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저녁 서울 신촌에 있는 한 대학 내 레스토랑에서 <종로의 기적> 출연자들이 모였다. 왼쪽부터 소준문 퀴어영화감독, 정욜 동인련 대표, 장병권 동인련 활동가, 이혁상 영화감독.

7일 저녁 서울 신촌에 있는 한 대학 내 레스토랑에서 <종로의 기적> 출연자들이 모였다. 왼쪽부터 소준문, 정욜, 장병권, 이혁상 감독. ⓒ 이정민


<인생은 아름다워>가 결정적이었다.

2010년, 시청률 20%를 넘긴 이 '김수현식' 홈드라마는 게이 커플의 사랑을 절절하게 그리며 성소수자 담론을 공론화했다. '꽃미남', '게이 남자 친구'와 같은 판타지를 더했다는 지적은 일단 보류해보자. 분명 방송사를 상대로 한 일부 보수단체와 기독교 단체의 거센 항의와 방송 반대 일간지광고 등을 둘러싼 논란은 보수진영 혹은 대중들이 갖는 성소수자들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 오해를 입증하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종로의 기적>은 더 특별하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이 네 게이 남자의 일상을 통해 성소수자들의 삶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게 만든다. 과격하고 정치적인 다큐 아니냐고? 영화는, 차별을 받는 이들은 태생적으로 '나홀로' 또는 '또같이'의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나직이 항변한다.

<종로의 기적>은 군정신병원에서 1년 간 고초를 겪은 단편 <올드랭 사인>의 감독 소준문, 직장에서도 애인을 소개하고픈 동성애인권연대 활동가 장병권, 노래와 사람을 좋아하는 '시골게이' 최영수, HIV/에이즈 감염자인 애인과 동거하는 대기업 직장인 정욜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에서 활동 중인 이혁상 감독은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성소수자와 다른 리얼한 모습을 처음 보여줬다"고 말한다.

개봉(6월2일) 주말 직후인 7일 오후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되기 직전, 이혁상 감독과 주인공들을 만났다. 2009년 뇌수막염으로 세상을 떠난 영수씨는 아쉽게도 함께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자리에 모인 이들의 조합은 활력이 넘치면서 더 없이 진지했다.

 <종로의 기적>에 출연한 소준문 퀴어영화감독.

<종로의 기적>에 출연한 영화감독 소준문. ⓒ 이정민

- 개봉이 지나서야 만났는데, 관객들 반응은 어떤가요?
소준문 : "좋던데요? 물론 어려워한다는 느낌도 들었고."

장병권 : "교육 다큐라고 생각하나? 미디어에서 보여주던 이미지만 보다 아닌 걸 확인하니까… 솔직히 '셀러브리티'처럼 보이는 것도 부담돼요.(웃음) 영화 출연 때문인지 멀게 느끼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그저 낙원동이란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일 뿐인데 말이죠."

소준문 : "의미가 좋아서 출연했지 대표성을 띠려고 한 것도 아닌데, 용기가 대단하다고 칭찬들을 많이 해요. (커밍아웃은) 불편해서, 살기 위해서 한 건데. 정말 큰 뜻을 두지는 않았으면 해요. 영화처럼 편하게, 같이 살아가는 친구 느낌으로 봐줬으면 좋겠어요."

- 아무래도 한국사회가 게이에 대한 이미지가 강하게 고정시켰기 때문이겠죠?
장병권 : "극영화가 아니라 다큐고, 또 사회적으로 전혀 드러나지 않았지만 궁금했던 사람들이라 그런 거 같아요. 또 여성적이거나, 전문적이거나, 외화에서 보는 것 정도로 시각이 편향돼 있잖아요."

소준문 : "영화처럼 우리 삶도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단지 좀 다른 건 영화 출연?(웃음)"

이혁상 : "미디어는 우리를 전문직 혹은 '꽃미남' '꽃게이'거나 반대로 차별받고 슬퍼하며 음성 변조된 모습으로 그리지만, 전 그와는 다.른 스펙트럼으로 많은 걸 담아내려 했죠."

