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활약을 펼친 인천 유나이티드 FW 설기현(2012. 8. 12. vs 강원 FC 사진)

최고의 활약을 펼친 인천 유나이티드 FW 설기현(2012. 8. 12. vs 강원 FC 사진) ⓒ 심재철


정말 믿기 힘든 드라마가 전주성에서 만들어졌다. '닥공(닥치고 공격)'으로 K리그의 자존심을 자랑하던 안방 팀 전북이 중하위권을 어슬렁거리기만 하던 인천 유나이티드에게 발목을 잡힐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올 시즌 처음으로 도입한 K리그의 스플릿 시스템이 여러 사람을 놀라게 만들고 있다.

김봉길 감독이 이끌고 있는 인천 유나이티드 FC는 23일 오후 7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2012 K리그 29라운드 전북 모터스(현재 2위)와의 방문 경기에서 주눅들지 않는 경기력을 펼치며 2-1로 승리를 거두고 8위 자리를 굳게 지켜냈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놀라운 '5연승', 팀 역사 새로 쓰다

경기 전, 두 팀의 사정은 많이 달랐다. 26일 오후 7시에 동시에 열리는 정규리그 30라운드가 끝나면 상위 8팀과 하위 8팀이 결정되어 9월 이후에 스플릿 시스템이 가동되는데, 이 경기 안방 팀 전북은 최소 2위(승점 58점)를 확보한 상태였기 때문에 비교적 느긋했다. 반면에 방문 팀 인천 유나이티드는 8위 자리에 턱걸이하기 위해 반드시 이겨야 하는 형편이었다.

어쩌면 뛰는 선수들의 동기부여 측면에서 차원이 달랐고, 이것이 실제 경기 내용에 반영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인천 선수들은 악바리 근성으로 경기 내내 경기장 구석구석을 누볐다. 인천 선수들의 강한 압박 앞에 전주성의 '닥공 축구'는 당연히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득점 없이 전반전을 끝낸 양 팀 선수들은 후반전 시작 후 보다 과감한 공격 전술을 꺼내들며 상대 팀 골문 앞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날따라 전북은 인천에게 코너킥 기회를 자주 허용했다. 키다리 수비수 심우연이 경고 누적 징계로 못 나왔기 때문에 주장 완장을 찬 수비수 임유환은 높은 공을 따내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다.

전북의 이흥실 감독은 심우연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호주에서 데려온 수비수 윌킨슨에게 K리그 첫 경험을 시켰다. 하지만 임유환과의 수비 조직력은 완벽할 수 없었다. 방문 팀 인천의 김봉길 감독은 이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기회가 되면 전북의 측면을 괴롭히며 띄워주기로 골을 노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승부의 갈림길을 만들어낸 것이다.

55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방문 팀 인천이 먼저 골을 터뜨린 것. 전북 수비수들이 이상할 정도로 자주 내주던 코너킥이 화근이었다. 거기서 짧게 연결된 공이 김재웅의 왼발 띄워주기로 이어졌고 그 공은 골문 바로 앞에 자리를 잡고 있던 한교원의 이마를 빛냈다. 방문 팀 서포터즈 미추홀 보이즈가 자리를 잡은 골문 뒤와 인천의 벤치는 난리가 났다.

그러나 15분 뒤에 점수판은 다시 1-1이 되었다. 전북의 교체 선수 레오나르도가 재치 있게 연결한 왼쪽 코너킥을 수비형 미드필더 진경선이 달려들며 왼발로 낮게 깔아차 인천의 골문을 뒤흔든 것이었다. 인천의 무실점 행진이 다섯 경기만에 끝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인천 선수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만큼 승리에 대한 열망이 전북의 그들보다 강했던 것이다. 8분 뒤 역사가 이루어졌다. 전북 수비수의 작은 실수를 인천의 베테랑 골잡이 설기현이 놓치지 않았다. 그의 오른발 끝에서 아름다운 포물선이 그려졌고 공은 반대편으로 정확하게 날아들었다. 그 자리에는 최근 인천의 활력소로 떠오른 남준재가 기다리고 있었다. 짜릿한 두 번째 헤더 결승골이었다.

