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지전>의 소년병 남성식을 연기한 이다윗

영화 <고지전>의 소년병 남성식을 연기한 이다윗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배우 이다윗, 이름이 생소하다고? 영화깨나 본다고 자부하는 관객들이라면 이창동 감독의 <시>(2010)에서 할머니 윤정희의 속을 끓이게 만들던 무심한 중학생 손자를 기억할 것이다. 그도 아니면 <극락도 살인사건>(2007)에서 순진무구하지만 욕을 입에 달고 살던 태기는 어떤가.

어쩌면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예쁜 어린이 선발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세 살 터울 여동생 덕에 드라마 <무인시대>(2003)에 동생의 오빠 역으로 덜컥 캐스팅됐다. "그때는 완벽하게 신기한 세상"이었지만 어느 순간 촬영장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 소년에게 학교와 집, 그리고 놀이터 외 또 다른 "자신만의 새로운 공간"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리고는 총 18편의 조단역을 거치며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영화 데뷔작 <극락도 살인사건>으로 흥행의 기쁨도 맛봤고, 이창동 감독의 <시>로 칸 레드카펫도 밟아봤다. '어린 연개소문' 등 아역들의 필수과정도 거쳤다. 그리고 이제 장훈 감독의 <고지전>에서 신하균, 고수, 김옥빈 등 쟁쟁한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전투지였던 '애록고지'에서 가장 먼저 비극적 죽음을 맞는 열여섯 소년병 남성식으로. 그런 이다윗을 지난 28일 상암동 <오마이뉴스> 본사에서 만났다.

"전쟁신은 리허설부터 진짜 정신이 없었어요. 사람들은 많고 앞에서 폭탄은 터지고, 누굴 따라가야 하는데 뒤처지면 미친 듯이 달려가고(웃음). 그래도 찍고 나면 (화면이) 그렇게 멋있고 감동적일 수가 없어요. 군복이요? 어색했죠. 헬멧이나 장비도 그렇게 무겁고 답답할 수가 없었는데, 또 나중엔 익숙해지더라고요. 그렇게 군대에 익숙해지는구나(웃음)"

악어중대 형님들, 잘 지내고 계세요?

 <고지전>의 소년병 남성식은 주요인물 중 가장 먼저 죽음을 맞는 비극적인 인물이다.

<고지전>의 소년병 남성식은 주요인물 중 가장 먼저 죽음을 맞는 비극적인 인물이다.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감독님은 '훈남'이세요. 아빠같이 푸근하면서 섬세하고요. 그런데 현장에서는 평상시와 달리 다가가기 힘든 카리스마가 있었죠. 류승수 선생님은 조언도 많이 해주고 스승님 같아요. 분위기 메이커고. 신하균 선배요? 진짜 엉뚱해요. 저랑 스무 살 차이가 나는데, 평소 이미지와는 진짜 달라요. 언젠가는 아이유의 '삼촌팬'이라며 '오늘 음중(<쇼 음악중심>) 방영하는 날 아니야'고 하더라고요(웃음). 평소 무대 인사나 인터뷰 때와는 180도 달라요."

그런 훈훈한 분위기 속에 산 속에서 전쟁과 같이 진행된 <고지전>의 촬영은 이다윗에게 일종의 '병영체험'이었다. 선배들과 촬영 전후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누며 "귀동냥을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래서 이다윗은 선배들을 '악어중대 형들'이라고 표현했다. 더불어 '전쟁영화' <고지전>은 이 열여덟 소년에게 어떤 특별한 시각을 부여해줬다.

"장훈 감독님은 성식이가 가장 큰 피해자라고 했어요. 전쟁이 뭔지 아무것도 모르다가 직접 와서 겪어 보니 장난이 아닌 거죠. 그런 두려움과 공포감이 쌓여가다가 전쟁에 또 익숙해지죠. 더군다나 악어중대의 죽음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이잖아요.

