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마도 이 교훈을 가장 절박하게 느끼는 이는 바로 마운드 위의 투수 아닐까.

특히 본인이 아무리 잘 던진다고 해도 동료들의 지원을 받지 못해 승리를 놓친 투수만큼 외로운 자리는 없다. 단체 스포츠에서 팀의 승패는 전체 구성원에 의해 좌지우지되지만, 유일하게 개인기록 앞에 승패가 붙는 것은 투수의 숙명이라고 할 수 있다.

서재응(35·KIA), 류현진(25·한화), 레다메스 리즈(29·LG)의 공통점은 바로 각자 팀 내에서 외로운 에이스로 뛰고 있다는 점. 팀의 간판 에이스로 부족함이 없는 기량과 투구 내용에도 정작 이들의 2012시즌은 '불운'이라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수준급 선발투수의 기준으로 평가받는 퀄리티스타트(QS)의 경우, 올 시즌 이 세 선수가 기록한 QS만 해도 무려 46회에 이른다. 그러나 정작 승수는 모두 합쳐 18승, 패배는 그보다 훨씬 많은 28패다. 이것만 봐도 이들이 올 시즌 얼마나 '불운'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억울한 류현진, '7년 연속 10승 이상' 기록 가능할까

 한화 류현진 투수

한화 류현진 투수 ⓒ 연합뉴스


올 시즌이 가장 억울한 투수는 단연 류현진이다. 국가대표 에이스로 꼽히는 류현진은 올 시즌 25경기에 등판해 8승 9패 자책점 2.82를 기록 중이다. 그는 승수를 제외한 모든 면에서 리그 최상위권을 달리고 있으며 탈삼진(191개)과 QS(20회)는 전체 1위다.

류현진에게 올 시즌 성적이 유독 아쉬운 이유는 그동안 공들여 쌓아온 누적 기록 행진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류현진이 올 시즌 10승 이상을 거둔다면 7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 투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프로야구 역사상 30년 역사상 이강철과 정민철, 단 두 명만이 이 대기록을 달성했다.

류현진은 데뷔 이후 처음이자 개인통산 최연소 100승 기록 경신도 노릴 수 있었기에 더욱 뼈아프다. 로테이션 상 앞으로 2회 정도는 선발로 등판할 기회가 남아 있지만, 현재 꼴찌에 머물러 있는 한화의 팀 전력 사정을 감안할 때 류현진이 역투하더라도 승수를 채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10승의 저주' 걸린 서재응 - 타선에 발목잡힌 리즈

KIA 서재응은 '10승의 저주'가 걸려 있는 상황이다. 류현진의 불운이 주로 올 시즌에 집중된 것이라면, 사실 서재응은 프로 데뷔 이후 승수에 관해서는 일관되게 불운을 겪었다. 메이저리그 시절을 포함해 프로 무대에서 10승을 거둔 시즌이 단 한 차례도 없다는 것은 서재응의 이름값이나 투구 내용을 감안할 때 어울리지 않는 기록이다.

서재응의 한 시즌 최다승은 뉴욕 메츠와 KIA 타이거즈에서 각각 한 차례씩 기록한 9승이다. 투구 내용에 비해 이상하리만큼 승운이 없는 투수가 바로 서재응이다. 특히 올 시즌에는 26경기에 등판해 134이닝 간 자책점 2.82, QS 14회의 뛰어난 투구를 보이고 있음에도 7승(7패)에 그치고 있다.

특히 최근 다섯 경기에서는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27이닝 연속 무실점 퍼펙트 피칭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단 2승을 추가하는 데 그쳤다. 지난 12일 롯데전과 18일 두산전에서 모두 리드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운드를 넘겨줬음에도 구원 투수들의 난조로 다잡은 승리를 날렸다. 잔여 경기를 감안할 때 서재응이 앞으로 두 번 정도 남은 등판 기회를 모두 이긴다고 해도 올 시즌 10승은 불가능해 보인다.

외국인 투수 중에서 최고의 불운왕은 단연 리즈다. 시즌 초반에는 팀 사정 때문에 무리하게 마무리 투수로 보직 전환을 한 뒤 시행착오를 겪었다. 리즈는 낯선 보직에 대한 부담감으로 제구력 난조를 드러내며 '16구 연속 볼'이라는 부끄러운 기록을 세우는 등, 팀에 누를 끼치기도 했다. 이후 리즈는 선발로 다시 전환되면서 안정을 되찾는 듯했지만, 이번에는 되레 동료들의 부실함이 리즈의 발목을 잡았다.

리즈는 지난 8월 17일 한화와의 경기서 시즌 3승을 거둔 후 최근 5경기 연속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 이 기간 리즈는 모두 QS를 기록했으며, 특히 9월 이후 세 경기에서는 0점대(0.86)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도 타선 지원을 받지 못해 내리 패전투수가 됐다. LG 타자들은 최근 36이닝 연속 리즈가 마운드에 있는 동안 1점도 뽑아내지 못하며 0점대 방어율을 기록하고도 승리투수가 되지 못하는 진기한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 선발 전환 이후 그는 자책점 3.93의 준수한 성적에도 3승밖에 올리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타선에 있었던 것. 그는 현재 12패로 올 시즌 최다패 1위가 유력하다.

한화·KIA·LG 타선이 반성해야 할 이유

안타까운 것은 거듭되는 불운에도 정작 이들이 동료를 원망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사람이기에 화가 나고 서운할 법도 하건만, 이들은 절대 겉으로 표정을 드러내지 않고 누군가를 탓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승리보다 팀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에이스들의 한결같은 입장이다. 이들의 소속팀은 공교롭게도 올 시즌 모두 4강 진출이 멀어졌다. 에이스들의 역투가 더욱 안쓰러운 이유다.

아무리 그날 뛰어난 활약을 펼친 타자라도 승리 타자라는 기록이 붙지는 않는다. 하지만 투수에게는 그날 어떤 활약을 펼쳤느나에 따라 승리 혹은 패전 투수라는 기록이 남게 된다. 아무리 뛰어난 투수라도 혼자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투수는 실점을 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타자가 아닌 이상 자신이 득점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야구에서 투수의 승리란 그야말로 원포올(one for all), 올포원(all for one)이다. '모두를 위한 하나' 역할을 해주는 에이스에 비해 '하나를 위한 모두'가 되지 못하는 타자들이 미안함을 느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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