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루비치의 <니노치카>(1939)

에른스트 루비치의 <니노치카>(1939) ⓒ MGM


'악기-떡-삶은 돼지머리'의 3면에 둘러싸인 후미진 골목에 시네마테크로 가는 길이 있다. 낙원상가 4층에 위치한 서울아트시네마다. 멀티플렉스에서 만날 수 없는 고전·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이곳이 올해, 열 돌을 맞았다.

(주)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서울 유일의 민간 비영리 서울아트시네마 개관 10주년을 기념하고자, '서울에 시네마테크를 허하라!'는 주제로 17일 저녁 오픈토크를 마련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공동설립자 앙리 랑글루아에 관한 다큐멘러리 <시티즌 랑글루아>(1994) 상영 후, 변영주·이해영 감독의 진행으로 김태용 감독과 심보선 시인, 정바비 작곡가가 함께 '내가 사랑한 영화들, 극장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애초에 변영주 감독은 이날 행사를 패널과 관객이 하나 되어 영화에 대한 애정을 토해내며, 모든 이가 서울아트시네마의 관객 회원으로 등록하는 일종의 '부흥회'로 기획했단다. 원래 노회찬 통합진보당 공동대변인도 참석하려 했지만, 올 상황이 아니라는 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무려 박원순 서울시장까지 초청한 뒤, 추후에 서울시의 시네마테크에 대한 사랑을 증명한 협박자료로 쓰려 했던 원대한 꿈의 오픈토크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17일 저녁 '서울에 시네마테크를 허하라!'는 주제로 오픈토크가 열렸다. 변영주·이해영 감독의 진행으로 김태용 감독과 심보선 시인, 정바비 작곡가가 함께 '내가 사랑한 영화들, 극장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17일 저녁 '서울에 시네마테크를 허하라!'는 주제로 오픈토크가 열렸다. 변영주·이해영 감독의 진행으로 김태용 감독과 심보선 시인, 정바비 작곡가가 함께 '내가 사랑한 영화들, 극장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이현진


<종로의 기적>의 주역들 포스터 촬영을 위해 낙원동 악기상가 앞에 모였던 이혁상 감독과 출연진. 개봉 4주차를 맞은 <종로의 기적>의 감독과 출연진은 '찾아가는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등 관객들과 가깝게 만나고 있다.

낙원상가 주변의 게이들 이야기를 전면으로 내세웠던 <종로의 기적>. 영화의 포스터 촬영을 위해 낙원동 악기상가 앞에 모였던 이혁상 감독과 출연진. ⓒ 시네마달


그때, 영화와 사랑에 빠지다

심보선 시인의 생애 첫 영화는 <메리 포핀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들어간 어두운 곳에서 환한 빛처럼 펼쳐진 스크린 위에 등장한 메리 포핀스가 구름 위에 앉아 우산과 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은 그에게 마술 같았단다. 집에 돌아온 심보선 어린이는 우산을 펼치고 뛰어 내렸지만, 영화에서처럼 가볍게 착지하지 못해 조금 다쳤다고. <슈퍼맨> 영화를 보고 옥상에서 헝겊 보자기를 걸친 채 뛰어내렸다는 웃지 못 할 일화가 여기에도 있었다.

음악을 업으로 삼는 정바비에게 영화는 엔터테인먼트에 머물렀다고 한다. 영화에 대한 생각이 바뀐 건, 에른스트 루비치 회고전에서 <니노치카>(1939)를 보면서부터다. 파리에 파견된 소련의 여자 스파이가 사랑에 빠진다는 <니노치카>는 극장에서 제일 많이 울게 했고, 영화에 대한 폭을 넓혀준 작품이다. 정바비는 그 영화를 봤던 2004년 11월 당시의 팸플릿을 가지고 와 보여주기도 했다.

김태용 감독에게 의외로 영화는 '무서운 것'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접한 영화는 <킹콩>(1976). 지금 보면 조악하지만,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구분하지 못했던 나이의 김태용 어린이는 화면 속의 킹콩이 실재한다고 믿었단다. 그 무서웠던 기억 때문에 그는 대학 다닐 때까지도 '시네필'에 다다르지 못했다. 김태용 감독이 영화를 업으로 삼게 된 계기는 극장보다, 대학 선배들의 영화 작업을 돕기 위해 잠시 조연출을 맡았던 덕분이다. 카메라로 찍고 현상하는 작업에 매료된 그는 그때부터 영화와 사랑에 빠졌다.