인천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이후 시간을 충실하게 보냈다. 김봉길 감독은 73분에 김재웅 대신 들여보냈던 공격형 미드필더 박준태를 추가 시간에 다시 빼내며 가운데 수비수 김태윤을 들여보냈다.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정규리그에서 5연승을 거두기 위한 필연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곡절 많았던 2012년, 다시 날아오르는 '인천 유나이티드'

인천 유나이티드는 '비상'으로 기억되는 2005년에 두 차례(5월 15일~6월 5일 / 7월 6일~8월 27일), 그리고 2009년에 한 차례(4월 26일~5월 17일) 정규리그 4연승 기록을 남긴 바 있다. 2008년 수원 블루윙즈의 11연승에 비하면 별 볼 일 없는 기록일 뿐이다. 그만큼 인천은 중위권이나 될까 말까 한 그저그런 팀이었다.

그런데 바로 지금 팀 역사상 최초로 5연승 신화를 써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그 기념비적인 경기가 바로 이번 전북과의 방문 경기 2-1 승리 기록이다. 8월 4일부터 시작된 연승 행진이 하순에 접어들어도 멈추지 않는 중이다. 이제 인천의 상표가 된 듯한 짠물 수비는 덤이다. 이달에 열린 5경기 모두 승리에다가 8득점 1실점의 놀라운 결과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시계를 지난해로 돌리지 않아도 이것은 놀라운 역사다. 월드컵 원정 16강이라는 자랑스러운 업적을 등에 업고 인천 유나이티드에 부임(2010년 8월)한 허정무 감독은 자신의 실질적인 두 번째 시즌을 준비하면서 상위 스플릿 진출(8위 이내)이라는 야심찬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더구나 인천 유나이티드의 2012년은 남다른 해다. 문학월드컵경기장을 떠나 숭의동에 마련된 아름다운 인천 축구전용경기장으로 둥지를 옮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차갑기만 했다. 이기는 법을 잊은 듯 인천은 K리그 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 허정무 감독은 4월 11일에 인천 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광주 FC와의 K리그 7라운드(1-1 무승부)를 끝으로 물러났다. 성적(7라운드 결과, 16팀 중 15위) 때문에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서 처량해 보였지만 팬들이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무책임한 처사였다.

그리고 8라운드부터 김봉길 수석 코치의 '감독대행 시즌2'가 시작되었다. 이에 인천 팬들은 팀 성적에 대한 기대를 겉으로 드러낼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12경기 무승(7무 5패)이라는 불명예 꼬리표까지 붙었다. 14라운드부터 17라운드까지는 리그 순위표에서 인천이라는 이름을 가장 쉽게 찾아냈다. 맨 아래 꼴찌 자리에 그 이름이 또렷하게 박혀서 미동도 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런 만신창이의 팀이 18라운드부터 단 10라운드만에 8위까지 뛰어올랐다는 것은 국제 축구계의 빅 뉴스 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봉길 감독의 온화한 지도력과 믿음의 축구 철학은 인천 선수들과 팬들의 가슴 속에 조용히 파고들었다. 마치 거짓말처럼 스며든 셈이다.

감독 대행 꼬리표가 시즌 끝무렵까지 이어질 것 같았지만 김봉길 감독의 헌신적인 공로를 인정한 인천 유나이티드 프로축구단은 지난 달 16일에 정식 감독으로 승격시켜 주었다. 6월 23일 상주 상무와의 17라운드 안방 경기(1-0 승리)에서 12경기 무승의 악연을 끊었고, 7월 8일 부산 아이파크와의 방문 경기에서는 짜릿한 2-1 승리를 기록하며 8월의 인천 돌풍을 일찌감치 예고했다. 인천의 2012년 8월 신화는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일요일 밤, '숭의 아레나'의 열망

