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자 이각을 보호해야 하는 조선시대 호위무사 3인방도 함께 트레이닝복을 입었다. (왼쪽부터) 이민호·박유천·정석원·최우식

왕세자 이각을 보호해야 하는 조선시대 호위무사 3인방도 함께 트레이닝복을 입었다. (왼쪽부터) 이민호·박유천·정석원·최우식 ⓒ SBS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던 빈궁의 의문사로 사경을 헤매다 300년을 거슬러 대한민국 서울로 날아온 왕세자와 그를 보필하는 3인방의 좌충우돌 문명 적응기. 만화나 어린이 대상 SF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다 큰 어른에게도 먹힐지 의문이었다. 특히 300년이란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조선 시대 인물과 21세기의 그럴싸할 조화를 어떻게 이룰 지도 관건이었다.

300년이라는 어색하고도 격한 간극을 메꾸기 위해 SBS <옥탑방 왕세자>가 취한 것은 다름 아닌 '웃음'이었다. 그것도 요즘 잘나가는 <개그콘서트>에 정면 승부를 거는 양 '대박'으로 웃기다. 예상가능 했듯이, <옥탑방 왕세자>의 대부분의 웃음 소재는 300년 전 인물들이 2012년 대한민국의 문물을 겪으면서 생기는 해프닝이다.

여가라고는 붓글씨와 저잣거리 주막에서의 수다, 사랑하는 여인과의 담소밖에 몰랐던 이들이 TV나 스마트폰이 주는 즐거움을 알 리 없다. 변기통 물을 우물로 오인하고 화재 진압에 사용한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상황이다.

<개콘>보다 웃긴 드라마, 300년 전 저하의 '2012년 적응기'

 SBS <옥탑방 왕세자> 속 한 장면

SBS <옥탑방 왕세자> 속 한 장면 ⓒ SBS


하지만 <옥탑방 왕세자>의 웃음 코드가 기발한 것은 이제 막 현대 문명을 접한 원시인(?)이 겪는 애로사항의 소소한 디테일을 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명색이 한 나라의 왕세자(박유천 분)지만 단돈 천 원이 없어서 편의점에서 라면 먹는 여고생들을 부담스럽게 쳐다보다가, 결국 안에 들어가 "내일 아침 돈화문이 열리면 음식값을 후하게 쳐주겠다"고 근엄하게 요청했더니 "헐"이라고 답하는 알바생. 허나 "헐"이란 단어를 정말 몰라 "헐값이 아니라 후하게 쳐주겠다"면서 진지하게 응수하는 저하가 뿌린 웃음은 시작에 불과하다.

만 원짜리 지폐 속 세종대왕을 보고 편의점에서 갑자기 "전하"를 외치며 큰절을 올리더니, 급기야 지난 28일 방영된 3회에서는 다 찢어져 털이 날아갈 정도로 낡은 'N'사 등산복을 걸친 도치산(최우식 분)의 우아한 패션쇼와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뒷간(화장실)을 엘리베이터로 오인한 4인방의 난데없는 변태쇼가 민망의 방점을 찍게 된다.

4인방은 혼자 사는 여자 옥탑방에 염치없이 빌붙어 사는 것도 모자라, TV 속 활시위를 잡아당기는 박해일을 보고 놀라 칼을 꺼내 들며 죽일 듯이 TV를 부수고 불까지 내는 등 막대한 재산 피해를 입힌다. 하지만 이들이라고 그러고 싶어서 매번 사고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아마 우리도 300년 뒤로 이동하게 된다면 딱 그들 짝일 테니 말이다.

빈궁을 찾으러 떠돌아다니다 2012년 대한민국으로 넘어오게 된 조선 시대 4인방. 이들이 난생처음 겪게 되는 문명과의 충돌에서 보여주는 설정은 영락없는 코미디다. 우스꽝스러운 장면에 방바닥을 데굴데굴 굴러갈 정도로 웃음보를 터뜨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자로 귀한 대접만 받다가 단숨에 남의 집에 신세 지는 거지로 전락한 왕세자 저하의 진지하고도 근엄한 표정은 보는 이들을 울컥하게 한다.

세자 이각에 몰입한 박유천, 인간의 비애까지 고스란히 전달

 SBS 드라마 <옥탑방 왕세자> 한장면

SBS 드라마 <옥탑방 왕세자> 한장면 ⓒ SBS



<옥탑방 왕세자>는 단순히 당황스럽고 유치한 드라마에 그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재미는 물론 낯선 문물의 충격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인간의 비애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면서 현대인의 공감대를 자아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300년 시공을 뛰어넘는 정신 사나울 법한 전개 속에 21세기 사람들은 보고 듣기만 해도 웃음보가 터져버리는 대사와 행동을 진짜 조선 시대 왕세자인 양 자유자재로 소화해내면서 극의 중심을 이끌어가는 남자 주인공 박유천의 존재는 상당히 믿음직스럽다. 어느새 박유천이 연기하는 세자 이각에 몰입해 마치 내가 300년 뒤 미지의 세계에서 곤욕을 치르는 듯한 아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황당무계한 상상력 속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마력. 이것이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 <옥탑방 왕세자>가 가진 가장 큰 무기가 아닐까 싶다.

한편 28일 방송된 <옥탑방 왕세자>는 11.2%(AGB닐슨미디어리서치 전국기준)의 시청률로 22일 방송된 2회보다 0.7%P 오른 수치를 기록했다. 동 시간대 방송된 MBC <더 킹 투하트>는 14.5%, KBS 2TV <적도의 남자>는 8.1%의 시청률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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