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올림픽이 이제 일주일이 채 남지 않았다. 꿈의 무대로 떠난 대한민국 국가대표들은 런던에 입성해 이제 결전의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올림픽이란 무대를 밟기까진 수많은 고통과 고비를 넘겼다.

'로즈란'이라 불리며, 역도에서 용상 세계신기록을 보유하고 베이징올림픽에서 감동의 금메달을 따낸 장미란(28.고양시청) 선수는 이번이 벌써 세 번째 올림픽이다. 역도선수로는 적지 않은 나이인 장미란은 올림픽에 세 번이나 출전하며 후배들의 모범이 되고 있다. 이처럼 꾸준한 자기관리로 오랫동안 팬들의 기억에 남고 있는 선수가 쇼트트랙 빙상계에 또 있다. 바로 이현성(25.인천시연맹) 선수다.

 쇼트트랙 이현성(25.인천시연맹) 선수 인터뷰 질문을 듣고 있다

쇼트트랙 이현성(25.인천시연맹) 선수 인터뷰 질문을 듣고 있다 ⓒ 박영진


4월 국가대표 선발전 "내 인생 최고의 경기"

올해로 운동생활 18년을 맞은 이현성 선수에게 지난 4월 선발전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임했던 첫 국가대표 선발전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 선수는 500m 3위에 오르는 등 준수한 성적을 냈다. 과거 장거리를 대비하기 위해 지구력 훈련을 주로 했지만, 운동 스타일에 변화를 줘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순발력 훈련을 집중적으로 했다.

"이번 선발전에서 가장 많이 변한 부분이 바로 '멘탈'이에요. 예전에는 주 종목이 1500m였고, 1500m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500m는 거의 포기하고 들어갔어요. 선발전 때도 1500m에 나름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잘 뛰었는데 아쉽게 결승 진출에 실패했어요. 만약 예전의 저였다면 1500m 포인트 획득에 실패했기 때문에 500m도 포기하려 했을 텐데, 500m도 열심히 타자는 각오로 임했죠. 솔직히 대회전에 500m 훈련을 정말 열심히 했기 때문에 '내가 제일 잘할 거야'라는 자신감과 기대는 있었어요. 하지만 500m를 뛰어본 게 거의 2년만이었기 때문에 결승에 진출하고, 메달까지 따게 될 줄은 몰랐죠."

이전의 마인드를 과감하게 버리고 새 출발로 뛰었던 선발전이었기에 4월 선발전은 현성 선수에게 최고의 대회로 남았다.

"제가 잘 하지 못했던 것을 잘 해냈다는 성취감 면에서 봤을 때 이번 선발전이 가장 기뻤어요. 강릉시청을 나오고 정식 실업팀이 없는 상태에서 대회에 출전했기 '내 타이틀을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절실하게 운동을 했어요."

이번 선발전으로 자신감을 얻은 이 선수는 다음시즌 성적이 지금보다 더 좋을 것이라 자신감을 내비쳤다. 충분히 휴식을 취한만큼 힘(??)을 더 쓸 수 있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지만, 그런 기간이 오히려 빛을 발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내년 4월에 있을 국가대표 선발전이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나갈 국가대표를 뽑는 선발전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할 전망이다. 현성 선수는 내년 선발전이 부담감은 없다며 즐기면서 타고 싶다고 가장 큰 목표인 올림픽을 향한 소망을 드러냈다.

 이현성 선수가 밴드 운동을 하고 있다

이현성 선수가 밴드 운동을 하고 있다 ⓒ 박영진


체력문제? "빨리 인정하고 방법을 찾아야"

올해로 만 25세를 맞은 이현성 선수는 이미 고참이다. 선수생명이 짧은 쇼트트랙 선수이기에, 오랫동안 현역선수로 뛰기 위한 자기관리에 충실한 탓이다. 오랜 선수 생활을 하기까지 이 선수는 가족의 희생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오히려 슬럼프가 현역 선수로 뛸 수 있게 도움을 줬다며

"슬럼프가 자주 왔다는 점이 큰 원동력이 됐던 것 같아요. 만약 제가 어릴 적부터 계속 쇼트트랙을 잘해 왔다면 그만큼 뭔가 더 빨리 잃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나이로 인한 체력문제는 이 선수도 피할 순 없다. 특히 빠른 스피드를 요구하는 쇼트트랙이기에 스피드를 내기 위해선 강한 체력과 함께 민첩함이 있어야만 한다. 현성 선수는 이런 문제를 부정하기 보단 오히려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체력을 다시 되돌린 다기 보다 그런 걸 빨리 인정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17살 때 잘했던 걸 27살 때도 잘 하려고 하면 힘든 거야 당연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걸 억지로 하려고 되돌리려고 하다보면 오히려 슬럼프가 와요. 시간이 지나면서 어린 선수들보다 체력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거고, 차라리 그런 현실을 빨리 받아들이고 어린 선수들은 못하지만 내 나이 대에 잘 할 수 있는 걸 찾아내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해요."

