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스터

영화 포스터 ⓒ Warner Bros.

다양한 형태와 이유로 인간들에게 들이닥치는 재난 혹은 재앙을 다룬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공포심을 주면서 동시에 재미를 안겨준다.

<눈 먼 자들의 도시>와 같이 갑자기 사람들의 눈이 멀어버리는 영화도 있고, <인베이젼>처럼 외계생명체의 공격으로 모든 사람들이 무표정하게 변하는 영화도 있다.

이런 다양한 재난과 재앙을 다뤘던 영화들 사이에서 다시금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으면서 동시에 공포를 안겨줄 영화 한 편이 등장했다.

문이나 버스 손잡이, 컵, 전화기 등 많은 사람들과 함께 쓰는 물건을 통해서도 옮기고, 신체 접촉은 물론 공기를 통해서도 옮겨지는 무시무시한 전염병이 소재다.

게다가 좀처럼 한자리에서 보기 힘든 빵빵한 캐스팅으로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바로 영화 <컨테이젼>이다.

아무 것도 만지지 마라!

베스(기네스 팰트로)는 홍콩 출장을 다녀온 뒤로 몸이 좋지 않음을 느낀다. 단순한 감기 증상으로 알았지만 그녀는 남편 토마스(맷 데이먼) 앞에서 갑자기 목숨을 잃고, 동시에 같은 증상으로 아들까지 세상을 떠난다.

베스가 죽은 후로부터 세계 곳곳에서 같은 증상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늘어가기 시작한다. 미국 질병통제센터는 새로운 형태의 전염병임을 밝혀내고 백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빠르게 변이하는 바이러스 때문에 쉽지 않다.

치버 박사(로렌스 피시번)와 미어스 박사(케이트 윈슬렛)는 어떻게든 전염병의 근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오랑테스 박사(마리옹 꼬띠아르)는 직접 홍콩과 마카오에서 전염병 원인을 알아내고자 한다.

반면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는 알렌(주드 로)은 정부가 전염병에 대해 숨기는 것이 있다며 음모론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퍼뜨리기 시작하고, 이는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번져나가면서 전염병보다 더한 혼란을 초래하기 시작한다.

심각하지만 재미있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

 영화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 ⓒ Warner Bros.


영화 <컨테이젼>은 이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기 쉬운 작품이다. 포스터와 예고편에서 뿜어내는 느낌과 실제 스크린에서 뿜어내는 느낌에 상당한 거리감이 있기 때문이다.

볼거리가 가득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재난 영화 한 편 혹은 굵직한 느낌으로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자랑하는 듯한 블록버스터 한 편을 기대한다면 <컨테이젼>은 분명 실망스러운 작품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할리우드산 재난 블록버스터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컨테이젼>은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영화처럼 느껴지기 쉽다. 전세계를 죽음으로 몰고가는 전염병에 대한 이야기지만 생각만큼 긴박하지 않고 덤덤하게 스토리를 전개시켜 나간다.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죽지만 어느 누구도 극적이지 않고, 빵빵한 캐스팅이지만 튀는 주인공 하나 없으니 다소 심심한 경향도 있다. 전염병이 발생하는 처음부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직전 장면까지 마치 실제 있었던 지난 사건을 다큐멘터리로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물론 실제 다큐멘터리보다 훨씬 재미있는 다큐멘터리 느낌이다. 그러나 장르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재미없는 영화로 느껴지기 쉽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전작 <트래픽>을 본 사람들이라면 좀 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딱 <트래픽> 같은 느낌이다.

나름 허를 찌르는 전개

 영화 속 한 장면

영화 속 한 장면 ⓒ Warner Bros.


<컨테이젼>은 나름 여러가지 방법으로 관객들의 허를 찌른다. 그래서 새롭게 느껴질 수도 있고,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우선 초호화 캐스팅만 바라보고 <컨테이젼>을 선택하다면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당혹스러울 수 있다. 처음부터 등장하는 기네스 팰트로부터 시작해서 몇몇 할리우드 스타들이 생각보다 일찍 세상을 떠난다.

