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상장에 들어서고 있는 신은정 선수

빙상장에 들어서고 있는 신은정 선수 ⓒ 곽진성


피겨 스케이터들에게 '더블 악셀' 점프 성공은, 전문적인 선수로 진입하는 첫 관문(5급과정)이다. 많은 선수들이 이 고비를 넘기위해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수없는 시도와 실패, 그 끝에 얻어지는 성공이란 달콤한 열매는 우리네 인생의 지향점과도 닮아 있다. 지난 13일 만난 신은정(13) 선수(이하 은정)는 더블 악셀 점프와 한판 승부를 벌이며 꿈을 향한 도전을 계속하고 있었다.  

피겨 스케이터 신은정, 더블 악셀과의 한판 승부

하나, 둘, 셋... 열셋. 그리고 열넷.

지난 13일. 은정이는 연습 도중 열네 번 넘어졌다. 쿵, 쿵, 안타까운 낙하의 충격이 촬영하던 기자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하지만 넘어진 은정이는 아무렇지 않게 일어났다. 그리곤 곧바로 점프 연습을 재개했다.

고통을 잊은 강철소녀란 표현이 어울렸다. 잠시 후, 열다섯 번째 점프가 계속 이어졌다. '제발, 이번엔 성공을...', 기대가 컸지만, 은정이의 이번 점프도 약간의 차이로 아쉽게 미끄러졌다. 넘어진 은정이의 입에서 짧은 아쉬움이 터져나왔다.

"휴."

힘에 부친 듯 한숨을 내쉬며 빙판 위에 잠시 앉아있던 은정이는 잠시 후, 빙상장 입구 쪽으로 와 물을 들이켰다. 무엇인가를 곰곰히 생각하는 듯보였다.

 신은정 선수, 연습 중. 생각에 잠겨있다

신은정 선수, 연습 중. 생각에 잠겨있다 ⓒ 곽진성


피겨 선수로 꿈을 가진 이후 다른 더블 점프들을 무난히 성공시켜온 은정이. 하지만 새롭게 극복해야 할 점프는 쉽지 않았다. 이 점프는 은정이로 하여금 '바이킹'을 탈 때와 같은 공포심을 느끼게 했다.

두려운 점프의 이름, 바로 더블악셀이었다. 피겨 선수들에게, 더블 악셀 점프는 악명이 높다. 이 점프를 극복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선수생활의 운명이 갈리기도 한다. '피겨여왕'의 꿈을 꿨던 많은 피겨스케이터들이 이 더블악셀의 벽을 넘지 못하고, 꿈을 접었다(다른 점프들과 달리 진행방향이 앞인 것이 특징인 점프, 반바퀴를 더 돈다).

더블 악셀은 선수들에 따라, 1년~2년 정도가 소요되기도 하는 어려운 기술이다. 앞으로 뛰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  길고도 어려운 과정에 은정이가 있다. 그래서일까? 처음엔 막연한 걱정이 앞섰다. 은정이의 코치 신혜숙 코치는 당시 상황을 말한다.

 신은정 선수, 점프 연습에 열심히 몰두하고 있다

신은정 선수, 점프 연습에 열심히 몰두하고 있다 ⓒ 곽진성


"은정이는 재능이 있는 선수예요. 그런데, 더블 악셀을 뛰기 전, (은정이가) 겁이 조금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강하게 점프 시도를 못하고 아프지 않게만 탔죠. 자연히 넘어지는 것도 조심스레였죠. 그래서인지, 점프를 극복하는 데 좀 늦어졌어요. 이제 중1학년이니까 올해는 더블 악셀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점프를 할 때 두려움이 앞섰다는 은정이, 하지만 그간 수없는 넘어짐 덕분일까. 은정이는 이제 두려움을 잊은 듯보였다. 목표는 뚜렷했다.

"얼른 더블 악셀을 뛰어서 5급을 땄으면 좋겠어요. 5급을 따야 주니어 대회에 나갈 수 있거든요. 더블 악셀을 넘고, 대회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이고 싶어요."

피겨 스케이터는 눈물을 먹고 성장한다

 신은정 선수가 더블 악셀 연습 도중, 발목을 다쳐 링크 밖으로 나오고 있다

신은정 선수가 더블 악셀 연습 도중, 발목을 다쳐 링크 밖으로 나오고 있다 ⓒ 곽진성


15일 오후 5시, 은정이는 더블 악셀 연습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데, 점프 연습에 열중하던 은정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점프 도중 오른쪽 발목을 삐끗하고 만 것이다. 갑작스런 부상에 놀란 은정이는 부랴부랴 은반을 빠져 나왔다.