현재 비시즌 기간인 쇼트트랙은 대부분의 선수들이 10월부터 있을 새 시즌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10월 미국에서 있을 월드컵 1차 대회를 위해 한창 바쁘게 준비 중이고, 국내 선수들은 내년 4월에 있을 소치 동계올림픽 선발전을 위해 준비 중이다. 현성 선수는 현재 목동에 위치한 ABCSPO 트레이닝 센터에서 컨디션 유지 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쇼트트랙는 하체를 많이 쓰는 탓에 성적과 연관이 있는 몸의 균형의 흐트러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보완해야만 한다.

오랜 선수생활을 하면서 많은 노하우를 쌓아온 만큼 후배에게 조언을 해주고 싶은 부분도 많다. 현성 선수는 쇼트트랙 선수로서 피해야할 세 가지로 지나간 일을 기억하는 것, 무리하게 운동하는 것, 공부를 포기하는 것을 꼽았다.

"첫째는 지나간 것을 생각하는 거요. 그리고 두 번째는 무리하게 운동하는 거요. 선수들이 운동만큼 휴식도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선수들이 잘 하기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너무 열심히 하면 원래의 목적을 잃고 '열심히 하기 위해 열심히 하는 것'이 되어버리거든요. 그런 걸 좀 경계했으면 좋겠고요, 마지막으로는 너무 운동에만 올인 하는 거요. 운동을 한다고 공부를 아예 포기하는 경향이 많은데, 저는 공부에도 손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현성 선수(오른쪽)와 김환이(왼쪽) 선수가 함께 인터뷰 내용을 듣고 있다

이현성 선수(오른쪽)와 김환이(왼쪽) 선수가 함께 인터뷰 내용을 듣고 있다 ⓒ 박영진


이 말을 바로 옆에서 듣고 있던 후배 김환이(22.한국체대) 선수에게 현성 선수는 어떤 선배냐고 물었다. 김 선수가 "좋은 선배에요~"라고 짧게 답하자 이 선수는 "왜 더 말을 못하냐"며 재치 있게 되묻기도 했다.

한편 최근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26.빅토르 안) 선수는 이 선수와 함께 오랫동안 쇼트트랙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안 선수 역시 적지 않은 나이지만, 소치올림픽과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선수로 뛰고 싶다고 언급한 바 있다. 비록 파벌과 빙상계의 문제로 얼룩져 국내를 떠났지만, 그는 아직까지도 많은 후배들과 동료들에게 모범이었다. 이 선수는 안 선수를 언급하면서 살짝 그리워하는 마음도 엿보였다.

"여태까지의 일들에 관계없이 지금까지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올림픽에서 아무도 이루지 못한 걸 이룬 선수잖아요? 예전에는 성적으로 대단한 선수였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정상급 선수가 힘든 시련들을 겪고도 아직도 선수 생활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 자체만으로도 후배들에게도 좋은 귀감이 되고요. 보통 쇼트트랙 선수들이 24세 전후로 선수생활을 그만두는 데 그런 걸 보면 후배들도 '아 나도 저 나이 정도까지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거 아니에요? 그런 점에도 안현수 선수가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현성 선수가 복근 및 밸런스 강화 운동을 하고 있다

