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 들어와 벌어졌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을 알고 있는가. 2008년부터 국무총리실 주도 하에 각 분야에 걸쳐 이명박 정권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공권력을 남용하여 전방위적인 미행과 감시가 벌어졌던 일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KB한마음 대표였던 김종익씨가 이명박 정권을 풍자하는 내용의 동영상을 개인 블로그에 올렸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기 시작했다.

2010년 MBC < PD수첩 >의 보도에서 드러난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실상은 국무총리실이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뿐만 아니라 민간인들을 상대로도 불법사찰을 행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큰 충격을 불러왔다. 뿐만 아니라, 하드디스크를 비롯한 사건 증거들의 은폐와 금품으로 폭로를 입막음한 시도까지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각종 언론들과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하 이털남)>를 통해 보도되면서 파장은 더욱 커졌다.

언론에 특종으로 보도되기 시작한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은 그 사건의 유사성을 이유로 '한국판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불렸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불법도청과 증거은폐를 저질러 미국의 닉슨 대통령을 하야하게 한 그 유명한 일화이다. 이를 다룬 영화가 1976년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바로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이다.

'워터게이트' 사건 밝혀낸 <워싱턴 포스트> 두 기자 이야기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 포스터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 포스터 ⓒ SKC


영화의 시작은 '워터게이트' 사건의 초기인 1972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늦은 밤 5명의 남자들이 워싱턴에 위치한 워터게이트 호텔 내의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 사무소에 침입, 도청기를 설치하려다 경비원에게 발각된다. 경비원의 신고로 이들은 불법적인 침입 혐의로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에게 체포된다.

'사소한 절도행각'이라는 닉슨 대통령 보도담당관의 주장으로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 했으나, 미국 언론 <워싱턴 포스트>지의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수상한 점을 발견하여 취재를 시작한다. 그들은 사건의 수사과정에서 발견된 거액의 수표, 침입자들의 수첩에서 발견된 W.H(White House, 백악관을 뜻하는 것으로 밝혀짐)라는 약자 등을 비롯한 증거물 등에서 단순 절도사건 이상의 배후가 있음을 짐작한 것이다.

백악관의 닉슨 대통령은 사건과의 관련여부를 일체 부인하지만, 그가 사건의 증거은폐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사실들이 두 기자에 의해 점차 드러난다. 영화는 두 기자의 발로 뛰는 탐사취재와 압박에도 굴하지 않는 보도정신으로 진실을 파헤치는 언론인의 모습을 그려낸다.

사건 관계자들은 대부분 정부의 압력에 두려움을 느껴 사건에 대한 폭로를 꺼린다. 하지만 두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의 진실 보도를 향한 열정에 천천히 마음의 문을 열고 취재에 응하게 된다.

영화는 닉슨 대통령의 재선 취임식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두 기자는 워터게이트 사건에 닉슨 대통령이 직접 연루되었다는 폭로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자막으로 대통령 수석보좌관과 당시 법무장관 등 대통령 최측근들의 증거 은폐, 수사 방해 혐의가 밝혀져 기소되었음을 알린다. 그리고 사건의 '몸통'인 닉슨 대통령 또한 1974년 탄핵안 가결을 앞두고 결국 스스로 사임하게 된다.

대통령이 임기 중 사임한 것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민주주의 근간을 뒤흔든 사건의 주인공이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은 미국 역사에 오점으로 남았으나, 자칫 은폐될 뻔했던 진실을 끝내 밝혀낸 언론과 제 할일을 다했던 의회, 사법기관을 통해 관련자들이 모두 처벌된 점은 역사에 귀감으로 남을 것이다. 재선에 성공해 살아있는 권력이었던 당시 대통령과 '대통령의 모든 사람들'까지 법의 심판을 받았음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완전히 죽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몸통' 조사하여 심판한 워터게이트, 하지만 대한민국은...

 13일 오후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박윤해 부장검사)의 송찬엽 서울중앙지검 1차장이 서초동 청사 13층 브리핑실에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6월 13일 오후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박윤해 부장검사)의 송찬엽 서울중앙지검 1차장이 서초동 청사 13층 브리핑실에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권우성


2010년 민간인 불법사찰의 첫 수사 이후, 2년이 지나 <이털남>의 추가 보도가 이어졌다. 장진수 전 주무관의 폭로를 통해 '관봉 5000만 원' 등 폭로를 막으려는 매수 의혹과 증거인멸 등의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었다. 더욱 커진 의혹에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고, 이에 검찰은 억지로 등 떠밀린 듯 재수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사즉생'의 각오로 임하겠다던 검찰의 재수사에서도 윗선은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수사결과는 관봉 5000만 원의 출처도,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업무추진 지휘체계 문건에 나온 '일심을 다해 충성하겠다던 VIP'도 누구인지 드러내지 못했다. "내가 몸통"이라 소리치던 이영호 전 비서관을 비롯한 몇 명의 관계자들을 처벌하는 데 그친 수사는, 각 분야에 걸쳐 사찰 정황이 드러난 500여 건의 문서 중 3건만의 혐의를 인정했을 뿐이다.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권재진 법무부장관에 대한 수사도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수사과정에서 'BH 하명'이라 적힌 문건이 발견되고, 사찰 내용이 청와대 고위층에게 보고되었다는 의혹이 있었음에도 검찰의 수사방향은 모두가 바라보던 '윗선' 근처조차 가보지 못하고 종료되었다.

검찰의 수사결과만 빼놓고 본다면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은, 정치권력의 공권력 남용으로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불법을 저지르고, 언론의 취재를 통해 기타 증거들과 'WH'가 적힌 문건의 발견, 그리고 그로 인하여 진행된 수사에서 정부 최고기관인 백악관과의 연관성이 드러난 부분까지 워터게이트 사건과 닮아있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권력의 정점에 있던 닉슨 대통령은 물론, 법무장관 등 대통령 최측근들조차 모두 심판하여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실현을 이루어냈다. 한국형 '워터게이트' 사건과 결말만이 확연하게 다른 것이다.

자칭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던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어느덧 끝나가고 있다. 최근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의 구속으로 측근 비리의 온상으로 얼룩진 이명박 정권은 레임덕을 맞이하고 있다는 외신보도까지 있었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뿐만 아니라 내곡동 사저 문제, 디도스 특검, BBK 의혹 등 대통령이 연관된 것으로 의심되는 각종 사건들에서 꼬리 자르기 수사가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있는 검찰. 19대 국회가 개원하여 민간인 불법사찰 국정조사를 앞둔 시점에서 훗날, 과거 수사를 맡았던 그들마저도 <모두 대통령들의 사람들>이라는 결과를 듣게 되는 날이 오지는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다.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워터게이트 민간인 불법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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