"일단 밖으로 나가서, 얼음 찜질하고 있어!(신혜숙)"

지켜보는 신혜숙 코치와 다른 선수들의 눈에도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은정이는 스케이트화를 벗고 대기실에서 상태를 살폈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아 보였다. 오른쪽 발목이 퉁퉁 부어 있었던 것이다.

 신은정 선수, 오른쪽 발목이 부어있다

신은정 선수, 오른쪽 발목이 부어있다 ⓒ 곽진성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은정이. 하지만 침착하고 발빠르게 움직였다. 우선 정빙기계 옆으로 가서 얼음을 한웅큼 떠와, 비닐 랩에 넣고 얼음 마사지를 했다. 그리고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리고 한의원 예약을 했다. 이제 겨우 열세살 소녀치고는 너무나 어른스러운 행동이었다. 스스로 물리치료사가 된 것은 물론 어머니께 말해 치료 예약까지 능숙하게 해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조치를 다한 은정이는 퉁퉁 부은 발목에 얼음을 대고, 10분, 20분 물리치료에 집중했다. 그런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잘 참아내던 은정이의 눈시울이 갑자기 빨개졌다. 지금 이순간 연습을 할 수 없는 현실에, 감정이 북받친 듯보였다.

 속상함이 밀려와 눈물 흘리는 신은정 선수

속상함이 밀려와 눈물 흘리는 신은정 선수 ⓒ 곽진성



어려운 점프와 씨름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린 이, 비단 은정이뿐만이 아닐 것이다. 많은 피겨 스케이터들이 힘든 점프와 싸우며 수없이 울고 또 아파한다. 그런 아픔의 눈물을 통해 어린 피겨 스케이터들은 좀 더 어른스럽게 성장할 것이다. 수없는 실패에 굴하지 않고, 도전 속에 이뤄낸 성공은 얼마나 짜릿하고 아름다울까.

은정이의 오늘의 눈물은 분명 미래에, 지긋지긋한  '더블 악셀' 점프를 넘는 초석이 될것이다. 분명, 최선을 다한 노력은 성공의 순간을 배신하기 않기에, 

 신은정 선수와 신혜숙 코치

신은정 선수와 신혜숙 코치 ⓒ 곽진성


잠시 후, 신혜숙 코치가 은정이의 다리 상태를 보기 위해 다가왔다. 선수를 안정시키기 위해 애써 뻣뻣한 한마디를 건넨다.

"으이구, 안전하게만 타다 그렇게 떨어진 적이 처음이지?  은정아. 부은 것은 차라리 다행이야, 진짜 안 좋게 다친것은 아니니까..... 너무 염려마. 얼른 눈물 그쳐!"

은정이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때, 옆으로 단짝 최다빈 선수가 다가왔다. 짐을 챙기며 조심스레 은정이의 상태를 살폈다. 특별히 말은 없었지만, 같은 피겨 스케이터이기에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위안을 주는 일이었다.

 다친 신은정 선수 옆으로, 절친 동생 최다빈 선수가 다가와 위로해주고 있다

다친 신은정 선수 옆으로, 절친 동생 최다빈 선수가 다가와 위로해주고 있다 ⓒ 곽진성


언젠가 은정이는 말했다. '아직까지 팬이 없지만, 나중에 팬이 생긴다면 정말 열심히 피겨 스케이팅을 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그 꿈이 괜히 기자의 마음에도 와닿았다. 은정이에겐 아직 팬들의 뜨거운 응원은 없다. 하지만 소중한 학교 친구들의 따뜻한 응원이 있다.

"학교 친구들이, 유명한 선수가 되면 자기들을 잊지 말아 달래요. 그런 응원들에 힘이 나요. 최선을 다하려고요."

더블 악셀과의 힘겨운 싸움을 진행중인 은정이, 친구들의 따뜻한 응원이, 힘겨운 은정이의 어깨에 용기란 작은 날개를 돋아나게 할 것이다. 두려움을 극복한, 강철소녀의 더 높은 비상을 기대한다.

신은정 더블 악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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