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때 유독 영어 성적이 안 나오는 친구가 있었다. 모의고사 성적이 온통 1등급인 이 친구는 영어 점수가 늘 발목을 잡았다. 친구는 자율 학습 시간에도 영어 공부를 훨씬 많이 했다. 그럼에도 쉽사리 영어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 친구에게 어느 날 영어 선생님이 말했다.

"영어는 계단을 오르는 것과 같다. 성적이 안 오르는 것 같다가도 한 번에 확 오른다. 그러니 꾸준히 해라."

친구는 선생님 말을 믿었다. 제자리인 성적에도 불구하고 더욱 열심히 영어 공부를 했다. 결국 수능 성적과 가장 가까운 성적이 나온다는 '9월 모의고사'에서 눈물의 2등급을 받았다. 나는 그 말을 응용해 열심히 아파트 계단을 올랐다. 점프력을 늘려 '9월 모의고사' 수리 영역을 마친 점심시간에 결국 농구골대 림을 터치했다.

 고양 오리온스 최진수

고양 오리온스 최진수 ⓒ KBL


지난 11월 11일 전주에서 열린 고양 오리온스와 KCC전에서 이동준(오리온스)은 오른쪽 무릎을 다쳤다. 이틀 뒤, 13일 울산 모비스 전에서부터 이동준은 경기에 빠졌다. 연패를 거듭하는 오리온스에게 최악의 소식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날부터 최진수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프로 데뷔 후 줄곧 큰 기대에 미치지 못한 부진을 털어냈다. 지난 11월 13일 모비스전에서 27분을 뛰며 21득점 6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인사이드를 파고들며 자유투도 11개를 얻었다. 경기 결과는 오리온스가 모비스에 79-99로 패했다. 하지만 부적응, 거품 등 온갖 비난을 듣던 최진수가 존재감을 드러낸 경기였다.

이후 최진수는 꾸준히 경기에 출장했다. 11월 13일을 포함해 현재까지 오리온스가 치른 25경기에 모두 나섰다. 최진수는 팀 내 주축 선수로 뛰기 시작했다. 이 기간 동안 평균 16.7득점 5.9어시스트 1.5블록슛을 거뒀다.

 고양 오리온스 김동욱(오른쪽)

고양 오리온스 김동욱(오른쪽) ⓒ KBL


지난 12월 2일 김동욱이 오리온스에 합류했다. 오리온스로서는 사실상 '전력 외' 선수인 김승현을 서울 삼성에 내주고 김동욱을 데려왔다. 김동욱은 지난 12월 4일 친정팀 삼성전에서 처음으로 오리온스 유니폼을 입었다.

김동욱은 현재까지 17경기를 오리온스에서 뛰며 평균 13.8득점 4.5어시스트를 기록 중이다. 단순한 득점과 어시스트를 넘어서 팀 동료 크리스 윌리엄스와 만점짜리 호흡을 보여주고 있다. 

김동욱과 윌리엄스가 펼치는 2대2 플레이는 오리온스의 확실한 무기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추일승 감독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수비 로테이션에서도 김동욱이 동료들이 놓치는 부분을 잘 잡아주고 있다"며 김동욱을 칭찬했다.

김동욱의 가세로 최진수는 천군만마를 얻었다. 최진수와 김동욱이 공존하며 오리온스의 본격적인 '포워드 농구'가 실현됐다. 추일승 감독이 장신 외국인 선수를 뽑지 않고 다재다능한 윌리엄스를 뽑은 이유가 드러났다. 시즌 전 추일승 감독이 구상했던 밑그림이 그려졌다. 최진수와 윌리엄스의 숨통이 더욱 트였다. 탄력 받기 시작한 최진수가 김동욱의 가세로 한 단계 더 올라섰다. 오리온스를 상대하는 팀들의 수비가 분산됐다.

 고양 오리온스 이동준(오른쪽), 최진수(왼쪽)

고양 오리온스 이동준(오른쪽), 최진수(왼쪽) ⓒ KBL


아직 불안한 부분도 있다. 이동준과 최진수의 공존이다. 11월 11일 KCC전에서 부상당했던 이동준이 지난 7일 모비스와 경기에서 57일만에 복귀했다. 약 14분을 뛴 이동준은 10득점 2리바운드로 성공적인 복귀전을 치렀다.

하지만 최진수와 이동준의 움직임이 겹쳤고, 수비 호흡도 전혀 맞지 않았다. 이동준은 경기 후 언론에 "패턴플레이가 다 바뀌었다"며 팀이 달라졌음을 말했다. 이 경기에서 최진수는 8득점 3리바운드에 그쳤다. "이동준이 빠지니 최진수가 잘 한다"는 언론과 팬들의 분석이 그대로 드러났다.

"최진수와 이동준을 동시에 쓰면서 시너지효과를 내야 한다. 어떻게 극대화를 시키느냐가 우리의 숙제다"라고 추일승 감독이 언론에 밝혔다. 최진수가 완전히 궤도에 올랐음을 드러낸다. 최진수는 이제 완벽히 팀에서 자기 자리를 잡았다. 이제 '이동준과 공존'이라는 계단 하나가 최진수를 기다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http://blog.naver.com/kom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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