인천 유나이티드 선수들과 김봉길 감독의 야심찬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미 팀 역사상 처음으로 5연승이라는 놀라운 신화를 이룩했지만 갈 길이 멀다. 오는 일요일(8월 26일) 저녁 7시 나란히 열리는 2012 K리그 30라운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올해 도입된 스플릿 시스템이 K리그 팬들은 물론 그동안 국내 프로축구 흐름에 관심이 떠나있던 여러 사람들을 다시 경기장으로 불러모으고 있다. 상위 8팀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네 팀이 아슬아슬한 드라마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1위부터 7위까지는 어느 정도 그 순위표가 고정되어 있지만 8위라는 막차가 묘하게 이들 네 팀을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라 일요일 밤 9시 무렵에 발표될 정규리그 30라운드 순위표가 그 어느 때보다 궁금하기만 하다.

현재로서는 인천 유나이티드가 상당히 유리하다. 그만큼 목요일 저녁에 열린 강 팀 전북과의 방문 경기 승리가 결정적으로 작용한 셈이다. 대구 FC와 39점으로 승점과 승무패 기록(10승 9무 10패)이 모두 같지만 골 득실차에서 인천(-2)이 대구(-5)보다 3골 앞서 있다.

인천은 일요일 저녁 7시 경기에서 7위 제주 유나이티드(42점, 11승 9무 9패, 56득점 43실점)를 안방으로 불러들인다. 맞수 대구 FC는 야박하게도 1위 FC 서울(61점, 18승 7무 4패, 52득점 28실점)과의 방문 경기를 치러야 한다.

사실 승점으로는 이들 두 팀보다 모자라지만 마지막까지 8위 희망을 버리지 못한 팀이 둘씩이나 있다. 10위 경남 FC(37점, 11승 4무 14패, 38득점 36실점)와 11위 성남 천마(36점, 10승 6무 13패, 30득점 36실점)가 그들인데, 경남의 경우 비교적 약 팀이라 할 수 있는 광주 FC(13위)와의 안방 경기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무조건 이기고 인천과 대구의 패배를 기다릴 뿐이다. 성남의 경우에는 보기 드문 대승이 전제 조건이라 8위 등극을 희망 사항으로만 적어두었다.

9월부터 시작되는 스플릿 시스템에서 하위(9~16위) 그룹에 속할 경우 12월에 모든 일정이 끝나면 순위표 가장 아래에 있는 두 팀이 2013년에 2부리그로 내려가야 하는 가혹한 일정이 남아 있다. 이러하니 오는 일요일 저녁의 K리그 경기장은 한국프로축구 역사상 가장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

활짝 웃으며 일요일 밤하늘을 올려다볼 주인공은 과연 어느 팀이 될까? K리그 경기장 중에서 선수들의 박진감 넘치는 몸놀림을 가장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는 인천 축구전용경기장 '숭의 아레나'에서 들려오는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가 벌써부터 가쁘게 느껴진다. 내 심장도 덩달아 뛴다.

덧붙이는 글 ※ 2012 K리그 29라운드 전주 경기 결과, 8월 23일 저녁 7시 전주월드컵경기장

★ 전북 모터스 1-2 인천 유나이티드 FC[진경선(70분,도움-레오나르도) / 한교원(55분,도움-김재웅), 남준재(78분,도움-설기현)]

◎ 전북(감독 이흥실) 선수들
FW : 이동국
AMF : 드로겟, 김동찬(66분↔레오나르도), 에닝요(66분↔이승현)
DMF : 진경선, 김상식(79분↔김신영)
DF : 박원재, 임유환, 윌킨슨, 전광환
GK : 최은성

◎ 인천 유나이티드(감독 김봉길) 선수들
FW : 설기현
AMF : 남준재, 김재웅(73분↔박준태/90+1분↔김태윤), 한교원
DMF : 김남일, 구본상(82분↔손대호)
DF : 박태민, 이윤표, 정인환, 이규로
GK : 유현
인천 유나이티드 FC 전북 모터스 K리그 스플릿 시스템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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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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