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참 상종가를 치고 있는 <개그 콘서트>가 끝나면 더이상 리모컨은 바쁘지 않을 것 같다. 한창 깔깔 웃던 시청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드라마 일부라도 보려고 타 방송국의 드라마로 채널을 돌릴 수도 있고, 'TV 시청은 이만 끝!' 하고  Off 버튼을 꾹 누를 수도 있다.

<개그콘서트>의 클로징 음악이 울리고 왁자지껄 개그맨들이 모두 나와 한바탕 뒤풀이를 하는 개그 콘서트가 끝나고 나면 마치 롤러 코스터가 극 하강을 하듯 조용히 등장하는 프로가 있으니 바로 <다큐 3일>이다.

다큐 3일 90대 노모를 부축하고 매일 지하철을 타는 며느리

▲ 다큐 3일 90대 노모를 부축하고 매일 지하철을 타는 며느리 ⓒ kbs


흥미로운 사실은 일요일 밤 KBS에서는 요즘 두 종류의 공모 당선작이 시청자를 찾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중 하나는 드라마 극본 공모 당선작으로 이 작품들은 현재 KBS <드라마 스페셜>을 통해 방영되고 있다. 또 다른 하나가 바로 <다큐 3일>을 통해 방영되고 있는 시청자 공모 우수작이다.

일요일밤 가장 적극적으로 시청자와 소통하는 두 프로인 셈이다. 늦은 밤을 통해 시청자를 찾아오는 이 프로그램에게 그나마 신인 작가나 시청자의 참여 공간을 확보해 주어서 고맙다고 해야할지, 출근 준비에 리모컨을 던질 시간에 놓여져서 애닮다고 해야 할지. 매번  그 시간대에 눈을 비비고 이 두 프로그램을 보는 심정은 이렇게 두 감정을 오간다.

어느덧 <다큐 3일>이 벌써 200회를 넘었다. 소재 고갈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고 해당 프로는 시청자가 바라 본 우리 시대의 공간이란 공모로 지혜롭게 해결해 가고 있다.

직설적이지 않게, 삶을 지긋이 바라보며 깊은 울림을 전하는 그맛

지난 13일 방송 분엔  시청자 공모 우수작인 박남희 씨의 '지하철의 사람들'을 모티브로 한 '이번 역은 희망 역입니다 -신도림역'이 방영되었다. 1984년에 세워져 이젠 이곳에 몰리는 하루 유동인구가 한 도시의 전체 인구를 넘는 50만 명인, 지하철을 타본 사람이라면 한번 쯤은 거쳐갔을 법한 신도림역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탤런트 강석우 씨의 내레이션과 함께 한 <다큐 3일>에 등장한 신도림 역은 마치 '만인보'처럼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그 모습이 가장 낱낱이 보여지는 곳이다. 고단한 몸을 일으켜 새벽 첫 차를 타고 일터에 가면서도 여전히 일할 수 있음을 감사하는 어르신들, 밤샘 작업으로 고된 몸을 이끌고 그제야 집으로 돌아가는 젊은이들까지 말이다.

그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우리 시대 세대에 따라 달라지는 삶의 양태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그 짧은 잠깐의 3일 동안에도 자살을 시도하는 젊은 여성에서부터 희망을 품고 연수를 위해 종종 걸음을 옮기는 또 다른 젊은 여성의 모습이 등장했다. 이것은 삶의 극과 극, 그리고 그 사이의 넓은 간극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또한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신도림역의 밤을 지키며 수리를 하는 이들과 청소 노동자들의 모습에서, 그리고 마흔이 넘은 나이에 찾아온 망막 색소 변성증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밖에 없는 어느 중년 노동자의 모습에선 삶의 고단함과 장구함을 저절로 깨닫기도 했다.

다큐 3일 인생의 환승, 결혼을 앞둔 젊은이

▲ 다큐 3일 인생의 환승, 결혼을 앞둔 젊은이 ⓒ kbs


이들의 짤막한 인터뷰엔 어느 명사의 멋드러진 말보다 깊은 울림이 전해지는 진실한 말들이 있다. '결혼은 인생의 환승이다, 환승은 꼭 빨리 가야 하는게 아니라 돌아서도 갈 수가 있지만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환승역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게 꽃피기 직전이다, 가장 바쁘지만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절정기를 향해 준비해가는 시간이기에' 등과 같은 말이 그렇다. 고단한 삶 속에서도 여전히 희망을 놓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이 프로그램을 통해 그대로 전해진다.

<다큐 3일>의 매력은 묵묵히 3일, 48시간을 지긋이 바라본다는 데에 있다. 그 시선에 동참한 시청자은 스며들듯 우리가 잊고 있던, 혹은 자주 접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있던, 우리의 시선 외곽에 놓인 공간과 그 공간 속 사람들의 진실을 나지막하게 하지만 호소력있게 전달해 준다는 데에 있다. 서울의 무차별 재개발에 대해 논하는 백 마디의 말보다 그동안 <다큐 3일>이 지켜본 서울 구석구석 구비진 골목길과 이제는 스러져가는 공간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가슴에서 울림이 일어나듯 말이다.

혹시 우리가 놓치고 가는 건 없는지, 우리가 앞만 보고 가다 잃어 버리는 건 없는지. <다큐 3일>을 보다 보면 우리가 지금 쫓고 있는 삶과 가치에 대해 한번 쯤은 되돌아 보게 된다.

다큐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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