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200회를 맞이한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방송 200회를 맞이한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 MBC

김희철이 <황금어장> '라디오스타'를 떠난다. 이제 자리를 잡나 싶더니, 군대를 간단다.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이행해야 하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지러 간다는데 말릴 수도 없고, 이것 참 답답하다.

 

지난 6개월 동안 김희철은 신정환의 빈자리를 제법 잘 메웠다. 주지하다시피 '라디오스타'에서 신정환의 존재감은 단순히 '네 명의 MC 중 한 명'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 그는 '라디오스타'의 시작과 끝이었다.

 

그의 토크는 단순히 게스트와 1:1로 주고받기 위한 차원이 아니었다. 신정환의 토크는 다른 '라디오스타' 토크의 출발점 그 자체였다. 김구라의 논리정연하고 시니컬한 독설은 신정환의 이른바 '무(無)논리 개그'가 있어서 돋보일 수 있었고, 윤종신은 신정환의 토크를 주워 먹으며 한 번 더 게스트를 흔드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김국진은 신정환의 토크로 인해 어수선해진 장내를 정리하는 캐릭터였다.

 

결국 '라디오스타'가 여타의 토크쇼와 다르게 게스트 중심이 아닌 MC 중심으로 가고, 그래서 게스트의 예능감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평균 이상의 재미를 보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신정환의 역할이 컸다.

 

그런 자리였기에 중압감도 만만치 않았을 터. 그러나 김희철은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잡아가며 적응하기 시작했다. 김희철은 영리했다. 그는 신정환의 자리에 앉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뭔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김구라와 어떻게 해서든 얽히는 일이었다.

 

김구라는 무겁고 딱딱하며 날카로운 캐릭터다. 그래서 그보다 연장자인 김국진이나 윤종신조차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어지간해서는 웃지 않고 당황하지도 않는, 남들은 모르는 게스트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게스트를 무너뜨리는 캐릭터인 그를 어찌할 수 있는 건 오직 신정환 뿐이었다. 그는 김구라의 남들보다 다소 긴 턱을 움켜쥐며 그것을 희화화시켰고, 말이 되지 않는 막무가내식 개그로 김구라의 논리적인 언변을 무너뜨렸다.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알았던 김희철

 

 김희철은 때때로 막무가내식 멘트를 던지면서 김구라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

김희철은 때때로 막무가내식 멘트를 던지면서 김구라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 ⓒ MBC

 

신정환의 자리는 김구라의 모공에서 땀이 퐁퐁 쏟아지게 하는 곳이라는 걸 김희철은 알았다. 그러나 그는 신정환처럼 김구라의 턱을 잡거나 윽박지르며 공격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김구라에게 무한한 애정의 감정을 표현했다. 그와 스킨십을 하며 사랑이 담뿍 담긴 눈빛으로 쳐다봤다. 신정환과는 정반대의 방법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김구라를 흔드는 데 성공했다. 그가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엉길 때마다 김구라는 당황해했다.

 

그렇게 김구라와 얽히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킨 김희철은 점차 자신의 무식함(?)을 드러내며 김구라와의 시너지 효과를 노렸다. 예컨대 그는 게스트로 나온 존 박에게 "영화 <아메라칸 아이돌>을 잘 봤다"고 말해 김구라로부터 "이런 바보짓 그만하자"고 면박을 당했고, 김구라가 존박에게 "예능에서 너무 진지하다"고 지적하자 "진지를 안 드셨나"라는 언어유희 개그를 구사해 김구라의 말문을 막게 하며 웃음을 끌어냈다.

 

무엇보다 의외의 모습은 8, 9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들이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다. '라디오스타'는 '고품격 음악방송'답게 어느 예능보다 이런 게스트의 출연이 잦은 방송이며, 이들이 지난날의 에피소드를 풀어놓고 한바탕 웃고 떠들다 가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예능이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90년대 초반부터 가수 활동을 했던 윤종신과 신정환, 그리고 대중가요와 팝(Pop)에 해박한 김구라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05년에 '슈퍼주니어'로 데뷔한 김희철이 94년 '룰라'로 데뷔한 신정환 만큼 해주길 바라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예상 외로 김희철은 8, 90년대 대중음악에 남다른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는 강수지와 하수빈의 노래를 기억해내 흥얼거렸고, 이적의 음악에 매료돼 있었다. 게스트는 물론 MC들조차도 그의 의외의 모습에 감탄하며 더 쉽게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었다. 포인트를 콕 집은 모창은 덤이었다.

 

'라디오스타'가 200회를 맞이했다. 신정환은 갔지만, '라디오스타'는 살아남았다. 이제 그의 빈자리를 훌륭하게 메웠던 김희철이 떠난다. 또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채울 것이다. 제작진이 어련히 잘 알아서 할까 만서도, 뼛속까지 '라스빠'인 기자로서는 노파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김구라의 모공에서 땀을 쏙 빼놓을 수 있는 재주, 이것이 '라디오스타'의 새 MC가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임을 제작진이 잊진 말았으면 한다.

 

2011.08.29 10:40 ⓒ 2011 OhmyNews
라디오스타 신정환 김희철 김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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