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사우스포(야구에서 좌완투수를 의미) 대결이라 예상했는데 이런 급반전(?)이 숨어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마치 영화 <식스센스>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인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만큼이나 허를 찌르는 결과였다. 7월 18일 대전구장을 찾은 5205명의 한화 이글스 홈팬들은 차라리 꿈이었으면 했던 장면들이 속출하면서 '멘탈 붕괴'의 경지에 다다랐을 것이다. 국내 최고의 좌완투수로 군림해온 한화 이글스 류현진이 2이닝 동안 무려 8실점을 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류현진은 1회부터 무너졌다. 공 스피드, 제구력 뭐하나 제대로 받쳐주는 것이 없었다. 열흘 전 SK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보여줬던 완벽한 지배자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2이닝 동안 무려 70개의 공을 던졌다. 어제 경기내용으로 봐선 3승 투수만도 못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어제 경기가 류현진의 원래 실력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태어나서 어제 야구를 처음 봤다면 모를까. 다만 그동안 류현진에게 내재되어 있었던 불안요소가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이다.

일단 올 시즌 류현진의 등판일지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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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15차례 등판하여 무려 10차례의 퀄리티 스타트(선발로 등판한 투수가 6이닝 이상 공을 던지고 3자책점 이하로 막아 낸 경기를 뜻하는 야구용어)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퀄리티 스타트의 내용을 살펴봐도 순도 100% 이상의 '최고의 퀄리티(Quality)' 그 자체였다. 4월 7일 롯데와의 개막전을 제외하곤 류현진은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던 나머지 9경기에서 최소 7이닝은 버텨줬고, 실점도 2점 이상을 내주지 않았다. 심지어 탈삼진을 10개 이상 기록한 경기도 무려 6경기나 된다. 그런데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한 10경기에서 류현진은 고작 3승을 거두는 데 그쳤다. 그나마 3승을 거둔 3경기 중 2경기는 무실점으로 틀어막았고, 나머지 5월 13일 롯데와의 경기도 8이닝을 버티면서 1실점으로 막으면서 거둔 승리였다.

올 시즌 류현진에게 '행운'이란 단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만 승리를 따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글스의 내, 외야 수비진은 이미 팬들 사이에선 공식(?) '멘붕'(멘탈 붕괴)으로 인정을 받은 지 오래다. 또한 구원진의 불쇼는 웬만한 특급호텔 고급쇼가 부럽지 않을 정도이다.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만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류현진의 탈삼진 수치는 갈수록 높아져만 갔다. 원래 삼진을 많이 잡는 스타일이지만 올 시즌은 더더욱 탈삼진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다. 워낙에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잠재적으로는 야수, 구원투수, 그리고 타선에 대한 불신의 장벽이 나날이 높아져만 갔을 것이다. 홀로 100개 이상의 공을 던지면서 마운드에서 버텨야 하는 류현진의 육체적, 정신적 피로도는 한층 높아져만 갔을 것이다.

결국 6월 7일 롯데전 등판 이후 류현진은 등근육 경직으로 인한 옆구리 통증으로 인해 2군으로 내려가게 되었으며, 6월 24일 1군에 복귀한 이후 첫 등판한 두산전에서는 3이닝 4실점의 부진한 투구내용을 보이며 마운드를 내려왔다. 이후 7월 1일 KIA전, 7월 8일 SK전에 연달아 등판한 류현진은 두 번 연속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면서 회복의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열흘 쉬고 등판한 7월 18일 삼성 전에서 악몽과 같은 결과가 연출되었다.

올 시즌 류현진의 투구일지를 살펴보면 시즌 초반 4회 연속 퀄리티 스타트 이후 등판한 5월 2일 LG전에서 5실점의 부진을 보였고, 이후 다시 2차례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고 나서 등판한 경기마다 부진한 투구내용을 보이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는 동안 승수도 제대로 쌓이지 않는 데 따른 정신적 피로감과 많은 투구수에 따른 육체적 피로가 겹친 탓으로 보인다.

외적으로는 한층 집요해진 타 구단 타자들의 견제와 전력분석도 류현진으로 하여금 더 어려운 승부를 이끄는 요인으로 볼 수 있다. 마운드 위의 투수는 언제나 고독한 존재이다. 공 100개를 잘 던지다가도 1개의 실투에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 그러나 올 시즌 류현진은 더욱 외롭고 지쳐 보인다. 18일 경기에서도 이글스 타선은 12안타를 치고도 고작 1점을 뽑는 데 그쳤다. 초반에 대량실점을 당했지만 충분히 반격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스스로 기회를 차버리고 말았다.

'7·18 대참사'는 난조를 보인 류현진에 가장 큰 원인이 있지만, 이 경기만 따로 놓고 볼 것이 아니라 올 시즌 류현진이 등판한 동안 그가 받았을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세심하게 헤아려볼 필요가 있다. 류현진은 한화 이글스의 에이스일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에이스이다. 당장 내년 WBC가 걱정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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