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났더니아빠가 우리나라 최대 식품회사 사장이야,
 태어났더니 미국이라서 군대도 안가,
 태어났더니 조각 외모에 축복받은 기럭지야,
 태어났더니 그런 걸 어떡해? 두루두루 인간세계를 즐겨 줘야지."

 <꽃미남 라면가게>에서 정일우와 이청아가 교생과 고교학생 연상연하 커플을 연기한다.

<꽃미남 라면가게>에서 정일우와 이청아가 교생과 고교학생 연상연하 커플을 연기한다. ⓒ tvN

그런데 너, 하나도 안 매력적이야

완벽해도 너무 완벽해 인간세계에 잠시 놀러온 환웅마냥 삶을 쉽게 사는 '차치수'. 국내 최대 식품회장 차성기업 외동아들이다. 안방 여심을 사로잡는 남주인공이 갖춰야 할 요건은 모두 갖췄다. 그런데 문제는 '유치해도 좋으니 50분간만이라도 이 시궁창 같은 현실을 잊고 맘껏 가슴 떨리게 해 달라' 간절히 소원하며 TV 앞에 앉은 여성들을 하나도 휘어잡지 못한다는 것. 지난달 31일 처음 전파를 탄 tvN 새 월화 드라마 <꽃미남 라면가게>(이하 '꽃면')이야기다.

<꽃면>은 임용고시 준비생 양은비(이청아 분)가 체육 교생으로 나간 '차성고'와 학교 앞 자기 아버지의 라면가게 '은비분식'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로맨스 이야기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꽃미남들이 잔뜩 나온다. 양은비를 두고 삼각관계를 끌고 갈 차치수(정일우 분)와 천재적 셰프 최강혁(이기우 분), 또 이들과 함께 장차 은비분식을 꽃미남 라면가게로 재오픈 할 치수의 친구 김바울(박민우 분)과 우현우(조윤우 분). 거기다 F4를 연상시키듯 대형을 맞춰 등하교를 함께하는 치수의 또 다른 친구들 두현, 희곤, 강모까지. '누나' 시청자들이 참으로 바람직하게 여기는 등장인물 구성이다.

 <꽃미남 라면가게>에는 꽃미남들이 대거 출연해 여심을 겨냥하고 있다.

<꽃미남 라면가게>에는 꽃미남들이 대거 출연해 여심을 겨냥하고 있다. ⓒ tvN


하지만 꽃미남들이 출연한다고 그들이 흥행을 보증하는 '꼭 미남'은 아닌가보다. 여성들이 연애 판타지 기본 배경으로 깐다는, '까칠한 재벌남'과 '키다리 아저씨' 둘의 구애 대상 은비가 전혀 안 부럽다. 도대체 왜? <꽃보다 남자>와 <성균관 스캔들>에 버금가는 꽃미남들이 대거 총출동했는데도, <커피프린스 1호점>나 <파스타>의 커피전문점과 레스토랑처럼 특수한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달콤 살살 멜로인데도, <내 이름은 김삼순><최고의 사랑> 속 우리의 진헌과 독고진에 전혀 밀리지 않는 까도남이 등장하는데도, <넌 내게 반했어>와 <메리는 외박 중>의 풋풋한 하이틴 로맨슨데도, 왜 <꽃면>은 설레지 않을까.

 그동안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는 나름의 매력을 살려 흥행해왔다.

그동안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는 나름의 매력을 살려 흥행해왔다. ⓒ tvN


부러우면 진다? 안 부러우면 진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로맨틱 코미디물의 주요 소비층인 요즘 젊은 여성들의 연애 판타지 트렌드를 잘못 읽었기 때문이다. 뭐, <꽃면>이 노리는 떨림이 여성들의 로맨스 판타지였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건 2000년대 귀여니가 온라인을 넘어 단행본으로 세를 떨치던 머나먼 옛날 옛적에나 통하던 이야기! 지금은 '리얼리즘'이 대세다.

그렇다고 그 '리얼'이 속세의 연애를 닮은 그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남녀에게 주어진 상황과 환경은 온갖 억측이 난무하고 되레 초현실적이어도 상관없다. 오직 감정의 '리얼'이다.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던 시대는 지났다. 오히려 현실에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비현실적 상황은 철저하게 감정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로맨스 코미디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도구로 작동한다.

앞서 언급한 드라마들과 함께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로맨틱 코미디물을 비교해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으슥한 밤 나눠 마신 신비의 꽃술로 영혼이 바뀐 남녀라는 말도 안 되는 설정(<시크릿 가든>)도 그들의 사랑에 몰입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안됐다. 설령 여자 친구가 값비싼 한우 생고기만 고집하던 구미호(<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였더라도 말이다. 오히려 손발을 오글거리게 만드는 유치한 설정도 TV 앞의 여심들은 개의치 않는다. 이들에게 필요한건 오직 '부러움'의 감정. 실제 연애에서 느끼는 온갖 종류의 마음이 한데 뒤섞여 빚어내는 감정을 대리만족한다면 아무것도 거치적거릴 게 없다.  

 <시크릿 가든>과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는 상황설정이 판타지지만 여성들의 연애 판타지 로망을 잘 건드리면서 방영 내내 인기였다.

<시크릿 가든>과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는 상황설정이 판타지지만 여성들의 연애 판타지 로망을 잘 건드리면서 방영 내내 인기였다. ⓒ tvN


그런데 <꽃면>은 지금 여심으로 하여금 은비를 부럽도록 만드는 게 없다. 오히려 차치수와 최강혁 사이의 은비가 아니라 정일우와 이기우 사이에서 연기하는 이청아가 부러우면 부러울 뿐이다. "로맨틱 코미디가 참 오래된 장르라 새롭게 뭘 하기가 힘들다. 큰 설정은 같지만 기존에 보지 못했던 감정선이나 캐릭터, 감수성을 보여줄 것이다." 제작설명회에서 <꽃면>의 정정화 감독이 밝힌 포부다. 설정은 기존의 로맨틱 코미디의 모든 요소를 한데 뭉쳐놔 십분발휘하는지 모르지만, 감정선과 감수성은 전만 못하다. 솔로 제1 지침이 커플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했던가. 허나,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는 여주인공이 안 부러우면 지는 거다.

 <꽃미남 라면가게> 주요 내용 갈무리

<꽃미남 라면가게> 주요 내용 갈무리 ⓒ tvN


여느 로맨틱 코미디처럼  '우연히' 만나 '오해'로 인해 발전하는 차치수, 양은비 관계가 앞으로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대로 가다간 <꽃면>의 라면은 끝까지 안 끓을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부잣집 도령으로 항상 넘치게 살았으나 사랑을 모르던 차치수가 양은비, 최강혁과 꽃미남 친구들의 라면가게에 합류해 이루는 일종의 대안가족 속에서 '사람냄새'를 이야기한다는데, 로맨스에도 집중하기 힘든데 가능할지 미지수다.

<꽃면>이 앞으로 본격적으로 '꽃미남 라면가게'를 중심으로 얼마나 유의미한 사건을 만들어낼지, 또 사랑의 미세한 감정들은 얼마나 민감하게 표현해낼지 그리하여 여심을 비롯해 남심까지 얼마나 휘어잡고 몰입하게 할지가 관건이다. 분명한 건 4회까지 방영한 현재 <꽃미남 라면가게>의 양은 냄비 속 물은 끓지도 않았다.  

꽃미남 라면가게 이청아 정일우 이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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