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 서울 홍익대 앞 걷고 싶은 거리에서 열린 시민법정 <분노의 목소리>에서 배우 고 장자연 씨의 사건을 극으로 재구성했다.

작년 6월 서울 홍익대 앞 걷고 싶은 거리에서 열린 시민법정 <분노의 목소리>에서 배우 고 장자연 씨의 사건을 극으로 재구성했다. ⓒ 이정민


한 신인여배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3년하고도 5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연예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이 사건의 파장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같은 소속사였던 한 중견 여배우는 이 신인여배우의 소속사 사장과의 진흙탕 송사에 휘말렸고, 유력 언론사 사주가 증인 출석 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른 일명 '장자연 재판' 역시 진행 중에 있다.

그런 가운데 필연적으로 이 '장자연'이란 이름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영화가 촬영을 준비 중에 있다. 오는 10월 촬영을 앞둔 <노리개>(가제)는 신인 연기자와 연예인 지망생들이 성 상품으로 이용되는 부조리한 구조를 정면으로 다뤄 큰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연예계의 이면을 그린 법정극 <노리개>(가제) 

이 영화의 각본을 직접 쓰고 메가폰을 잡을 예정인 최승호 감독은 3일 <오마이스타>에 "그 분의 죽음과 관련된 사건을 참조는 하지만 완전한 픽션이 될 것"이라며 일단 현실과의 직접적인 관련성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3년간 언론에서 다뤄진 팩트들을 능가하기가 쉽지 않고 또 사회적 파장과 맞물려 예상되는 난점들을 염두에 둔 탓이다. 

최 감독이 이 민감한 소재를 영화화할 결심을 한 것은 장자연 사건의 1심 재판 판결 내용이 도화선이 됐다. 법대 출신인 최 감독은 공증 형태의 유서를 남기고 죽은 사람이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오히려 피해자의 자살이란 상황 때문에 관련자들이 성범죄로 기소도 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더욱이 본인이 사실관계를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성범죄 관련 재판의 한계는 2심을 거치면서는 재판의 논점을 변질시키는 한편 관련자 중 한 명의 형량을 낮추기까지 했다. 

2심 재판을 직접 지켜봤다는 최 감독은 "법률 시스템이 불합리 한 점이 많고, 언젠가 한 번 정리해야 겠다 생각했다"며 "법정 장면이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 귀띔했다. 이를 위해 최 감독은 작년 가을부터 법정을 부지런히 오가는 한편 연예인 성폭력과 관련된 사건 기록을 통해 연예계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복기하고 정리했다.

이에 대해 최 감독은 "2000년 이후만 해도 연예계의 성관련 사건은 1회성에 그치지 않고 계속적으로 반복돼 왔다"며 "연예인 지망생과 신인 연예인을 이용하는 부조리한 구조가 문제다. 또 검찰은 말할 것도 없고 법원이 신뢰를 받지 못하는 시스템도 마찬가지인데, 이 두 가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장자연 사건은 모티브일뿐, 시스템의 부조리에 주목해 달라"

최 감독은 그런 면에서 <노리개>가 장자연 사건은 영화의 모티브로서 법정극의 흐름에 자연스레 녹아날 것이라 설명했다. 주변에서 소송에 대한 걱정도 많았지만 언론사가 연거푸 패소하는 상황도 있었고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작품이기에 소신을 굽히진 않았다.

"죽은 사람을 가지고 이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는 최 감독은 "나쁜 놈은 나쁘게, 불쌍한 사람은 불쌍하게 남들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온전히 완성할 수 있을까 제 자격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장자연 사건)은 연예인 성관련 사건을 영화화기위해서는 최선의 케이스일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연상하겠지만 피할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런 고민 속에서 유가족에 대한 부분은 물론이요 허투루 넘기는 인물 없이 많은 캐릭터들에게 각자의 페이소스를 부여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법정 기록과 사건 기록은 물론 업계에서 종사한 지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연예계 성폭력 사건을 파고드는 한 인물을 통해 바라 본 법정극 형식을 도입했다. 흡사 <부러진 화살>을 연상시키지만, 좀 더 법정극에 충실 하는 한편 중반부까지는 위트 있는 유머도 곳곳에 베어나게 할 계획이다.    

10월 초 크랭크인을 앞두고 한창 헌팅과 캐스팅 작업 중인 <노리개>는 연기력이 뒷받침된 30대 배우들과 함께 오디션도 적극 을 염두에 두고 있다. 더불어 민감한 소재인 만큼 저예산의 장점을 적극 활용한다는 계산이다.

한편 최승호 감독은 2009년 영화 <헬러우 마이 러브>를 기획, 제작했고, 2011년 다큐멘터리 영화 <환타스틱 모던가야그머>를 연출한 바 있다.

노리개 최승호 감독 장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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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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