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 뱀파이어 헌터> 포스터

<링컨 : 뱀파이어 헌터>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지난 8월 30일에 개봉한 <링컨 : 뱀파이어 헌터>는 에이브람 링컨이라는 역사적 인물과 뱀파이어라는 판타지를 접목시킨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여기에 전작 <원티드>에서 화려한 액션을 보여준 티무르 베크맘토브 감독이 연출을 맡으면서 액션영화 팬들의 기대는 한층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영화 개봉 첫주 성적은 저조했습니다. 예매율 10%에 관객 18만 명... 순위는 박스오피스 5위였습니다.

<원티드>와 마찬가지로 <링컨 : 벰파이어헌터>는 주인공 링컨(벤자민 워커 분)의 액션과 이중생활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원티드>와 달리 영웅서사를 따르지 않습니다. 출생의 비밀이 없고, 시련을 겪으며 강해지는 모습도 없습니다.

영화는 청년 링컨이 조력자인 헨리(도미닉 쿠퍼 분)에게 몇 주간 속성 과외를 받은 후, 어떤 뱀파이어도 이길 수 없는 무적의 존재가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뜬금없이 무적의 존재가 되는 과정은 관객들에게 '황당함'으로 다가옵니다. 황당함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약혼자가 있던 메리 토드(메리 엘리자베스 원스티드 분)가 링컨의 고백에 바로 결혼을 하는 모습도 나옵니다. 시퀀스끼리 연결이 잘 안 돼 허술하다는 인상마저 들게 합니다. 또한, 주인공의 액션 장면에서는 긴장감보다는 지루함이 앞섭니다.

이거 <원티드> 감독이 만든 영화 맞아?

 영화 <링컨 : 뱀파이어헌터> 중 한 장면

영화 <링컨 : 뱀파이어헌터> 중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마치 '링컨 가라사대'라며 연대기를 보여주는 듯. 플롯을 무시하는 이 이야기는 갑자기 새로운 흐름을 탑니다. 뱀파이어 헌터인 링컨이 갑자기 대통령인 링컨이 됩니다. '정치인 링컨'의 고뇌를 기대하는 순간, 남북전쟁이 발발합니다. 이어 그는 다시 뱀파이어 헌터로서의 링컨으로 되돌아옵니다. 그리고 링컨은 큰 전투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그 전투는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이라는 명언을 남긴 게티즈버그 연설이 나오게끔하는 복선으로 작용합니다.

저조한 기록만큼이나 영화는 <원티드>의 감독이 만든 게 맞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실망스러운 연출을 보여줍니다. 전형적인 헐리우드 영화로 만든다면 성공할 수 있는 영화인데도 영화는 가장 보편적인 영웅서사의 플롯을 따르지 않습니다. 게다가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링컨의 게티즈버그 전쟁에만 집중합니다. 뱀파이어 헌터로서 링컨도, 대통령으로서 링컨도, 그 어느 쪽도 관객의 마음을 끌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입니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영국의 고전 서사시 원작인 영화 <베오울프>가 떠오릅니다. 완성된 영웅 베오울프가 악마 그렌델을 물리치고 그 나라의 왕이 되는 1부와 시간이 흘러 늙은 왕이 된 베오울프가 화룡과 싸운 후 최후를 맞이하는 2부로 구성된 <베오울프>. 이 영화의 구성처럼 <링컨 : 뱀파이어 헌터> 역시 '절대 무적' 링컨의 탄생과 어머니의 복수로 찾아온 일시적 평화를 담은 1부와 악마에 맞서 게티즈버그 전쟁에 임하는 링컨의 이야기를 담은 2부로 나뉘어집니다.

그런데 베오울프는 고전 서사시에 존재하는 신화적 인물이고, 에이브람 링컨은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이라는 실존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큰 차이가 있음에도 <링컨 : 벰파이어 헌터>가 <베오울프>와 같은 형식을 따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가 에이브람 링컨을 넘어 미국 사회에 숨어 있는 '링컨 신화'에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링컨의, 링컨에 의한, 링컨을 위한 영화... 별로다

 영화 <링컨 : 뱀파이어헌터> 중 한 장면

영화 <링컨 : 뱀파이어헌터> 중 한 장면 ⓒ 이셉세기폭스코리아


링컨은 <노예 해방 선언문>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는 인종 차별주의자라는 평도 있습니다. 1860년 링컨-더글라스 논쟁이 있은 후 링컨은 흑인권에 관한 공약을 여러 번 부인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변호사 시절 그는 흑인 노예들을 위한 변호를 한 적도 없습니다. 그리고 남북전쟁 역시 인류애적 가치 때문에 일어났기보다는 중앙집권적 연방제를 위한 수단으로 일어났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링컨은 미국사회에서 엄청난 지지를 받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I have a dream"으로 유명한 연설문을 링컨 기념관에서 했으며,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링컨을 롤모델로 삼기도 했습니다. 또, 데일 카네기는 <링컨, 당신을 존경합니다>라는 책까지 썼습니다. 링컨 신화는 개인의 존경심을 넘어 미국이라는 지붕을 받치는 기둥입니다.

자국의 위인을 영화로 만드는 것을 문제삼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위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것만큼 국민 정서를 관통하는 소재도 드뭅니다. 다만 영화의 완성도를 보고 있노라면 링컨이라는 인물에만 기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링컨이라는 인물만으로 전 세계 관객들이 영화에 집중할 수 있다고 착각했던 걸까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링컨을 신화적 인물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한 정치인이 위인이 되고 신화적 인물이 됩니다. 그리고 그 신화가 자국을 발전시킬 수 국가 신화가 됩니다. 하지만 전 세계가 그 신화에 동의하진 않지요. <링컨 : 벰파이어 헌터>는 어쩌면 미국 사회에 숨어 있는 링컨 신화의 허구를 드러내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http://blog.naver.com/hoohoots)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링컨 : 뱀파이어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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