이해영 감독의 첫 영화는 명동의 코리아극장에서 본 <이티(E.T.)>(1982)였다. 이후, 홍콩영화 전성기에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대개 홍콩영화-에로영화로 구성됐던 동시상영관의 추억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까 <천녀유혼>(1987)을 보면, <파리애마>(1988)까지 볼 수 있는 곳에서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두 작품을 12번씩 봤단다. 아직까지 이해영 감독은 지금의 블록버스터보다 당시 <인디애나존스> <백 투 더 퓨처> 등이 더 큰 자극을 받는다고 한다. 

변영주 감독이 영화에 빠지게 만든 것도 하나의 작품이라기보다, 영화를 보기 위해 무작정 떠난 프랑스에서의 기억이다. 첫 연출작인 제주도 매춘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1993)의 시사 날, "그 누구보다 이 영화가 끔찍하다는 걸 제일 먼저 알았다"는 변영주 감독은 신혜은 PD와 돈을 모아 파리로 향했다. 파리 곳곳의 시네마테크에서 하루 8~9편의 영화를 보고, 타이밍 좋게 독일 베를린영화제까지 둘러본 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는 "이제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들었다고.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너무 부러운 건, 그렇게 많은 시네마테크에서 뭘 봐야할까 고민하고 아쉬워할 만큼 많은 영화가 매일 상영되고 있었다는 거죠. 아직까지도 그때 기억은 영화를 만들고 있는 지금까지 큰 힘 중에 하나예요." (변영주)

 존 길러민의 <킹콩>(1976)

존 길러민의 <킹콩>(1976) ⓒ 디노 데 로렌티스 컴퍼니


 정소동의 <천녀유혼>(1987)

정소동의 <천녀유혼>(1987) ⓒ 필름워크숍(電影工作室)


영화관에서 영화 같은 연애 못 하는 이유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극장에서의 추억으로 이어졌다. 온전히 영화를 즐기기 위한 유일한 장소로서의 극장이 이들에게 유쾌한 기억만 남기지는 못한 것 같았다. 영화가 상영되는 도중에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는 것은 기본이요, 그 자리에서 통화까지 시도하는 관객과 마주쳤던 일화 정도는 다섯 사람에게도 흔한 일이었다.

자신이 만든 영화를 보러 갔다가, 사운드를 높여 달라며 영사기사와 싸운 일은 이해영·김태용 감독의 공통된 경험. 나이트클럽 위에 지은 극장에서 <여고괴담2>(1999) 상영을 체크하러 갔던 김태용 감독은 대사조차 안 들리는 사운드를 영사기사에게 토로했지만, "밑에서 춤추는 사람들에게 방해 된다"는 답을 들었다고.

"<천하장사 마돈나> 무대 인사를 하러 부산에 간 적이 있어요. 상영이 끝나기 전에 배우 류덕환 군과 관객 반응을 보려고 들어갔죠. 그런데 앞에 앉은 중년의 남자 분이 덕환이가 립스틱을 바르는 장면이 나오니까, 화를 내면서 '뭐꼬? 변태 아이가!"라고 소리치는 거예요. 덕환이와 둘이서 바닥을 기어서 나왔죠." (이해영)

영화를 오롯이 감상하기 어려운 극장 환경과 획일화된 멀티플렉스의 홍수 속에 있지만, 영화 관객으로서의 꿈과 판타지는 여전히 있다. 정바비는 수줍은 말투로 "내 꿈이 같은 영화를 보고 나오는 여성과 또 다른 장소에서 마주쳐 술도 마시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다른 욕망을 위한 꼼수가 섞인 꿈이지만, 이해영 감독은 이런 일이 판타지에 머물수 밖에 없는 이유를 "전용관이 없기 때문"이라고 자연스럽게 연결지었다. 이 감독은 "다른 나라의 시네마테크 전용관은 상영관 밖 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시고 책도 보며 자연스럽게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나마, 낙원상가 4층에 서울 유일의 민간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해야 하는 걸까. 악기가 청각을, 머릿고기가 후각을 자극하는 공감각적인 공간에 영화의 시각적인 충족이 더해진 독특한 환경. 같은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를 상상할 수 없는 분위기일지라도, 이곳에서나마 시네마테크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아마도 운명적인 사랑이라면, 소머리국밥을 사이에 놓고도 로맨스는 가능할 거다.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변영주 이해영 김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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