이현성 선수가 복근 및 밸런스 강화 운동을 하고 있다 ⓒ 박영진


은퇴 후의 삶... "다시 한번 공부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지난 4월 선발전에선 아쉬웠던 장면도 있었다. 바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500m와 5000m계주에서 은메달을 따낸 성시백(25.연세대 대학원) 선수가 이승재(28. 현 영국팀 코치) 선수와 함께 은퇴를 한 것이다. 섹시백이란 별명으로 많은 학생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선수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 팬들의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었다. 2007년 토리노 동계유니버시아드에도 함께 출전했고 절친인 선수가 은퇴를 선언하자, 현성 선수 역시 짠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은퇴식이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어느 정도 커리어가 있는 선수가 할 수 있기 때문에, 시백이 형 은퇴식 보면서 굉장히 멋있었어요. 올림픽이라는 소정의 목표는 이루고 은퇴를 했기 때문에 그 점이 가장 멋있었어요. 시백이형이랑은 굉장히 어릴 적부터 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뿌듯하고, 뭉클했어요. 시백이 형이 운동을 쉬다가 은퇴식 기념으로 트랙 한 바퀴 도는데 힘들겠다 싶어서 짠하기도 했죠.(웃음)"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는 이 선수는 최근 새로운 진로를 찾기 위해 모색하고 있다. 현성 선수는 현재 가장 큰 고민이 "뭐하지?"라고 답할 정도로 은퇴 후 진로가 가장 큰 문제라고 답했다. 선수로서 학창시설 이뤄보지 못한 것이 많았기에, 은퇴 이후 하고 싶은 것도 많다고 한다.

"지금 2-3가지 정도 대안을 생각 하고 있어요. 일단, 지도자 생활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두 번째는 제가 지금 대학원에서 '스포츠심리'를 전공하고 있는데 이쪽으로 공부를 더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세 번째는 학교 선생님 같은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금 가장 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 공부인데 공부하면서 선수들을 지도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렇다면 용돈벌이식이 되겠죠?(웃음)"

어릴 적 몸이 허약해 어머니를 따라와 스케이트장에 놀러가면서부터 시작된 스케이트 인생이 어느덧 18년. 은퇴를 생각하면서 이 선수는 과거 학창시절을 맘껏 보내지 못한 아쉬움도 많다고 토로했다. 운동선수이기 때문에 고등학교 생활의 일부를 포기해야 하는 아픔도 있었고 슬럼프도 있었지만, 음악을 들으며 소소한 행복을 즐겼던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교 3,4학년 결국 부상으로 슬럼프가 찾아왔다.

"대학교 3, 4학년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가장 열심히 훈련했음에도, 성적이 너무 안 나왔어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쉬지도 않고 하루 종일 운동만 했는데, 성적이 엉망이었어요. 그래서 기숙사에서 시집을 읽으면서 마음 정화를 하기도 했고, 책을 통해 내가 속해있지 않은 세상도 간접적으로 경험해볼 수 있어서 세상을 보는 시각이 희망적으로 많이 변했어요. 너무 어울리지 않나요?(웃음)"

 쇼트트랙 이현성 선수가 질문을 듣고 있다. 왼쪽 무릎에 대학교 3,4학년 슬럼프 시절에 다친 무릎 상처가 보인다

쇼트트랙 이현성 선수가 질문을 듣고 있다. 왼쪽 무릎에 대학교 3,4학년 슬럼프 시절에 다친 무릎 상처가 보인다 ⓒ 박영진


현재 현성 선수 무릎에 난 상처가 바로 대학교 3.4학년 때 난 상처였다. 부상으로 8-9개월 동안 스케이트를 타지 못했지만, 예상외로 바로 스케이트를 탈 수 있게 되면서 그동안의 휴식으로 인한 불안이 없어졌다. 결국 오랜 공백기는 현성 선수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변하게 해줬다.

현역선수 20년은 이 선수의 청춘과 함께한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쇼트트랙이 '내가 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 이 선수는 1, 2년 안으로 은퇴를 정할 시기가 올 것 같다며, 소치올림픽 출전으로 멋진 퇴장을 꿈꾸고 있다. 그렇다면 나의 모든 것을 바친 선수시기를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가 되겠냐고 물었다. 질문을 들은 이 선수는 당황스러워했지만, 이어 재치 있게 대답해냈다. 그의 마지막 말은 긍정적이고 솔직한 '이현성' 그 자체였다.

"돈으로 환산이 될까요? 농담이고, 저를 누가 사려고 할까요?(웃음) 밝힐 순 없지만 강릉시청에 있을 때 제 연봉보다는 높게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몸 상태가 전보다 더 좋거든요. 너무 겸손하지 못한가요?(웃음)"

덧붙이는 글 이 취재는 정인영 기자와 함께 동행 취재 했습니다.
쇼트트랙 이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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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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