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포스터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포스터 ⓒ 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금융재벌 회장 한스 에리크 베네르스트룀의 부패와 비리를 폭로하는 기사를 써 소송에 시달리다 패소한 주간지 <밀레니엄>의 기자인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다니엘 크레이크 분)는 명성과 재산을 모두 날릴 위기에 처한다. 그에게 스웨덴 최고의 재벌 방예르 그룹의 총수 헨리크 방예르(크리스토퍼 플러머 분)가 전화를 걸어온다.

"추악한 사람들을 조사해주게, 내 가족들 말일세."

죽음이 머지않은 자신의 자서전 집필을 부탁하는 헨리크는 40년 전 단서 하나 없이 집에서 사라져버린 손녀딸 하리에트 살인사건의 진실을 조사해달라며 두둑한 보수와 함께 베네르스트룀과의 소송에서 이길 수 있는 확실한 정보를 주겠다는 거부하기 어려운 제안을 한다.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낸 뒤 사회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지만 뛰어난 기억력과 정보분석력, 해킹실력 등으로 보안업체에서 비밀업무 등을 담당하는 리스베트 살란데르(루니 마라 분). 미카엘은 방대한 양의 자료수집과 분석을 위해 그녀를 조수로 고용하고 함께 하리에트 사건을 파헤치는데, 진실에 접근해갈수록 방예르 가문과 관련된 또 다른 연쇄살인사건이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되고 이들은 겉잡을 수 없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할리우드 최고의 비주얼리스트'... 자극성 과하기도

 방예르 가문이 소유한 외딴 섬에서 취재중인 미카엘(왼쪽)

방예르 가문이 소유한 외딴 섬에서 취재중인 미카엘(왼쪽) ⓒ 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이국적 풍광의 스웨덴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데이빗 핀처 감독의 스릴러 영화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스웨덴에서 2005년부터 3년에 걸쳐 3부작으로 출간된 뒤 전 세계 46개국에서 총 6500만 부가 판매된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소설의 원제는 <용문신을 한 소녀(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원작자인 스웨덴 소설가 칼 스티그-엘란드 라르손(스티그 라르손, 1954~2004)은 극중인물인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처럼 언론인출신인데, 반인종주의 잡지 '엑스포'를 공동창간해 편집장으로 실제 활동한 경력이 있으며 반대세력의 암살위협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한다. 미카엘과 리스베트를 주인공으로 하는 총 10부작으로 소설 <밀레니엄> 연작을 구상했지만 3부작까지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채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스티그 라르손의 원작에 <세븐>(1995), <파이트클럽>(1999), <패닉룸>(2002),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 <소셜 네트워크>(2010) 등으로 '할리우드 최고의 비주얼리스트'라는 평을 받기도 하는 데이빗 핀처가 연출한 영화 <밀레니엄>은 2시간 30분이 넘는 상영시간(157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잘 짜여진 구성의 탄탄함이 크게 지루함을 느끼게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부 선정적인 장면들과 전작 <세븐>을 떠올리게 하는 잔혹한 장면들의 과도함이 극의 흐름에 크게 힘을 보태지 못한다. 일부 관객들은 불편해할 정도. 이야기 전개에 필요이상으로 지나치게 자극적이다.

현실의 입체적 반영을 외면... 데이빗 핀처의 한계?

 방예르 그룹 도서관에서 과거 자료를 찾고 있는 리스베트

방예르 그룹 도서관에서 과거 자료를 찾고 있는 리스베트 ⓒ 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한편 영화는 '악의 실체'에 접근해가며 긴장의 끈을 조여가는 과정에서는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하지만, 진실이 밝혀지고 난 이후의 결말 부분에서는 다소 서둘러 봉합되는 느낌을 준다. 마지막 반전도 뒤통수를 때리기보다는 붕 떠있는 느낌이랄까.

자신이 현재의 스웨덴을 만들었다는 자긍심 넘치는 헨리크 방예르와 한 섬의 여러 저택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몇몇은 서로 말도 섞지 않는 가족들, 헨리크의 친형은 나치 신봉자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인 가문의 일부 성원들.

"나치들은 항상 자유를 내세우지."

영화 초반 미카엘과 첫 대면한 헨리크 방예르의 비꼬는 말과 폴란드 차관자금을 유용해 크로아티아 우익단체에 지원하는 금융재벌 베네르스트룀의 행각을 폭로했던 미카엘의 기사 등을 통해 영화는 점증하는 북유럽 극우세력의 득세를 반영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같은 소재를 사회와 등장인물들을 내리누르는 갑갑한 공기처럼 묵직하게 묘사하지 못하고 단순한 소재로 전락시키고 만다. 그러다보니 연쇄살인피해여성들이 유태인이라는 점 또한 할리우드 영화의 도식적이고 작위적인 설정으로 느껴진다. <쉰들러 리스트>(1993), <한니발>(2001), <갱스 오브 뉴욕>(2002), <아메리칸 갱스터>(2007)의 각본을 담당했던 스티븐 자일리언이 시나리오를 썼다.

데이빗 핀처는 극우 파시즘이 득세하는 북유럽의 짙은 안개와 같은 갑갑함 속에서 미카엘과 리스베트가 비밀을 파헤치게 할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역시 그의 장기인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화면, 강렬한 음향과 음악에만 기대어 <밀레니엄>을 완성하고 말았다. 긴장의 수치와 주제의 무게감을 한층 높일 수 있었던 현실의 입체적 반영을 마다한 영화의 정치적, 상업적 고려는 데이빗 핀처의 한계일까, 할리우드의 한계일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자주민보>(www.jajuminbo.net)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밀레니엄 데이빗 핀처 미카엘 리스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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