워 최인혁 교수를 부르지 않았을까? 아니, 애초부터 3명의 과장들이 모두 함께 수술실에 들어가는 일이 없었을 테니 그런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겠다.

헬기 수송 꿈 이뤄졌건만...드라마에서도, 현실에서도 숙제는 남았다

이날 <골든타임>이 포기한 드라마적 감성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금껏 <골든타임>이라는 드라마가 달려온 이유는 바로 외상센터 건립을 통한 응급의료 환자를 빠르게 케어하는 모습을 그리기 위해서였다. 그런 의미에서 비록 헬기 지원 사업에서는 탈락했지만, 이날 세중병원이 부산 소방방재청과 MOU 체결을 통해 헬기 출동에 나설 수 있게 된 것은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최인혁 교수가 그토록 바라왔던 꿈,  헬기를 타고 현장에 나가 응급 환자가 시간 때문에 죽게 하는 일은 없도록 하는 것. 어쩌면 <골든타임>은 최인혁 교수가 헬기를 타고 환자를 치료하는 가는 그 감동적인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지금껏 존재해왔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이 드라마, 역시나 뻔한 감동을 추구하지 않았다.

 헬기를 기다리는 일도 쉽지 않은 일. <골든타임>은 헬기가 끝이 아니라는 또 다른 과제를 던졌다

헬기를 기다리는 일도 쉽지 않은 일. <골든타임>은 헬기가 끝이 아니라는 또 다른 과제를 던졌다 ⓒ MBC


응급환자가 발생했다는 콜을 받고 출동 준비를 끝마친 외상팀. 그런데 헬기를 타려면 행정절차가 만만치 않다. 신분증을 복사해서 팩스로 보내고, 하염없이 기다리지만 헬기는 도착할 생각을 안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헬기만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비웃기라도 한 것일까. 헬기는 시간을 지체하여 도착하고, 심지어 사고 현장에 도착해서는 마땅히 착륙할 공간이 없어 4km나 떨어진 초등학교 운동장에 착륙을 시도한다. 결국 환자는 119 엠뷸런스를 통해 이송돼 왔다.

초초한 표정으로 헬기를 기다리는 최인혁 교수의 표정과 하늘을 나는 와중에 "대체 언제 도착하냐"고 소리 지르는 모습은 다시 한 번 "헬기가 끝이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하는 듯 보였다.

이 드라마의 성공에 힘입어 지난 9월 23일 MBC <시사매거진 2580> 팀은 '골든타임은 없다' 편을 통해 현실 속 처절한 외상외과의 모습을 조명한 바 있다. 전남대병원 외상외과 박찬용 교수는 "병원 바로 앞에서 다치지 않는 한, 병원에 다다르는 데만 해도 60분 이내 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정도"라며,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골든타임은 의미가 없다"고 털어놨다.

최인혁의 실제 모델로 잘 알려진 아주대병원 외상외과 이국종 교수의 현실 인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교수는 "한국은 첨단기술을 드러내는 데만 집중화가 되는 것 같다"며 "(중증외상 환자들이) 일본이나 영국, 하다못해 대만에서 사고가 났다면 다시 사회로 복귀하실 분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돌아가시고 만다"는 말로 현실을 꼬집었다.

또한 중증외상센터를 지원하겠다던 정부의 약속도 애초 제시한 800억이 아닌 80억으로 예산을 축소시켰다. 사업 추진조차 불투명한 상태에 놓인 것이다. 드라마나 현실이나 외상환자를 제대로 치료하기에는 너무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처음으로 헬기를 타고 출동한 현장, 과연 환자를 살릴 수 있을까? <골든타임>이기에 장담할 수 없다

처음으로 헬기를 타고 출동한 현장, 과연 환자를 살릴 수 있을까? <골든타임>이기에 장담할 수 없다 ⓒ MBC


그렇다면 과연 처음으로 헬기를 타고 가서 응급처치를 한 뒤 병원으로 데리고 오게 될 이 환자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무사히 수술을 받고 살아날 수 있을까? 지금까지 <골든타임>이 보여준 '시청자를 배신하는 연출'이라면 불가능할 것 같은데, 그래도 종영회에서는 조금의 판타지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이미 드라마적 감성은 포기한지 오래니까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겠다. 다만, <골든타임>이 보여준 현실의 쓴 맛은 충분히 알았으니, 부디 시즌 2를 위한 열린 결말로 남겨두면 어떨까? 이대로 <골든타임>의 모든 주인공들을 떠나보내기가 너무도 아쉽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 (이카루스의 추락)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골든타임 이성민 이선균 외상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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