편집된 장면 중에 시체를 치우다가 성식이가 죽은 척하고 있던 인민군을 발견하는 신이 있어요. 도망가던 그 인민군을 쏜 성식이가 처음엔 죄책감과 자괴감을 느끼던 중 오기영(류승수 분)에게 칭찬을 듣고는 씩 웃죠. 그만큼 전쟁이 무섭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에요."

그렇게 전쟁이 무섭다는 걸 몸소 간접체험한 이다윗은 그래서 더더욱 또래 학생들이 <고지전>을 많이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예전엔 전쟁영화를 보며 "와 멋있다"라고 감탄할 뿐이었지만, 이제는 전쟁의 참혹함이 마음속에 각인돼버렸다.

"학교에서 알려주는 건 단 몇 줄 뿐이잖아요. 촬영할 땐 몰랐는데 영화를 보며 가장 치열했던 애록고지가 한국전쟁의 본질이구나 싶었어요. 왜 싸우는지도 모르고, 서로 죽고 죽이고, 또 옆 사람이 죽었는데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고. 뭐랄까, 전쟁에 몸서리치게 됐어요."

"<시> 이후 영화에 대해 한층 고민하게 됐어요"

 <시>를 통해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던 이다윗. 좌로부터 제작자 이준동 파인하우스필름 대표, 이다윗, 배우 윤정희,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이창동 감독.

<시>를 통해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던 이다윗. 좌로부터 제작자 이준동 파인하우스필름 대표, 이다윗, 배우 윤정희,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이창동 감독. ⓒ 유니코리아


이다윗은 <극락도 살인사건>을 하며 "이게 영화구나"를 느꼈다고 했다. 고립된 외진 섬에서 벌어지는 추리극인만큼 실제로 섬에 갇혀(?) 몇 달간 생활하다 보니 선배들과 헤어지기 싫은 허전함에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그랬다면 지금의 이다윗을 만들어준 이창동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을까?

"<시> 현장은 오디션부터 달랐어요. 몇백 명이 응시한 걸 처음 봤는데, 2차 오디션때야  감독님을 처음 봤죠. 체구도 크고 무섭고 말도 못 걸겠고(웃음). 고사 날 캐스팅이 확정됐는데, 감독님께 대본에 대해서 물었더니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반문하시더라고요. 아, 이래서 남다른 분이구나(웃음).
 이다윗이 연기한 소년병 남성식을 주인공 삼은 <고지전>의 포스터

이다윗이 연기한 소년병 남성식을 주인공 삼은 <고지전>의 포스터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리허설을 참 많이 했는데, 집을 촬영한 마지막 1주일 세트 촬영 때야 긴장이 좀 풀렸던 것 같아요. 그때의 고민과 긴장이 다른 영화 촬영할 때도 여운으로 남아있어요. 연기에 대해 물어 볼 사람도 없고 혼자 고민해야 하고. 그 여운이 끝나갈 때 쯤 <고지전>을 촬영하게 됐죠. <시> 이후 다른 방식으로 연기하게 됐고 영화에 대해 한층 고민하게 된 거 같아요."

이렇게 연기에 대해 또래보다 성숙하게 고민하는 배우 이다윗도 실생활에서는 수험을 걱정하는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연기 외에 푹 빠져버린 드럼을 치기 위해 친구들과 재미로 만든 밴드 활동도 열심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공부에 소홀하게 된 상황은 걱정일 수밖에 없다. 여전히 "현실은 성적표고, 행복은 성적순"일 수밖에 없으니까. 특히나 "연극영화과 외에 다른 선택을 해 보라"는 선배들의 조언을 들은 뒤엔 더더욱 고민에 빠졌다고.

선택해 온 영화, 캐릭터만큼이나 또래답지 않은 진중함이 엿보이는 배우 이다윗. "키는 진짜 더 커야 되는데"라고 걱정을 할 때, 그는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열여덟 소년의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앞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다는 이다윗이 더 이상 '아역'이 아닌 배우로 다가올 날이 머지않은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이다윗 고지전 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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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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