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국가대표 이호정(14) 선수는 밝은 미소와 성격이 인상적인 대한민국 피겨의 미래다

피겨 국가대표 이호정(14) 선수는 밝은 미소와 성격이 인상적인 대한민국 피겨의 미래다 ⓒ 곽진성


한 소녀가 있다. 가수 '빅뱅'을 좋아하고, '무한도전'을 즐겨보는, 그래서 얼핏 보기엔 평범한 여자아이, 하지만 열네 살의 소녀는 고혹적인 음악이 흐르는 은반 위에서, 놀라운 변신을 시작한다. 그의 연기는 한 마리 불새와 같다. 빛나는 열정으로 지켜보는 이들에게 뜨거운 감흥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열정을 머금은 지상 위의 작은 꽃은, 은반 위의 찬란한 불꽃으로 성장하고 있다. 고통스런 부상을 극복하고, 대한민국 피겨 국가대표로 우뚝 선 이호정(14, 서문여중) 선수를 만났다.

"피겨는 나의 꿈!" 불새가 되어 나빌레라

지난 2010년 8월, 주니어 월드 그랑프리 대표. 선발전 피겨 스케이터 이호정은 어두운 표정으로 은반 위에 섰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게 만든 통증에 눈 앞이 캄캄했다. 시합을 앞 둔, 몇 주는 그에게 있어, 최악의 시간 중 하나였다. 몸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고통에 스핀 연습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부랴부랴 진통제를 맞고 대회 출전을 감행했지만, 통증은 야속하게도 멎지 않았다.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피겨 국가대표 이호정 선수, 은반 위에서 이 선수는 열정 가득했다

피겨 국가대표 이호정 선수, 은반 위에서 이 선수는 열정 가득했다 ⓒ 곽진성


이호정 선수의 어머니 박용숙(40)씨는 그런 딸을 지켜보며, 조심스레 대회 '기권'을 생각했다. 고질적인 발목 부상 그리고 대회 일주일 전부터 상태가 더욱 악화된 고관절 부상. 어머니는 딸의 아픔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더 이상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당시 호정이가 너무 아파해, 마음이 조마조마 했어요. 주니어 대표 2명을 뽑는 큰 대회였지만 기권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호정이가 출전하고 싶다는 마음을 밝히더라고요. 마음을 비우고 연기를 펼치겠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승낙은 했는데, 걱정이 됐어요. 제발 무사히만 경기를 펼쳤으면 하는 생각이었죠." - 이호정 선수 어머니

그런데, "피겨는 나의 꿈이다", 라는 소망을 간직한 이호정은, 부상에 굴하지 않고 출전을 선택했다. 그리고 빛나는 은반 위에 섰다. 그렇게 스케이터의 열정을 머금은, 프리 스케이팅 경기가 시작됐다. 열네살의 소녀는 고통을 버티며, 차가운 은반 위에서 연기를 시작했다.

그의 프리 스케이팅 프로그램 타이틀 '불새'는 그런 열정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고통으로 인해 눈에선 왈칵 눈물이 쏟아졌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를 끝마쳤다.  그리고 그런 집념의 연기는  곧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부상을 딛고 대회에서 2등을 기록, 주니어 그랑프리에 출전할 수 있는 대표에 선발된 것이다. 하지만. 작은 기적에 들뜬 것도 잠시, 부상의 긴 터널을 벗어나기 위한 사투는 계속되고 있었다.

우승만큼 빛난 세계 주니어 23위, 이호정의 미래는 밝다

 이호정, 밤늦은 은반 위에서

이호정, 밤늦은 은반 위에서 ⓒ 곽진성


그 해 11월, 이호정은 또 한번 시련을 겪었다. 선수 생명을 건, 뼛조각 제거 수술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복숭아 뼈가 으스러져 뼛 조각을 제거해야 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이었고, 이호정은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힘찬 스케이팅을 할 수 있었다.

그런 이호정에게 기회는 뜻하지 않게, 또한 빠르게 찾아왔다. 수술 후, 불과 4개월 후인 2011년 3월. 주니어 선수들의 최고의 대회인 <2011 강릉 ISU 세계주니어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 대한민국 대표로 출전하게 된 것이다.

<세계 주니어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는 각국 출전 선수의 성적이 중요했다. 각국 대표들의 성적에 따라 다음해 각국 주니어 그랑프리 티켓이 배정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회 24위 안에 든다면 5장의 티켓을 받을 수 있지만, 쇼트 프로그램 경기 통과(24위 밖)를 못하면, 티켓은 단 3장에 그치고 만다.

그렇기에 이호정의 손에 주니어들의 국제무대 경험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부상 이전의 이호정이라면 상위권을 노려볼 만했다. 하지만 몸이 완전하지 않아 세계 24위 이내 진입이 불투명했다. 게다가 노련미도 부족했다.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 중, 최연소였기에, 긴장감은 배가 됐다.

