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첫 메가폰을 잡은 이후 반백 년 동안 101편의 영화를 만든 성실한 감독. 한국 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이 23일 tvN <백지연의 피플INSIDE>에 출연해 영화인의 삶을 이야기 했다.

 임권택 감독은 50년동안 101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임권택 감독은 50년동안 101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 tvN


임 감독은 작년 3월 자신의 101번 째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를 끝으로 잠시 메가폰을 놓고 동서대학교 영화예술대학 석좌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진행자 백지연 씨가 "그 학교 학생들은 참 복도 많다"고 말하자 임 감독은 "복이 많다고 생각해야 할텐데… 학생들이 이 프로그램을 봐야 합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임 감독은 교수로서의 생활 외에도 2014년 인천에서 열리 아시안게임 개•폐회식 총감독으로 선임된 후 프로그램에 우리 문화재를 담아내는 것에 대해 고민 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소통과 정을 테마로 삼고 있어요. 배경에는 여기가 한국이라는 것을 격조 높게 심을 거고요. 잘해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50년간 101편의 영화를 만든 거장 감독의 겸손한 답변이었다. 임 감독은 한국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한국 영화사의 기준이 되는 영화인이다.

 한국 영화의 역사, 임권택 감독이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에 출연했다.

한국 영화의 역사, 임권택 감독이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에 출연했다. ⓒ tvN


그는 1961년 첫 작품 <두만강아 잘 있거라>의 흥행 성공으로 10년간 50여 편의 영화를 제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년에 다섯 편씩, 그가 찍는 것은 모두 영화였다. 그러기를 10년. 무작정 찍어내는 것에 회의가 들었을까. 10년이 지난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기존에 찍어왔던 허구 세계를 덮어버리자. 미국 영화 아류를 만들지 말고 삶이 진솔하게 드러나는 영화를 만들자. 한국 사람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영화. 많이 유치하고 세련되지 못하더라도 그 자체로도 평가 받을 수 있는 것을 만들자."

흥행감독으로 50편을 찍어낸 체질화된 관성의 때를 벗기기 위해 그는 10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고 말했다. 그가 새로운 다짐을 가지고 찍은 첫 영화는 김지미 주연의 <잡초>. 저질영화, 액션물을 찍던 감독이 작품성이 있는 영화를 찍겠다고 하자, 투자를 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임 감독은 직접 제작에 나섰다. 결과는 흥행 실패. 그러나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작품성 있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후 한국인의 정신을 담는 영화를 찍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내 영화 보면 열 받아요" 거장의 겸손 발언

'그 동안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자부심이 느껴지지 않느냐'는 질문에 임 감독은 의외의 답변을 내 놓았다.

"제 영화를 잘 안 봐요. 보면 열 받는 장면과 만나게 되요. 내가 만든 모든 영화에 나를 화나게 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런 열 받는 장면 때문에 제 영화는 잘 안 봐요. 영화가 다 만들어졌을 때 한 번 보고 끝이죠. 한 번은 텔레비전에서 1960년대 저질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거예요. 처음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언제 한번 본 것 같기도 했는데, 끝날 때 보니 감독에 제 이름이 있는 거예요."

첫 10년 간 만든 50 편의 작품이 부끄럽다던 임 감독은 "혹시 불이라도 나서 그 흔적을 지웠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며 깜짝 발언을 했다. 그렇다면 <서편제>, <취화선> 등 세계 영화제에서도 인정받은 작품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임권택 영화학교에서 강의할 때 그런 영화를 보여주고 흠을 찾는 수업을 해요. 자기 살 자기가 깎아 먹는 거죠(웃음). 어떤 작품을 내걸어도 흠 잡아야 할 것이 너무 많은 거예요."

매 순간 완벽을 추구했지만 단 한 편도 완벽한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는 그의 고백. 임 감독은 그런 치열함으로 101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임 감독이 대작(大作)을 다작(多作)할 수 있었던 것에는 아내의 내조가 큰 역할을 했다. 촬영 중간 아내 채령 씨가 인터뷰에 합류했다.

 임 감독이 아내와 함께 인터뷰 중이다.

임 감독이 아내와 함께 인터뷰 중이다. ⓒ tvN


일년에 200일 이상을 밖에서 생활하는 남편. 평생 영화에만 몰두한 남편이었다. 아내는 남편이 "평생 은행에 가보지 않았다"며 '폭탄' 발언을 했다. 이런 남편을 위해 그는 카드를 만들어 주고 현금인출기 사용법을 알려줬다고 말했다.

"아마 현금인출기를 7~8년 전에 처음 사용했을 거예요. 카드를 만들어줬더니 한 일주일 동안 하루에 20~30만원씩 날마다 뽑는 거예요. 신기했나 봐요. 누르면 돈이 나오니까. (웃음)"

"내가 돈을 인출했는데 집에서 다 알고 있더라고요"라며 소년처럼 웃는 임 감독은 집안 걱정이 영화 일에 영향을 끼친 적은 없었다며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리고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아들(권현상)에 대해 아버지로서의 안타까움을 전했다.

"자식이 영화인으로 사는 것을 별로 환영하지는 않아요. 평생을 영화인으로 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엄청난 인내와 노력이 수반되어야 가능한 일이에요."

쉽지 않은 길을 50년 간 걸어온 한국 영화계의 거장 임 감독. 그는 영화 촬영을 하면 현장에 가장 먼저 나와 있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오늘 찍어야 할 것들 생각하고, 거기에 깊이 빠져 있어야 해요. 열심히 일 하고 있는 스태프들에게 감독도 함께 한다는 것을 보여줬을 때 서로 믿음도 생길 것이라 생각하고요."

아직도 담아내고 싶은 한국 이야기들이 많다는 일흔 여섯 살의 노장 감독은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를 더 많이 알리기 위해 현장에서 뛰겠다고 말했다.

"아직도 (담아내야 할 곳이) 많을 거라는 생각을 해요. 유명한 곳은 거의 다 돌아 다녔는데… '아직 안 본 곳들을 더 돌아다녀야겠지'하는 생각을 갖고 있죠."

임권택 피플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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