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교와 이정향 감독의 만남으로 화제가 된 영화 <오늘>을 보았습니다. <미술관 옆 동물원>으로 상큼하게 데뷔해 <집으로>로 히트를 친 이정향 감독이 9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지요. 지난달 27일 개봉한 이 영화는 현재 전국 누적 관객 수 3만 명가량을 기록하며 고전하고 있습니다.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인거죠. 그럼에도 꼭 보고 싶었던 영화여서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저는 킨텍스 메가박스에서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영화관 안에는 저를 포함해 단 세 명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빨간 의자들이 즐비한 텅 빈 영화관 안이 어찌나 썰렁하던지요. 그렇지만 지루할꺼라는 예상과는 달리 영화는 상당히 훌륭한 편이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 보여주는 구성과, 인물들이 지닌 진정성에 집중해 볼 수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관객 수가 적을까, 아쉬움이 들 정도였습니다.

 영화 <오늘> 포스터.

영화 <오늘>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약혼자 잃은 다혜,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다

뺑소니 사고로 약혼자를 잃고 힘겹게 버티는 다혜(송혜교 분)의 이야기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약혼자를 살해한 소년범을 용서한 뒤, 용서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며 살아가는 전직 PD 다혜. 그녀는 마음 안의 복잡한 감정들을 애써 누른 채 다른 이들에게 용서를 권하며 지친 일상을 버텨냅니다.

그런 그녀의 집을 드나들며 다혜를 챙기는 여고생 지민(남지현 분)은 톰보이처럼 활달하면서 공부도 잘하는 부잣집 딸아이. 마냥 씩씩해 보이지만 아버지와 오빠의 폭력에 시달리며 증오를 키우는 인물입니다. 다혜와 지민이는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지만, 때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다투고 돌아서기도 합니다.

 영화 <오늘>속 장면들.

영화 <오늘>속 장면들. ⓒ 롯데엔터테인먼트


지민이는 다혜에게 언니가 그 소년범을 용서한 건 진심에서 우러나와 한 행동이 아니라고 말하며 비난의 화살을 쏘아댑니다. 다혜는 그런 지민이의 말에 상처를 입지만, 1년 전 약혼자를 살해한 소년범의 소식을 알게 되자 혼란에 빠집니다. 자신의 용서로 새 사람이 되었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 소년은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른 뒤 소년원에 입소해 있었습니다. 다혜는 자신이 진정으로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는 진실과 직면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영화는 한결 무거워집니다.

영화 <오늘>은 이정향 감독의 색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고품격 감성영화입니다. 여전한 감수성과, '다혜' '지민' 등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드러나는 순수성과, 메모해두고 싶은 대사들은 이 감독이 녹슬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용서'에 지나치게 천착한 나머지 불편한 순간들을 드러냅니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무게를 싣다 등장인물들에게 주제를 말하게 하는 실수를 범하고 말거든요.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용서에 대한 주제 때문이 아닙니다. 과거를 끌어안은 채 현재를 살아가는 주인공 다혜는 대다수의 현대인들이 투영된 인물. 사람들은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상처를 입고, 그 상처와 마주하기를 꺼려하며 현재를 보내게 됩니다.

다혜는 일반인들이 공감하기 힘든 큰 사건을 겪은 인물이지만, 끊임없이 과거를 변주하고 각색하며 후회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영화가 진정성 있게 다가오는 것은 그것 때문 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 오늘을 살아가는 나와 닮았다

 영화 <오늘>속 한 장면.

영화 <오늘>속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끊을 수 없는 인연이 주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지민. 아직 어린 고등학생이지만 그녀의 상황 역시 마음 아프게 다가옵니다. 가족 때문에 사는 게 힘든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매일 마주쳐야 하는, 그렇지만 외면하고 싶은, 차마 외면할 수도 없는 관계 속에서 멍들어가는 이들이 지민을 본다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영화 <오늘>은 품격있는 여성 영화입니다. 여성감독과 두 여배우들은 가볍고 상업적인 영화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정성을 다해 진실에 근접한 영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스타 송혜교는 연기파 배우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남지현 역시 분노를 품은 지민이 역을 잘 소화해냈다고 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폭력 오빠' 역을 맡은 송창의의 변신!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의 태섭을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이대로 묻히기엔 너무 아까운 영화 <오늘>. 사는 것도 힘들 때가 많은데 왜 굳이 회색빛 영화를 봐야하냐고 물으신다면, 딱히 뭐라 말하긴 힘들겠지만요.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욱신대는 마음에 눈물을 참지 못해 펑펑 울고 말았거든요.

오랜만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영화였고, 진심이 깃든 영화였다고 저는 '느꼈'습니다. 공들여 만든 한 편의 영화가 조금 더 많은 이들에게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추천의 글을 마무리해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도시농부 타운하우스(http://blog.naver.com/dntownstory)에도 실렸습니다.
영화오늘 송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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