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막을 내린 13회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를 해임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5월 막을 내린 13회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를 해임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 전주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는 끝내 추락하고 말 것인가?

최근 프로그래머 해임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전주국제영화제의 분란이 갈수록 확대되면서 영화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영화제가 내외부적으로 심한 논란을 겪으면 위상이 급락하고, 한번 실추된 이미지는 쉽사리 회복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부천영화제로 지난 97년 시작된 이후 승승장구해 오던 영화제는 2004년 집행위원장 해임으로 국내외 영화인들이 등을 돌리면서 위상이 떨어졌다.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안정을 찾았지만, 예전 궤도에 오르기에는 아직도 버거운 모습이다.

전주영화제도 이와 비슷한 흐름으로 가고 있다. 프로그래머 해임 사유가 '폐막 기자회견 때 지역 언론 기자의 질문에 부적절한 답변을 했다'는 것 때문으로 알려지면서 지역 언론으로 대표되는 '토호세력'에 대한 성토와 이에 휘둘린 영화제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유운성 프로그래머는 폐막 기자회견에서 올해 영화제에 영화와 공연 말고는 볼 게 없었다"는 지역 언론의 질문에 "전주국제영화제는 영화도 트는 축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영화제"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 발언은 '영화제에서 영화만 잘 틀면 됐지 않느냐'는 식으로 왜곡해 보도됐고, 결과적으로 해임 사유가 됐다.  

전주와 유대 관계를 이어온 로카르노 영화제는 전주영화제와의 협력 중단을 공식 통보한 상태다. 해외 영화인들은 유운성 프로그래머 해임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나타내고 있다. 국내 영화인들 또한 잇따른 성명과 입장 발표를 통해 전주영화제를 비판하고 있다.

해임 소식이 알려진 이후 전주영화제 스태프들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학생회, 서울대 영화동아리 얄라셩 등이 유 프로그래머의 해임을 취소하라는 성명을 잇달라 발표했다. 올해 전주영화제 수상자인 김응수 감독은 영화제 홈페이지를 통해 유 프로그래머의 응원의 뜻을 밝혔다.

전주영화제, "해임 불만이면 법대로 해라"

 전주국제영화제 민병록 집행위원장

전주국제영화제 민병록 집행위원장 ⓒ 전주국제영화제


안팎의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영화제 측은 지난 12일 민병록 집행위원장 명의로 '유운성 프로그래머 해임과 관련하여' 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생각을 밝혔다.

장문으로 작성된 이 글에서 민 위원장은 "지역 언론이나 지역 토호들의 압력으로 해임 시킨 것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해임은 프로그래머와의 신뢰 관계가 깨진 데 따른 것"이라고 강변했다. 아울러 유 프로그래머의 발언이 틀린 말은 아니나, 지역에서 치러지는 행사인 만큼 지역민과 함께하지 않으면 영화제가 전주에서 개최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초점이 되고 있는 분명한 해임 사유를 공개하지 않아 논란을 잠재우기는 역부족이었다. 민 위원장의 입장이 이성적인 논리보다는 감성적인 호소에 치우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케이블 TV 영화 프로그램 진행자는 "판단의 옳고 그름이나 어떠한 소신보다도 대외적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체면치레가 가장 우선시된다는 것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며 "해임 건을 떠나서, 한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이 '옳은 소리는 맞지만, 꼭 지역 언론과 마찰을 일으킬 필요가 있나'라는 요지의 글을 공식적으로 올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에 부담을 느낀 듯 민 위원장은 16일 다시 발표한 글에서 "해임 사유는 조직의 대외비로 공개할 수 없으며, 해임에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면 규정에 따라 이의 제기를 하던가, 법적 절차를 밟아서 자신의 정당함을 입증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민 위원장은 "유운성 프로그래머의 해임은 '하나의 사건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일어났던 일련의 과정과 행동들에 대해서, 영화제 조직내부에서 신중하게 고려하여 내린 결정'임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유운성 "논점은 부당 해임이라 해임 취소에 집중할 생각"

전주영화제가 대외비라고 밝히길 꺼렸던 해임 사유는 유운성 프로그래머가 우편으로 받은 해임통지서를 공개하면서 확인됐다.

