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서울 여의도 MBC에서 열린 MBC 조직개편 규탄 기자회견에서 MBC 구성원들이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24일 서울 여의도 MBC에서 열린 MBC 조직개편 규탄 기자회견에서 MBC 구성원들이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MBC 노동조합


"이번 조직개편은 바로 회사 안팎의 퇴진 여론에 몰린 김재철이 정권을 향한 맹목적인 충성맹세로 생존을 위한 마지막 발악을 시도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MBC 구성원들이 새 조직개편안에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MBC 기자회·영상기자회·시사교양국 평PD 협의회·라디오 평PD 협의회는 24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조직개편안은 시사 프로그램을 말살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MBC가 내놓은 새 조직개편안을 살펴보면, 먼저 시사교양국을 해체하고 편성제작본부 내 시사제작국과 교양제작국으로 나누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보도제작본부를 보도본부로 개편하고 일반적인 뉴스를 제작하는 보도국은 보도본부 하에, <시사매거진 2580>과 같은 심층 보도를 전담하는 부서는 편성제작본부 시사제작국 하에 두었다.

라디오본부도 라디오국으로 격하하고 편성제작본부 내에 두었다. 이렇게 되면서 편성제작본부는 편성 업무뿐만 아니라 시사제작국과 교양제작국, 그리고 라디오국 제작을 총괄하게 됐다. 또한 편성제작본부 시사제작국 내에는 제작진이 취재한 내용을 먼저 확인하는 '팩트체크팀'을 신설했다.

이에 더해 그간 보도국 산하의 독립된 부서였던 영상편집부가 보도국 편집3부로 개편됐다. 이에 따라 영상부국장이 담당했던 편집 권한은 보도국장과 보도본부장에게로 이관됐다.

"거짓말에 '새빨간'이라는 형용사가 필요한 건 이 때다"

 24일 서울 여의도 MBC에서 열린 MBC 조직개편 규탄 기자회견에서 연보흠 기자가 발언하고 있다.

24일 서울 여의도 MBC에서 열린 MBC 조직개편 규탄 기자회견에서 연보흠 기자가 발언하고 있다. ⓒ MBC 노동조합


구성원들은 이러한 조직개편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최승호 PD는 기자회견에서 "이번 조직개편은 편성제작본부에 시사프로 제작하는 부서를 다 밀어 넣음으로써 김재철의 최측근인 편성제작본부장의 강력한 직접통제를 받게 한 것"이라며 "편성제작본부 하에서의 시사 프로그램 통제가 어느 수준인지는 지난 1년간 < PD수첩 >이 받은 탄압이 보여준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 PD수첩 >을 제작하는) 시사교양국은 본래 TV제작본부 산하였는데, 갑자기 편성제작본부 산하가 된 후 사사건건 제작중단 지시가 내려오고 있다"는 최승호 PD는 "이번 조직개편으로 이제 MBC에서 모든 시사프로그램들이 이 같은 탄압과 통제를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시사매거진 2580>의 데스크를 맡고 있는 연보흠 기자도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 통폐합을 했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 PD수첩 >과 MBC 뉴스를 죽어라 밟아 놓고는 에너지를 합치라는 게 말이 되나"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연보흠 기자는 "거짓말 앞에 '새빨간'이라는 형용사가 필요한 건 이 때다"라며 "진짜 한 마디로 '웃기는 소리'"라고 촌평했다.

연보흠 기자는 보도제작본부의 분리가 기자들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이 문제의 핵심은 '취재하고 기록하는 자'가 아니라 '기는 자'로서의 기자를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앞으로는 (사측에서) 눈엣가시 같은 사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보도본부에서 편성제작본부로 보내겠다는 협박이 가능해진 것"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라디오 프로그램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손석희의 시선집중>등을 연출한 김현수 PD도 깊은 우려를 표했다. 그는 "이 조직개편은 회사에서 라디오에 대한 앞으로의 발전 을 포기한다는 것"이라며 "또한 지난 한 해 동안 회사 경영진 상대로 싸워온 라디오본부 구성원에 대한 보복을 뜻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24일 서울 여의도 MBC에서 열린 MBC 조직개편 규탄 기자회견에서 한학수 PD와 박성호 기자가 기자회견문을 낭독한 후 구호를 외치고 있다.

24일 서울 여의도 MBC에서 열린 MBC 조직개편 규탄 기자회견에서 한학수 PD와 박성호 기자가 기자회견문을 낭독한 후 구호를 외치고 있다. ⓒ MBC 노동조합


이어 김현수 PD는 "지난 한 해동안 김미화·윤도현·김어준·김종배 등 많은 진행자들이 방송을 떠났는데 그런 일들이 앞으로 더 노골적으로 있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든다"며 "<손석희의 시선집중>만 해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인다"고 털어놨다.

영상기자회 회장인 양동암 기자도 마이크를 잡았다. "이번 조직개편은 파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조직과 조합원들을 어떻게 괴롭힐지 오랜 고뇌 끝에 나온 '화풀이성, 괴롭히기 조직개편'이라 생각한다"는 "독립된 부서였던 영상편집부문을 뉴스편집국에 갖다놨다는 부분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양동암 기자는 이번 총선을 예로 들며 "영상편집부가 뉴스편집국으로 간 것은 대선보도를 앞두고 입맛에 맞는 영상편집을 통해 불공정한 보도를 하려는 시스템을 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영상기자들이 취재한 원본이 모이는 '인제스트 룸' 역시 이번 개편을 통해 보도본부에 맡긴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앞으로 아무도 모르게 촬영 원본을 없애고 그 기록도 남기지 않을 수 있다"며 사태의 심각성을 호소했다.

"이번 조직개편안은 김재철 사장이 스스로 심각한 위기상황임을 인식한 것"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모두 더욱 강력한 투쟁에 나설 것임을 결의했다. 김현수 PD는 "23일 총회를 열고 라디오본부 구성원들이 기명으로 사장에 공개질의서를 보냈다"며 "회사가 이에 대해 책임 있는 답변을 내놓지 않으면 또 다른 싸움을 시작하기로 결의했다"며 추가적인 행동에 나설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양동암 기자 역시 "앞으로도 불공정 보도에 대한 감시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지금은 파업으로 현장을 떠났지만  불공정한 영상편집이 되도록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연보흠 기자도 "이라며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신호이기 때문에 다른 시너지는 몰라도 투쟁의 시너지는 이루어지고 있는 거 같다"고 평했다. 이어 "이런 힘을 바탕으로 김재철 사장을 몰아내고 이번 개편을 무효화할 테니 시청자들은 믿고 기다려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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