- 트렌스젠더가 주인공이었던 <3xFTM>, 레즈비언 정치인 최현숙을 다룬 <레즈비언 정치인 도전기>와는 달리 꽤나 밝은 분위기예요.
이혁상 : "일상적이고 유쾌한 모습들을 보여준 것도 그래요. 그게 어쩌면 성소수자 내부의 층위나 차이가 아닐까 싶어요.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의 위치가 다 다르고 느낌 차이가 있는데요. 이성애자 사회에서 남성이 지니는 권력이나 문화, 자본 때문에 게이에 대해 더 친근하게 느끼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 그렇다면 여러 반응 중에 분명 부정적 리뷰나 트위터 의견도 없지 않았을 텐데요.
이혁상 : "'너무 미화해서 현실적이지 않다'거나 '나쁜 게이, 싸가지 없는 게이도 있는데, 착하게만 그렸다'는 식의 반응도 있더라고요."

소준문 : "성소수자 안에서도 다양한 성격과 정체성이 있고, 그건 이성애자들도 마찬가지잖아요. 우리를 수많은 게이 중 대표성을 띤 전부로 봐요. 다큐를 극처럼 보는 시선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린 꾸며진 사람들이 아닌데 말이죠."

이혁상 : "복잡한 면도 존재하겠지만 수면 아래 있던 성소수자의 욕망, 그 다양한 욕망들이 이제야 튀어나오는 구나 싶어요. 그래서 이렇게 공론화 되는 것도 좋은 것 같고요."

운동권 영화? 일상이 운동인 걸 어떡해

 <종로의 기적>에 출연한 장병권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종로의 기적>에 출연한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장병권. ⓒ 이정민

-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촬영했고, 개봉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그간 일상이나 생각의 변화는 없었나요?
장병권 : "직장을 쉬는 것 빼고 일상의 변화는 없어요. 주변 반응은 '니가 그런지 몰랐다'부터 '성소수자 운동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게 됐다'까지 다양해요. 동성애인권연대를 후원해주겠다는 분이 더 생긴 걸 보면 영화의 덕인 거죠."

소준문 : "제가 최고의 수혜자죠. 내 영화가 홍보됐으니.(웃음) 근데 한 리뷰 중 '성정체성으로 자신의 소심함을 숨기는 건 아니냐'는 글이 있더라고요. 감독의 의도는, '예술하는 영화 현장은 물론 누구나 차별을 받을 수 있다'잖아요. 그런데 너무 쉽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왜 그걸 고민하느냐, 리더십을 발휘하면 되지 않느냐고."

장병권 : "넌 리뷰도 다 챙겨 보는 구나?(웃음) 영화가 자연스레 군형법과 감염자 인권, 직장 내 성소수자의 평등권에 대해 고민하게 하잖아요. 어려움에 처하거나 자기 부정을 당하고, 소수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기 존재에 대해 말하는 순간 차별이 존재하기 시작하죠.  유성기업이나 예전 이랜드, 반값등록금 학생들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운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 있으니까."

이혁상 : "결국 운동으로 귀결? <종로의 기적>은 운동권 다큐가 아닌데.(웃음)"

장병권 : "운동권이 창피해?(일동 웃음)"

- 그럼에도 <종로의 기적>은 차별받는 소수자의 삶이 결국 운동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을 환기시켜요. 
이혁상 : "쌍용차 문제, 삼성 반도체 문제, 성소수자 기본권과 평등권 등 활동가 병권의 짧은 일상 속에 다양한 운동이 담겨졌어요. 뿌듯한 건 병권의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연대처럼 느껴졌는지 <종로의 기적>을 응원하는 피드백이 온다는 거죠. 성소수자들이 벌이는 연대활동의 존재도 알려주는 계기도 됐고요. 사실 투쟁을 강조한 건 아니었거든요. 이 친구들 일상이 워낙 (투쟁) 현장이었던 거지.(웃음)"

정욜 : "자기 정체성을 커밍아웃한 순간부터 그 사람은 운동권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공공의 영역이든 사적 영역이든. 다들 마음 속으론 격동의 심리 상태를 지니고 있거든요."