게다가 캐스팅은 빵빵하지만 어느 누구에게 초점이 맞춰지지는 않는다. 즉 주인공이 없다.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주체가 없으니 이 캐릭터 저 캐릭터 이야기가 산발적으로 스크린에 펼쳐진다. 그런데 또 산만한 느낌은 아니다.

주인공이 없다는 것은 영웅이 없다는 의미도 된다. 보통 할리우드산 재난 영화에는 영웅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보통 주인공은 천재지변에도 끝까지 살아남아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컨테이젼>은 아니다.

인물 하나하나가 평범하다. 전염병의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극적인 행동을 하거나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 영웅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 없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에 하나 둘씩 쓰러져 갈 뿐이다.

그리고 자극적인 요소 또한 없다. 약간의 판타지도 섞이지 않은 느낌이다. 외계에서 온 물질 때문에 사람들이 변한다거나 좀비가 되는 등의 상상력이 없다. 극 중 인물들은 감기 증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병을 앓다가 죽고, 그것을 막기 위해 백신을 만드는 박사들의 이야기로 영화는 채워진다.

영화가 이렇다가 보니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다큐멘터리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전염병은 최근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사스, 조류독감, 신종플루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무서운 것은 전염병이 아닌 인간

 영화 속 한 장면

영화 속 한 장면 ⓒ Warner Bros.


<컨테이젼>은 한순간의 접촉만으로도 전염되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새로운 질병에 대한 공포를 관객들에게 안겨주기도 하지만, 세상에 혼란이 도래했을 때 인간들에게 나타나는 이기심에 대한 공포 또한 안겨주고자 한다.

세상에 혼돈이 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음모론을 들고나오는 사람이 있고, 진실보다 음모론에 더 많은 호응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도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돈 계산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기밀보다 가족이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질서를 무너뜨리는 사람도 있다.

<컨테이젼>은 노골적으로 이런 것들을 표현하고 보여주지는 않지만, 담담하게 이런 사람들을 조명함으로써 전염병으로 시작했지만 이기적인 인간으로 이어지는 공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자극은 없다. 분명히 <컨테이젼>은 수많은 자극적인 요소들로 채워넣을 수 있는 소재와 이야기를 지니고 있지만 그런 부분들을 모두 제외시킨 듯하다. 그러니 심심하고 지루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상영관을 나서자마자 손을 씻게 만드는 영화

 영화 속 한 장면

영화 속 한 장면 ⓒ Warner Bros.


<컨테이젼>은 분명히 지루하지만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영화다. 관객의 마음을 들었다가 놨다가 하는 강약 조절은 없지만 충분히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들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걱정하게 만든다.

기대한 바와 달라 재미없다고 느꼈던 사람들도 보는 내내 자신이 앉아있는 상영관의 의자, 자신이 팔을 걸치고 있는 좌석 손잡이 그리고 옆 사람의 기침 소리가 상당히 신경쓰일 것이다. 상영관을 나서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해 깨끗하게 손을 씻게 만드는 영화가 <컨테이젼>이다.

자극적인 요소가 없고 보통의 장르 영화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기에 기대한 것과 다르게 실망감을 느낄 수 있지만, 가만히 돌이켜보면 너무나도 사실적이라 언젠가는 영화 속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컨테이젼>은 여기에서부터 오는 공포를 노린다. 영화 속 전염병은 마지막에 밝혀지는 원인만 다를 뿐,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전염병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빵빵한 캐스팅에 대한 기대감, 포스터와 예고편을 통해 본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을 조금만 내려놓고 <컨테이젼>을 본다면 기분 나쁘지만 가슴 깊이 느껴지는 공포를 맛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컨테이젼>이 가진 매력이다.

컨테이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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