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널에서 훈련하는 박주영

아스널에서 훈련하는 박주영 ⓒ Arsenal Korea

이쯤되면 '박주영 실종사건'이라고 불러도 할말이 없다. 벵거 감독의 머릿속에 박주영은 이름만 있을뿐 정작 경기에 나서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더 이상 아스널에 박주영이 기대할 자리는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7골을 터뜨리며 여유있는 대승을 거둔 경기에서도 박주영을 볼 수 없었다는 사실은 그의 팀내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후반 초반에 이미 점수차가 벌어지면서 사실상 승부는 끝난 상황이었다. 이쯤되면 최근 빡빡한 일정에 지쳐있는 판 페르시를 비롯하여 주전들에게 휴식을 주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었다. ]

 

하지만 벵거 감독은 이번에도 에이스에게 휴식보다는 추가 골맛을 통하여 기를 살려주는데 주력했고, 교체카드로는 최근 임대연장설이 나오는 노장 티에리 앙리를 선택했다. 결국 박주영은 주축 선수들이 단체로 부상을 당하지 않는 이상 경기에 나오기를 기대하기 힘든 최후의 옵션 정도라는 사실을 또 한번 확인한 셈이다.

 

무분별한 이적이 낳은 부작용

 

박주영에게 아스널에서의 미래는 비관적이다. 이미 앙리의 임대연장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데다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참가하느라 자리를 비뤘던 마루앙 샤막까지 돌아온다. 블랙번과의 경기까지 연패 수렁에 빠져있던 아스널은 현재 4위권 재진입을 위하여 남은 리그 경기에서 총력전을 펼쳐야 하는 상황이다. 갑자기 벵거 감독이 생각을 바꿔 검증되지않은 카드인 박주영의 출전시간을 배려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박주영의 현재 상황은 자신의 수준이나 팀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꿈'과 '도전'이라는 막연한 환상만을 가지고 덤벼들었던 무분별한 이적이 어떤 부작용을 초래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줬다고 할 만하다. 박주영이 지난해까지 프랑스 리그 AS모나코에서 준수한 기량을 선보이며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하지만, 냉정히 말해 아스널과 같은 빅리그 명문클럽에 입단할 정도의 기량이나 성과를 검증받았다고 하기는 힘들다.

 

실제로 많은 유럽 축구언론과 전문가들이 아스널의 박주영 영입에 의아함을 표시했으며 성공 가능성도 회의적이었다. 잉글랜드와 프랑스 무대의 엄연한 수준 차이도 있거니와, 박주영은 빅리그에서는 철저히 무명이나 다름없었다. 프랑스 무대에서도 괜찮은 수준의 공격수였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박주영의 기량이 결코 리그를 평정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박주영의 잘못만은 아니라지만 모나코가 2부리그로 강등되었다는 사실도 그리 자랑스럽지 못한 경력이었다.

 

벵거 감독에게 박주영은 '보험용'에 불과?

 

물론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할 때도 처음에는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박지성과 박주영의 차이는 결국 감독이나 팀의 성향과 얼마나 궁합이 맞는지에 달렸다. 박지성은 맨유에서 국가대표팀이나 PSV 아인트호벤 시절만큼의 비중을 부여받지는 못했지만 팀플레이와 전술소화능력에서 자신만의 장점으로 맨유에 녹아들었다. 여기에는 이적 초기 충분한 출전기회를 제공하며 박지성이 성공적으로 리그에 적응할 수있도록 배려한 퍼거슨 감독의 신뢰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박주영은 달랐다. 당시 아스널은 주축 선수들의 이적 공백으로 전력보강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고, 어떻게든 가시적인 성과가 필요했다. 만일 아스널이 지난 시즌만큼의 전력만 유지했다고 해도 벵거 감독이 박주영 영입을 검토했을지 의문이다. 벵거 감독에게 박주영은 팀에 절실히 필요한 존재라기보다는, 성공하면 다행이고 안 되도 크게 타격은 없는 '보험용' 정도에 불과했다.

 

자신에게 맞는 팀을 고르는 기준은 '출전기회'와 '능력 발휘에 최적화된 환경'이다. 그러기위해서는 당연히 소속팀 감독과 팀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 어느 나라건 그 팀이나 감독이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고, 설사 뛰어난 선수라고 해도 감독이 원하는 스타일이나 팀의 우선순위에 맞지 않으면 무용지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특히 빅리그나 빅클럽이라는 화려한 명성이나 이름값에만 연연하여 자신이 처한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이적을 추진하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이력을 망치는 지름길이 될 수밖에 없다. 이적협상에서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환상에 눈이 멀어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다가 수렁에 빠지는 선수들이 의외로 많다. 박주영의 현 주소가 지금 그러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박주영, 기다리지 말고 행동에 나서라

 

박주영은 축구인생 내내 주전에서 밀려난 경험이 없다. 대표팀에서도 모나코에서도 박주영은 언제나 팀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군문제라는 현실 장벽속에 유럽무대에서 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급함과 아스널이라는 빅클럽의 달콤한 유혹에 박주영은 현실감각을 잃은 것 아닐까.

 

박주영도 이제 20대 후반이다. 성장 가능성을 믿고 차근차근 출전기회를 기다려도 되는 유망주가 아니다. 박주영 정도의 나이와 경력이라면 어느 곳에서건 주전으로 한창 뛰어다녀야할 시기다. 굳이 아스널이나 EPL이 아니더라도 박주영 정도면 유럽무대에서 충분히 원하는 팀을 고를수 있었다. 하지만 아스널은 박주영에 맞는 옷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대표팀도 박주영 선발을 다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최강희 대표팀 감독은 그간 컨디션이 좋은 국내파 선수들이 소속팀에서 경기를 못 뛰는 해외파보다 낫다는 소신을 밝혀 왔지만 박주영에게만큼은 그의 대표팀 내 위상이나 활약을 고려해 특별히 선발할 수 있다는 유연한 태도를 보여왔다.

 

그러나 이제는 박주영이 대표팀에서 가지는 특별한 가치를 감안한다고 해도, 소속팀에서 최소한의 경기출전조차 제대로 못하는 선수를 당대 최고의 선수들만이 모이는 대표팀에 기용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문제가 있다. 컨디션도 컨디션인데다 대표팀이 소속팀을 대신하여 선수의  경기감각을 살려보내는 곳은 결코 아니다. 박주영도 막연히 기다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해있는 주소를 냉철히 깨닫고 어떤 방식으로는 행동에 나서야할 때다.

2012.02.07 10:32 ⓒ 2012 OhmyNews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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