 안무 동작을 짜고 있는 이호정 선수

안무 동작을 짜고 있는 이호정 선수 ⓒ 곽진성


"정말 많이 떨리고 긴장이 됐어요. 대표팀 언니가 관중을 보면 더 떨린다고 조언해 줬었는데, 정말 수많은 우리나라  관중을 보니 긴장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큰 무대이기에 긴장되던 순간, 이호정의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었다. 당시, 같은 과천 팀이었던 동갑내기 국가대표 친구 조경아(14)를 비롯한 팀원들이었다. 친구들이, '이호정 화이팅'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두 손 모아 응원을 하는 모습이,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그런 응원에 힘을 얻은 이호정은 힘을 내 스케이팅을 시작했다. 수술 후의 발목상태는 완전하지 못했다. 수술 전에, 훌륭히 뛰던 트리플 점프 연습도 부족했다. 하지만 이호정은 두려움 대신 도전을 선택했다. 심장이 뛰었다. 뜨거운 불새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처럼, 러시아의 28세 무명 작곡가를 불꽃으로 만든 그 불새의 선율처럼,

 풀려버린 스케이트화 끈을, 신혜숙 코치가 묶어주고 있다

풀려버린 스케이트화 끈을, 신혜숙 코치가 묶어주고 있다 ⓒ 곽진성


부상으로 침묵했던, 대한민국 피겨의 불새는 그렇게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이호정의 열정은 불새가 되어 은반 위를 나빌레는 듯했다. 부상 때문에 최고의 연기는 아니었다. 안타까운 실수도 있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 연기는 관중과 심판들에게 뜨거운 감흥을 선사했다.

성적은 프리스케이팅에 참여한 24명 중, 23위. 대한민국 피겨 미래였기에 하위권의 성적이 아쉬울 법도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그랑프리 티켓 5장을 확보시킨, 부상 중에도 최선을 다한, 우승만큼 빛나는 성적이었다. 

피겨 요정의 설레는 마음은, '빅뱅과 시아준수 사이'

그리고 4개월여가 지난 2011년 7월14일, 한체대 빙상장에서 만난 이호정의 표정은 밝았다. 2011의 새 프로그램 준비에 박차를 가한 그의 표정에선 기대와 설렘이 묻어 있었다.

 인터뷰 중인 이호정 선수, 빅뱅과 시아준수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가 더욱 밝아졌다

인터뷰 중인 이호정 선수, 빅뱅과 시아준수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가 더욱 밝아졌다 ⓒ 곽진성


8월 3, 4일 2011 주니어 대표 선발전을 앞둬, 긴장될 법도 하지만 부상이 완쾌되고, 밝은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기에 행복한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눈치였다. 의례적으로 하고픈 말이 있는지 물었는데, 들려온 답이 재밌었다.

"네, 이 말 꼭 써주시면 좋겠어요.(웃음) 좀 생뚱맞지만, 제가 가수 빅뱅 팬이거든요. 이 사실 좀 알려주세요! 아… 그런데, 사실 요즘 모차르트 연극보고 시아준수도 좋아지고 있어서 고민이에요. 둘 다 너무 좋아요. 어쩌죠?(웃음)"

은반 위를 벗어난, 대한민국 피겨의 미래는 또래의 여중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명동으로 쇼핑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는, 또 TV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열혈 시청자이자, 학교 운동회에서, '선수'는 달리기 출전을 못해서 아쉬워하는 그런 밝은 청소녀였다.

그런데, 피겨 이야기로 화제가 변하자 이호정의 눈빛이 달라졌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호정은 3월에 있었던 <2011 강릉 ISU 세계주니어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 이야기를 꺼내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대회에서 뚝따미쉐바(러시아)를 보며 많은 것을 배웠어요. 정말 잘하더라고요"

 이호정 선수,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호정 선수,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곽진성

그녀가 감탄한 뚝따미쉐바, 이름만 듣고 어느 여염집 뚝배기집 딸 정도로 생각한다면 큰 오해다. 뚝따미쉐바는 러시아에서 2014 소치 동계 올림픽을 바라보고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러시아 피겨의 신성이다.

가능성 있는 선수를 알아보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러시아의 혜안은 부러운 대목이다. 우리나라도 이호정을 비롯, 김해진, 조경아, 박소연, 박연준등. 재능있는 97라인을 갖췄지만 그런 지원은 열악한 실정이다.

지원은 부족하지만, 이호정은 스스로 피는 불꽃으로 성장하고 있다. 한 사람을 보면서 알차게 꿈을 키운다. 그 사람은 바로 많은 피겨 스케이터들의 꿈, 피겨여왕 '김연아'다.

"연아언니를 존경해요. 정말 너무 잘해요. 우리나라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너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뭐랄까, 차원이 다른것 같아요.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죽음의 무도를 좋아했는데, 이번에 아리랑을 옆에서 지켜보며 소름이 돋았어요. 연습때에도 한결같은 언니의 집중력을 배우고 싶어요"

이호정의 꿈은 올림픽에 출전해 아름다운 연기를 펼치는 것이었다. 후회없는 연기를 펼쳐, 올림픽 메달에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꿈을 위한 동반자는 김해진, 조경아, 박소연, 박연준 같은, 동갑내기 97라인 친구들. 시합 중에도 서로의 연기를 지켜보고 응원해주는 국가대표 5인방은, 대한민국 피겨의 밝은 미래였다.

불새, 이호정은 소중한 친구들의 응원과 사랑을 받으며 더 큰 무대로 비상하고 있었다.

불새 이호정 피겨 스케이터 빅뱅 시아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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