주요 해임 사유는 모두 5개로 ▲상영작 발표 기자회견 때 지각 ▲트위터를 통한 지역 기자들 비판 ▲폐막 기자회견에서의 문제 발생 ▲부산영화제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 트위터를 통한 입장 표명 ▲집행위원장과의 면담에서 개선 의지를 안 보인 것 등이다.

이미 알려졌던 부산영화제 언급 부분을 제외하고는 기존에 알려진 지역 언론과의 갈등 부분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에 대해 유 프로그래머는 기자회견 지각과 부산영화제 관련 부분에 대해서는 감봉 등의 징계가 있을 경우 수용하겠지만 해임 조치는 부당하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는 기자회견 지각 건에 대해 "당시 사정을 이야기하자 영화제 측에서 이해한다"고 했고, 자신이 직접 기자들에게 사과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더 세세하게 언급하면 구차해지는 것 같아 길게 거론하고 싶지 않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유 프로그래머는 자신의 복직과 함께 해임사태를 일으킨 핵심 인사들인 민병록 집행위원장과 김건 부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면서 수용되지 않으면 영화제 보이콧 운동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다만 인사위원회에 참여해 해임을 의결한 일부 조직위원들과 사무국장이 사퇴를 요구하던 처음 입장에서 조금 변화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유 프로그래머는 인사위원회 회의록 공개를 요구한 부분에 대해서도 민병록 위원장의 입장 발표가 나오고 해임통지서를 수령한 후 해결된 것으로 간주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유 프로그래머는 <오마이스타>와의 통화에서 "논점이 부당 해임인데 여러 이야기가 나오다 보니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 일단 해임 취소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이후에 처음에 언급된 다른 문제들을 하나하나 공론화시킬 생각"이라고 밝혔다.

 전주국제영화제 유운성 프로그래머

전주국제영화제 유운성 프로그래머 ⓒ 전주국제영화제


접점 없는 갈등에 영화제 위상 추락 불가피

양측의 갈등이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프로그래머 해임 사태는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접점을 찾을 수 있는 없는 상태가 되면서 영화제의 위상 추락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주영화제의 잇따른 해명 이후 해임 조처가 어쩔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으나 아직까지 해임 사유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견해가 더 많다. 

한 조직위원은 "사무국에서 보고하는 내용만 들을 수 있을 뿐이다. 다른 내용을 알 수 없어 난감하다"며 "당사자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않고 해임한 것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는 "13년간 어렵게 쌓아온 성과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 같은데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답답한 심정을 나타냈다. 

논란이 지속되면서 지역 언론과 토호들의 압박에 더해 다른 이유가 더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한 영화평론가는 해임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김건 부집행위원장에 대해 "그는 '문화미래포럼' 인사가 아니냐"고 말했다. '문화미래포럼'은 이명박 정권의 문화 친위대로 알려져 있으며 영화계에서 분란을 일으켰던 조희문 전 영진위원장 등 보수적인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는 단체다. 김건 부집행위원장은 전주국제영화제 사무국장 시절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에 대해 김건 부집행위원장은 "당시 아는 선배의 요청으로 이름을 올린 것일 뿐 그 모임에 단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고, 나중에 어떤 모임인지를 알고 나서는 이름을 빼 달라고 요청했다"며 "조금의 관계성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임을 주도했다는 시각에 대해서도 "지역에 거주하고 있어 실무를 처리해야하는 입장에서 규정에 따라 절차를 살펴보고 진행한 것을 그런 식으로 보고 있다"며 맡고 있는 업무에 충실히 한 것뿐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유 프로그래머가 마치 우리가 동료들을 시켜서 뒷조사를 통해 흠결을 찾고 있는 식으로 주장하던데, 영화제는 직원들은 물론 관계자들에게 절대 그런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며 "이름이 거론된 당사자가 그만두고 싶다고 할 정도"라고 불쾌해 했다. 그는 "해임 결정에 불만이 있다면 이의 신청을 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전주영화제 측은 이의신청 시 인사위원회 구성에 대해 "당연직(집행위원장, 부집행위원장, 사무국장) 외에 나머지 인사위원은 바뀔 수 있지만 선임은 위원장님 권한"이라고 말했다. 유운성 프로그래머는 "이의신청을 할지를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며 "좀 더 고심해 보고 결정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해임 사유 부실? '부산영화제 항의 전화' 사실 여부 논란.
부산영화제 "항의한 적 없다"... 전주영화제 "전화 받았다"

