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이 영화 제 2의 <도가니>쯤 되는 거야?'

영화 <부러진 화살>을 보고 나오며 든 생각이다. 충분하다. 그럴 수 있다. 그랬으면 좋겠다. 가슴을 쥐어뜯으며 옥살이를 했을 김경호 교수(안성기 분)의 한이라도 풀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경호 교수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얼마나 분했을까? 그러면서도 이해가 안 간다. '왜 하필, 왜 하필…. 석궁을 들고 판사에게 갔을까. 오죽하면 그랬겠어?' '그래도 그렇지.' 내 마음속에서 두 아이가 대판 싸운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두 아이가.

설날 온 가족이 본 영화치고는 범상치 않았다. 너무 속상했다. 마치 내가 김경호 교수가 된 것처럼…. <도가니>를 보며 몇 번이나 두 주먹을 불끈 쥐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법'으로 포장된 교묘한 장치의 보호 아래 놓인 법관이 아니라면, 불끈 쥔 두 주먹으로 때려주고 싶었다. 그럼, 나도 김경호 교수 꼴이 되겠지.

영화를 보면서 세 가지 관점이 내 머릿속에 정리됐다. 하나는 '어디까지 리얼리티고, 어디까지 영화적 설정이냐'는 것이다. 다음은 '행위하지 않는 죄에 대한 처벌에 관한 문제'다. 물론 이것은 기독교적 관점(엄밀하게 말하면 성경적 관점)과는 전혀 다른 현실법의 적용에 대한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도가니>처럼 영화가 국민 감정을 자극해 '김명호(영화에서는 김경호) 교수에 대한, 사법부의 오만과 잘못에 대한 재수사를 하든가 혹은 다시 재판을 하는 데 이를 것이냐'라는 것이다.

리얼리티... 기울었지만 사실이다

 <부러진 화살>

<부러진 화살> ⓒ 아우라픽쳐스

1995년 성균관대 입학시험 문제의 오류를 지적한 수학과 김명호 교수. 대학 당국은 오류를 인정하는 대신 며칠 뒤 '해교 행위, 논문 부적격, 연구 소홀'이라는 이유로 김 교수를 재임용에서 탈락시킨다. 이에 맞선 김 교수는 소송을 제기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임용에 대한 문제는 전적으로 학교 측의 재량에 달려 있다"며 패소 판결을 내린다.

김 교수 가족은 미국으로 건너가 살게 되는데, 때마침 '교수 임용법'이 바뀌면서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김 교수는 돌아와 다시 소송을 제기한다. 역시 기각되고 만다. 분노한 김 교수는 석궁을 들고, 당시 재판을 맡았던 박홍우 부장판사를 찾아가 그른 재판에 대해 항의한다. 옥신각신하다 오발이 났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주장이 다르다. 박 부장판사는 '김 교수가 석궁으로 자신을 쏴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혔다'고 하고, 김 교수는 '오발 때문에 화살은 벽에 맞아 부러졌으며, 박 부장판사의 상처는 자해'라는 주장을 폈다.

당시 주요 쟁점을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일부러 석궁을 쐈나? 경찰은 김 교수가 "그게 판결이야!"라고 소리치며 1.5m 떨어져 정조준했다는 입장이었고, 김 교수는 "몸싸움 도중 우발적으로 발사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김 교수가) '응징하려 했다'고 말했고,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혔기에 고의성이 있다"고 밝혔다.

둘째, 화살을 맞고 피를 흘렸나? 경찰은 '박 부장판사는 복부를 맞고 피를 흘렸다'고 주장했으나 김 교수는 '국과수 감정결과 와이셔츠 복부에 피가 없으며, 이는 박 판사가 자해한 증거'라고 맞섰다. 재판부는 '셔츠에 혈흔은 없었지만, 증거 조작은 아니다'라고 결론지었다.

셋째, 판사가 맞았다는 화살은 어디 있나? 경찰은 현장에서 확보했다고 밝혔지만, 김 교수는 국과수 감정결과 목격자가 봤다는 화살과 피 묻은 화살 모두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재판부는 박 부장판사가 화살 9개를 현장에 가지고 갔으므로 증거로 적법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영화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조금씩 비틀긴 했지만, 거의 리얼리티를 확보한 수준이다. 당시 변호를 맡았던 박훈 변호사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법정 안의 이야기들은 거의 다 리얼리티"라고 말했다.

물론 영화는 살짝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영화는 재판부의 입장보다는 김 교수와 박준(실제는 박훈) 변호사(박원상 분)의 이해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정지영 감독이 이른바 '석궁 테러사건'을 주목한 이유가 그것이기에 당연한 귀결이라고 여겨진다. 마치 영화 <도가니>가 교장이나 행정실장의 변호를 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영화 <부러진 화살> 역시 판사나 검사를 변호하려는 의도가 없기에 '기운 사실'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석궁 테러사건'으로 각인된 이 사건이 처음부터 '사법부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며 테러 행위'라는 전제 아래 재판을 거쳤다는 점이다. 이게 바로 사법 당국이 만들어 놓은 각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법 당국이야 머리를 흔들 것이다. '그게 아냐'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당시 사법 당국의 발표는 재판도 끝나지 않은 사건을 '테러 행위'로 규정하지 않았는가.

