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무한상사 ‘그랬구나’의 한 장면

<무한도전> 무한상사 ‘그랬구나’의 한 장면 ⓒ MBC


<무한도전>이 MBC 파업으로 9주째 결방하면서 제 삶에도 '거짓말' 같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한때는 <무한도전>이 일주일의 낙인 적도 있었습니다. 멤버들의 아옹다옹은 생각 없이 웃게 만드는 주말의 피로회복제 같은 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일곱 남자들의 소음이 사라지고, 데시벨이 줄어들자 문득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꽤나 시끄럽고 피곤한 주말 저녁을 보냈다는 것을요. 

도전을 일삼는 콘셉트가 사실 중구난방일 수밖에 없잖아요. 선수도 아닌 사람들이 단기간에 봅슬레이를 배워 타질 않나, 웬 오호츠크해까지 가서 혹한기 체험을 하고, <나는 가수다> 패러디에, 음악 프로그램도 아니면서 가요제를 몇 번이나 열었어요. 이렇게 6년 동안 매주 형식이 바뀌는 까다로운 프로그램이니, 파업에 나선 김태호 PD를 대체할 인력을 못 구하죠.

전 김태호 PD가 방송가의 대세를 좇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름지기 요즘 예능 프로그램의 최고봉은 너도 나도 다 만드는 서바이벌 오디션이잖아요. 도전이라는 콘셉트를 위해 그보다 적절한 형식이 없는데 말이죠. 조정 경기 끝나고 <무한도전> 멤버들이 펑펑 우는 것보다, 오디션 참가자들의 구구절절한 집안 사연을 듣는 게 훨씬 감동적이에요.

짱돌을 들고 파업을 감행하게 만든 분, 김재철 사장님의 도전 정신이야말로 <무한도전>이 본받아야 할 덕목입니다. 언젠가 '무한상사' 특집 2편을 만든다면, 유부장 위에 김사장 역을 맡으셔도 되겠어요. 직장이라는 전쟁터에서 가장 큰 무기는 총도 수류탄도 아닌, 낙하산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몸소 가르쳐줬으니까요.

김 사장님의 법인카드 내역에서 특급호텔과 일본의 피부관리샵을 출입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지만, 업무 추진비라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생각이에요. 특히 K팝 관련 외부 손님 접대를 위한 호텔 이용임을 감안하면, 한류 발전에 앞장선 행보는 아이돌 그룹보다 높게 평가돼야 마땅해요. 아, 어쩌면 귀가할 시간도 없이 호텔에서 쪽잠을 청할 만큼 격무에 시달렸던 건 아닌지 걱정도 되고요.

재능 있는 언론사 사장으로서 한국의 숙박 문화와 일본의 선진 미용문화에 대한 탐사보도를 준비 중이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숙박왕'은 부끄러운 오명이 아니라, 더 자주 불려야 할 자랑스러운 별명이에요. 

철저히 <무한도전> 멤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쉼없이 달려온 그들에게 넓은 아량으로 잠시 휴식기를 준 배려라고도 볼 수 있어요. 게다가 종편 출범으로 방송사도 많아졌으니, 예능 프로그램에 잔뼈가 굵은 멤버들은 <무한도전>이 아니라도 일자리 걱정은 없을 테니까요.

퇴행성관절염이 생길 우려에도 기꺼이 쪼인트를 내어주고 윗선의 깊은 뜻을 방송가에 전달한 김 사장님 덕분에 깨달은 것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6년 만에 조용한 토요일 저녁을 되찾으면서, 그동안 TV에만 매달렸던 제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자연히 가족과의 대화가 늘어나고, 혼자 명상의 시간도 갖게 됐어요.  

진짜 고맙습니다. 품위를 찾게 해주셔서. 사상 초유로 간판 예능 프로그램의 9주간 결방이라는 거짓말 같은 현실 속에서 만우절을 맞게 해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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