 전주영화제가 유운성 프로그래머에게 보낸 해임예고통지서 해임사유 세부사항에 나와 있는 부산영화제 관련 부분

전주영화제가 유운성 프로그래머에게 보낸 해임예고통지서 해임사유 세부사항에 나와 있는 부산영화제 관련 부분 ⓒ 유운성 제공

전주영화제 측이 주요 해임 사유 중 하나로 거론한 부산영화제 언급 부분이 일부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예상된다.

전주영화제 측은 유운성 프로그래머에게 보낸 해임 통지서에서 해임 사유 중 4번째 사안으로  '부산영화제와 관련된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 트위터를 통해 입장표명. ->부산영화제로부터 항의 전화'라고 명기했다. 

유운성 프로그래머가 올해 영화제가 끝난 직후 트위터를 통해 '이번 전주영화제에 올해 1월 이후 개봉된 한국영화가 아예 없었던 이유는 전주에 작품을 보내면 부산영화제에 초청하지 않겠다는 말에 배급사들이 모조리 전주초청을 거절했기 때문이다'라고 밝힌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부산영화제 측은 "유 프로그래머 트윗에 대해 전주영화제에 어떠한 항의도 한 적이 없다"며 '부산영화제'에 대한 부분이 해임사유에 언급되고 있는 게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부산영화제 사무국 관계자는 "우리가 전주 측에 공식적으로 항의한 일이 없는데 어떻게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프로그래머 회의에서 여러 말들이 오가기는 했지만 위원장님이 '문제 삼거나 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더 이상 언급하지 않기로 정리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다만, "프로그래머 한 분이 왜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전주영화제 실무자에게 연락을 취했을 뿐이지, 항의 의사를 전달한 일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개봉된 영화 제작사 측이 전주영화제의 요청을 받고 저울질하는 과정에서 그런 식의 이야기를 하면서 오해가 생겼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주영화제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는 프로그래머 역시 "독립영화 관계자가 유운성 프로그래머 트위터에 대해 '부산의 패권주의'라는 식으로 지적하기에 어떤 과정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궁금해 확인해 봤을 뿐 항의를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쪽에서 내 전화를 항의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으나 전주 담당자와는 업무 때문에 개인적으로 종종 통화하는 사이로 특별하게 항의 의사를 표현한 적은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어 "유 프로그래머 트윗에 대해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았는데, 전주영화제가 왜 우리를 해임 사유에 끄집어 넣었는지 모르겠다. 이런 거야 말로 항의할 사안이 아니겠냐"며 어이없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전주영화제 측은 "누가 전화했는지 밝힐 수 없지만 분명 항의전화가 왔었다"며 " 해임사유에 그 사안만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여러 가지 해임 사유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산영화제 측이 문제 삼은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는 사안을 전주영화제가 주요 해임 사유 중 하나로 거론하고 있다는 점에서 엄격하게 진행되어야 할 해임 결정이 부실하게 이뤄졌다는 논란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유운성 전주국제영화제 민병록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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