고 김근태의 저서 <남영동>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지 자꾸 고문사건이 떠오른다. 독재 정권이 고문을 할 때 이미 각본을 만들어 놓고 각본대로 조서를 꾸미는 것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재판부가 무슨 강제력을 가지고 김 교수를 농락했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가 없길 바란다. 사건을 그런 시각으로 보고 시작한 재판의 결과는 공정할 리가 없다. 영화는 내내 이 점을 부각시킴으로 관객을 더불어 분노하게 만든다.

행위하지 않은 죄, 처벌이 가능한가?

 피고 김경호 교수(안성기 분)는 법조문을 조목조목 들이대며 사법부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피고 김경호 교수(안성기 분)는 법조문을 조목조목 들이대며 사법부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 아우라픽쳐스


불가능하다. 현실법은 행위로 드러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 드러났어도 증거가 없으면 처벌할 수 없다. 그러나 난 성경의 눈을 가지고 이 영화를 들여다봤다. 김 교수가 주장하는 게 무엇인가. 자신은 석궁을 들고는 갔지만 석궁을 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협박죄는 인정하지만, 상해죄, 더 나아가 살인미수죄 같은 건 아예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분노한 것은 화살을 쐈다고 몰고 가는 데 있지, 죽이고 싶도록 미운 감정에 대한 죄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그것도 같은 죄인 데도 말이다.

하지만, 예수의 입장에서 보면 김 교수의 주장은 정확히 틀렸다. 행위로 옮기지 않은 죄도 행위로 옮긴 죄와 똑같이 처벌 받는다. 성경은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꿰뚫어 보실뿐 아니라 그 마음의 생각을 가지고 판단하시는 분으로 묘사돼 있다. <사무엘상> 16장 7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라고. 드러나지 않은(증거가 없는) 마음의 생각을 본다는 말이다. 음란한 생각만 품어도 이미 간음한 죄인이고, 미워하는 마음으로 욕만 해도 이미 살인을 범한 것과 다르지 않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태복음> 5장 21~22절)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태복음> 5장 27~28절)

영화에서 마지막 변호사로 선임된 자칭 '양아치 변호사' 박준은 욕이 입에 달려 있다. 물론 편향적이고, 몰상식한 사법부에 대한 신랄한 반발에서 나온 것이 분명하다. 그 욕은 '욕으로 도배돼 있는' 한국영화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 누가 말했던가. "한국영화에서 욕을 빼면 뭐가 있느냐"고. 그래도 <부러진 화살>은 그런 면에서 양호한 편이니 눈감아 준다.

성경은 '미련한 놈'이라는 욕만 해도 지옥에 떨어진다고 말한다. 그러기에 막중한 종교적 거룩성이 아니고는 도달할 수 없는 고결함이라고 재차 자위할 수 있을 터. 행위하지 않은 악한 생각, 분명 성경에서는 처벌의 대상이 된다. 현실과는 너무도 먼,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다.

제2의 <도가니>라고?...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영화 <부러진 화살> 중

영화 <부러진 화살> 중 ⓒ 아우라픽쳐스



영화를 보는 100분 동안,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된 이유는 법복을 입은 자들의 불법 때문이다. 적어도 영화에선 그랬다. 법의 권위를 입고 자신들 나름대로의 해석으로 농단하는 사법부의 몰염치가 그려져 있다. 하긴, 법을 알기에 교묘하게 법을 지키지 않던 자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기에 사회가 썩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 게 아닌가.

"법 위에 사람 없고, 법 아래 사람 없다."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그러나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다 믿는 사람도 없는 건 마찬가지. 참 기이한 세상이다. 법 앞에 만민이 평등하다고 배운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법 질서를 세우기 위해 고속으로 달리는 경찰차는 어떨까? 국민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취조실에서 욕을 하며 다그치는 검찰이나 경찰은 어떨까? 법을 만든 사람들이 법을 어기는 국회는 또 어떤가?

말해 뭣하랴. 근데 이런 웃지 못할 일이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게 슬플 뿐이다. 그런데 영화는 거의 신성시돼 온, 치외법권 지역이던 사법부에 칼을 들이댔다. 이 영화를 보는 사법부 나리들은 분명히 마음이 편치 않을 거다. 그러면 혹시 그 잘 아는 법을 가지고 영화를, 감독을, 김 교수나 박 변호사를 걸고넘어지지는 않을까. 솔직히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야 이슈가 될 것 아닌가.

이태열 판사(이경영 분)와 신재열 판사(문성근 분)의 일그러지다 못해 굳어버린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혹시 이것이 우리 사법부의 고집스러운 자만과 오만의 모습은 아닐까. 반대로 과감히 판사들에게 법조문을 들이대며 항의하는 김 교수와 비뚤어지고 사악한 판사들에게 '법'이라는 '같은 솥 밥'을 먹으면서도 할 말 다하는 박 변호사의 모습은 우리가 닮아야 할 당당한 국민의 표상은 아닐까. 시간을 내 이 영화를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저처럼 불끈 두 주먹 쥐어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부러진 화살 김명호 석궁테러 안성기 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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