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영화 <오월愛>를 봤다. 0시 25분 영화. 굳이 그 시간을 고른 것은 영화는커녕 출산을 앞둔 무거운 몸으로 19개월 된 아이와 아옹다옹하는 아내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상영관 수가 적고 상영일수가 짧은 영화를 보기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새벽에 들어간 극장에는 나를 포함해 총 6명이 앉아 있었는데 모두 조용히 영화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최대한 경건한 마음으로 영화를 봐야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좁은 영화관 안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마치 그것은 5.18에 대한 예의인 듯 했다.      

5.18, 그 굴절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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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광주의 518번 버스와 함께 시작됐다. 1980년 5.18 당시 시민군 출신으로 살아남아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던 한 광주시민이 운전하는 518번 버스. 특이한 건 촬영을 버스 내부에서 하다 보니 518이라는 숫자가 뒤집어 보인다는 점이었는데, 그것은 결국 영화를 통해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인 듯 했다. 굴절된 5.18. 비록 많은 이들이 5.18을 안다고 자부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착각이다. 아직 우리는 5.18의 실상을 제대로 접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돌이켜보건대 그 동안 5.18은 너무도 많은 굴절을 겪어왔다. 국가에 의해서, 지식인들에 의해서, 정치인들에 의해서, 혹은 5.18을 듣고 배운 개인들에 의해서.      

당장 1980년 5월의 광주를 생각해보자. 당시 5.18은 북괴의 지령을 받은 폭도들이 일으킨 소요사태에 지나지 않았다. 정부는 광주를 빨갱이들이 활개치는 도시로 지목했고, 언론들은 이를 그대로 옮겨 쓰기 바빴다. 그리고 많은 국민들이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믿고자 했다. 원래 광주를 포함한 전라도 지역은 반역의 고장이요, '라도' 사람들은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사 정권이 그 힘을 다했을 때 5.18에 대한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음지를 통해 조금씩 전해졌던 말도 안 되는 소문들이 진실로 드러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국가가 그 사실을 인정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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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들은 이후 5.18을 신화화하기 시작했다. 5.18은 한국 민주주의의 근간, 시대의 부채가 되었고, 당시 광주는 운동 좀 한다는 사람들이 꿈꾸는 대동세상이 되었으며, 5.18에 참여한 광주 시민들은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었던 절대 선한 민중이 되었다. 5.18은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의 경지에 올랐다.      

정치인들 역시 5.18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는데, 군사정부의 잔존 세력이 여전히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현실 정치에서 5.18은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리트머스 종이의 역할을 했다.

5.18을 기준으로 피아가 구분되었고, 5.18을 기준으로 그 사람의 성향이 정의되었다. 망월묘역에 대한 참배여부가 그 정치인의 정체성을 파악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금석이 된 것이다.      

이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도 비슷하게 적용되었다. 비록 세대와 지역이라는 변수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5.18을 기준으로 국민들의 정치적 성향 역시 분류할 수 있었다. 5.18을 믿는 사람과 믿지 못하는 사람, 믿어도 인정할 수 없는 사람과 믿는 만큼 가슴 아파하는 사람, 그리고 전혀 관심 없는 사람들.      

문제는 사회적으로 5.18이 끊임없이 호명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안에는 5.18에 직접 참여했던 이들의 이야기가 없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5.18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대게가 지식인들에 의해, 혹은 국가에 의해 포장 되거나 세탁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5.18의 주범들이 아직까지 떵떵거리며 잘 사는 현실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는데 5.18이 신격화 되거나 변질될수록 사람들이 5.18에 대해 냉소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명백한 범죄의 주동자들이 오히려 잘 사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현 교과서에서 배운 5.18의 진실을 외면하거나 무관심한 것이 가장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5.18은 그들만의 항쟁이 되었고, 지겨운 레퍼토리가 되었다. 언론이며 정치인, 지식인들은 5월만 되면 시대의 아픔을 말하고 5.18 광주를 입에 달고 살지만 일반인들에게 5.18은 그저 교과서에서나 등장하는 옛날이야기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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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18 광주 민주화 항쟁 30주년 기념식에서 국가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금지시킨 것은 결국 이와 같은 현상의 결과이다. 어차피 5.18이 박제화 되가는 지금의 시점에서 국가는 그들에게 불편한 요소를 하나하나씩 지움으로써 5.18을 순화시키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영화에서 말하듯 국가가 일으킨 범죄를 국가가 기념함으로써 정작 5.18 당사자들은 타자화되고 소외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 광주의 아픈 상처를 기억하는 이들은, 그리고 5.18을 영원히 기억함으로써 이 땅에 더 이상 그와 같은 비극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현재 진행형의 5.18      

영화 <오월愛>는 위의 질문에 대한 감독의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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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당시 참여했던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여과 없이 들려줌으로써, 이를 통해 현재의 5.18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고자 한다. 5.18이 지금과 같은 굴절을 겪는 건 그만큼 자료가 부족하거나 가공되었기 때문일 터, 감독은 당시 그 공간에 있었던 다양한 기억을 소환해 냄으로써 우리가 알고 있던 5.18을 좀 더 풍부하게 만들고자 했다.

따라서 감독이 인터뷰의 대상으로 자신의 기억을 텍스트화 시키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을 주로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감독은 그들의 이야기만으로 5.18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비록 정제되지 못해 거칠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만큼 생생한 그들의 끔찍하고 아픈 그들의 기억이야 말로 우리가 다시금 상기해야 할 5.18의 맨 얼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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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당시 역사의 한가운데 서 있었던 구두닦이 아저씨, 꽃집 아저씨, 중국집 아저씨, 시장 아줌마들 등을 찾아 그날의 기억을 캐묻는다. 그리고 그 날의 기억이 자랑스러운 훈장은커녕 당사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트라우마임을 보여준다. 비록 타 지역 사람들은 교과서 속 사건으로 잊어버렸지만, 아직까지도 당사자들에게는 현재 진행형인 5.18.      

이와 같은 맥락에서 감독은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전남도청 철거 문제도 거침없이 보여준다.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이익에 따라 전남도청 존폐를 달리 생각하는 5.18 관련자들을 보여줌으로써 현재의 5.18이 얼마나 일그러진 모습으로 투영되고 있는지, 그리고 아직도 그 비극이 진행형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국가가 아닌 시민의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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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에 대한 새로운 기억의 발굴과 전파.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아픈 기억들을 되새김해야 할 주체가 더 이상 국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비록 항쟁 당시 많은 시민군들이 태극기를 들고 애국가를 불렀지만, 국가 그 자체는 5.18의 정당성을 담보하지 않는다. 국가는 누가 운영하는가에 따라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5.18을 기술하면서부터 5.18에 대한 세간의 시선이 달라진 건 결국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5.18을 왜곡했기 때문이 아니라 근대국가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한계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5.18에 대한 기억의 주체가 바로 시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이 이야기했던, 깨어있는 시민들이 5.18을 제대로 기억한다면 국가의 영역에서 그것을 어떻게 왜곡할지라도 5.18의 정신은 그대로 살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5.18 당시 광주 시민들이 흔든 태극기는 국가의 상징이 아니라, 이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상징이 되어야 하며, 광주가 흘린 눈물은 국가의 폭거에 대항하던 시민사회의 눈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우리의 국가는 절대적으로 강하며, 시민사회의 힘은 미약하다. 부디 많은 시민들이 5.18을 교훈삼아 깨어있는 시민의 중요성을 깨닫길 바란다.

5.18 오월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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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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