이혁상 : "그들도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어요. 이들이 다른 건 평범한 사람이지만 커밍아웃을 했다는 거죠. 그냥 '식당 사장'이었던 '시골 게이' 영수의 일상이 특히 그랬고." 

자발적인 영화 관람, 커밍아웃에서 보는 희망

 <종로의 기적>에 출연한 정욜 동성애인권연대 대표.

<종로의 기적>에 출연한 정욜 활동가. ⓒ 이정민

- 영화가 공공연한 '커밍아웃 프로젝트'인데, 개봉해보니 출연이 후회되진 않나요?(웃음)
정욜 : "잠깐 후회도 했는데, (정체성을 숨겼던) 거짓말을 들켜서? 내 삶을 후회해서? 후회를 한들 차이가 없잖아요. 내 가치관을 가지고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건 마찬가지니까."

장병권 : "후회도 안 하고, 후회하면 안 될 것 같지만, 책임감을 많이 느껴요. 동성애인권연대가 탄탄해지기 위해서도 더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영화를 보고 후원해주겠다는 분도 만났거든요. 그런 것들이 연대의 시작이니까요. 기분도 좋고. 그런 의미를 제 스스로 찾아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 정욜씨는 그 중에서도 HIV/에이즈 감염인 인권연대라는 좀 더 특수한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영화 속에 등장한 애인 석주(가명)씨와는 잘 지내나요?
정욜 : "게이들의 삶이 계속 유지되듯 감염자도 마찬가지예요. 사회적으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민감할 수밖에 없고요. 구금시설 내 감염인들을 강제 채혈할 수 있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거든요. 만약 양성 판정이 나오면 법적 기준에 따라 격리조치가 되고, 치료약 부분도 전부 본인이 부담해야 해요.

또 석주가 핵심 코디네이터를 맡고 있는 '제10차 아시아태평양 에이즈대회'가 8월 개최될 예정인데, 이 정부는 원천 반대를 표명했어요. 정부 지원도 전액삭감하고. '한국도 모자라서 아태 지역에 있는 감염인들을 불러들이느냐'면서."

- 촬영 당시와 비교해 이명박 정부 절반이 지난 지금 사회적 삶은 또 어떻게 변했나요?
장병권 : "분명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들이 존재하지만, 실제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에게 그런 변화는 잘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어요. 제도적으로 바뀐 부분도 없고, 소수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도 전혀 없잖아요. <인생은 아름다워> 방영 당시 '바른성문화를 위한 국민연합'같은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동성애 혐오를 드러내면서 공격했어요. 성소수자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면서요. 우리를 포함해 여러 소수자들을 위한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져야 하는데도, 사회분위기가 보수화적으로 후퇴하는 것 같아 아쉬워요."

정욜 : "커밍아웃은 개인의 자유예요. 하지만 이후 그 커밍아웃으로 인해 짊어질 몫도 개인의 문제로 남는다는 것이 문제인 것 같아요. 어떤 법제도와 같은 방어 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커밍아웃이 늘지 않을 거란 말이죠."

소준문 : "전 관객들 현상을 봐도 움직임이 감지되고 또 변하고 있다고 봐요. 영화 개봉 후 놀라운 건, 대다수 퀴어영화들은 여성관객들이 더 많았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주인공과 같은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극장을 찾아요. 그것 자체가 일종의 커밍아웃이라 생각되거든요. 사회적인 보호는 아쉽지만, 그 분들이 조금씩 힘을 모아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거라는 점에서는 희망을 봐요."

 7일 저녁 서울 신촌에 있는 한 대학 내 레스토랑에서 <종로의 기적> 출연자들이 모였다. 왼쪽부터 소준문 퀴어영화감독, 정욜 동인련 대표, 장병권 동인련 활동가, 이혁상 영화감독.

▲ <종로의 기적>의 주인공들 7일 저녁 서울 신촌에 있는 한 대학 내 레스토랑에서 <종로의 기적> 출연자들이 모였다. 왼쪽부터 소준문, 정욜, 장병권, 이혁상 감독. ⓒ 이정민


종로의기적 성소수자 이혁상 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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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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