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볼까 말까 망설였던 영화였다. 평일 아침이라서 상영관은 한적했고 조용했다. 떠들썩한 영화제를 벗어나 뭔가를 여유있게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티켓팅을 하려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예전에 같은 직장에 다녔던 선배였다. 작년에 퇴직을 했는데 퇴직을 한 뒤, 제대로 다큐멘터리 공부를 하려고 대학원에 진학했다고 했다. 우리는 한적한 월요일 아침, 나란히 <달팽이의 별>을 보았다.

 

영화 <달팽이의 별>을 보기 전, 대략 영화정보를 훑어보았다. 시청각장애인의 삶이라는 내용을 보고 그냥 장애인 영화려니 지레 짐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지레짐작이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 곧바로 깨달았다.

 

영화의 첫장면. 조영찬씨와 부인 순호씨가 함께 연을 날리고 있다. 두 사람은 부부다. 영찬씨는 시청각장애인이고 순호씨는 척추장애인이다.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둘다 정상인은 아니다. 그러나 연을 날리는 두 사람의 표정이 해맑고 밝다. 비록 하늘 멀리 날아가는 연을 보지는 못하지만 실의 팽팽함과 낭창낭창함을 번갈아 느끼며 영찬씨의 마음도 하늘로 부웅 날아가고 있다.

 

이 영화는 두 사람이 함께 도와가며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을 잔잔히 담았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지만 남편 영찬씨가 거의 부인에게 의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영찬씨는 나사렛대학교에 다니고 있고 히브리어도 공부한다. 순호씨는 영찬씨 곁에서 일일이 대화를 통역해주고 영찬씨 의사를 전달해주기도 한다.

 

 시청각장애인들은 스스로를 '달팽이'라고 부른단다. 눈과 귀 없이 촉각으로 살아야하기때문이다. 하지만 '달팽이'에게도 우주가 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거대한 우주가. 이 영화는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달팽이의 우주에 대한 이야기다.

시청각장애인들은 스스로를 '달팽이'라고 부른단다. 눈과 귀 없이 촉각으로 살아야하기때문이다. 하지만 '달팽이'에게도 우주가 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거대한 우주가. 이 영화는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달팽이의 우주에 대한 이야기다. ⓒ 전주국제영화제

특별한 줄거리도 없고, 갈등도 없는 영화지만 상영시간 내내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두 사람의 영혼이 너무 아름답고 순수했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영찬씨가 대학교 교정에서 나무와 '데이트'를 하는 장면이다. 나무를 끌어안고 나무를 쓰다듬으며, 나무의 향기를 맡는 과정이 영찬씨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라고 했다. 영찬씨는 나무를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나도 나무를 안아본적은 있지만 저렇게 온 감각을 다 동원하여 나무를 사랑해본 적은 없었다.

 

집안의 형광등이 고장나자, 순호씨는 새 형광등을 사가지고 온다. 순호씨가 침대위에 올라도 키가 천장에 닿지 않자, 영찬씨가 형광등을 갈아끼우기에 나선다. 보통 사람같으면 5분이면 끝날 일을, 영찬씨 부부는 30분 족히 걸리는 시간동안 형광등과 씨름한다. 형광등 고정하는 곳을 손으로 몇 번이고 더듬고 더듬어서 마침내 형광등 교체에 성공한다. 그러나 그 과정이 '안쓰럽다'거나 '위태롭다'기보다는 삶에 대한 따뜻한 애착처럼 느껴졌다. 방에 불이 밝게 켜져도 영찬씨는 물론 빛을 볼수 없지만 '성공했다'는 아내의 칭찬에 그의 마음에는 불이 켜졌을 것이다.

 

이 영화는 장애인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서 동등한 시각으로 보고있다. 우리와 소통방식이 조금 더 다를뿐이다. 어쩌면 영찬씨는 요즘 정상인(?)이야말로 오히려 비정상적인 삶을 살고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영화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영찬씨의 메모는 한편의 묵상집이다. '별을 본 적이 없지만, 별이 있음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좀더 참된 것을 보기위해 잠시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지구는 승차감없는 기차와 같다' 등 영찬씨의 속뜰에서 건져낸 말들은 우리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보고 듣지 못하기에 정말로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참된 것을 보기위해 잠시 눈을 감고있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난 후, 영화를 함께 보았던 직장 선배와 커피를 마셨다. 우리는 서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영화는 선배에게 조금은 특별했다.

 

그 선배의 친오빠가 시각장애인이라고 했다. 그 선배도 직접 점자를 배워서 오빠에게 편지를 쓰기도 하고, 오빠대신 부모님께 편지를 써주기도 했단다. 오빠가 시각장애인이기에 왠지 이런 장애인 영화는 보고싶지 않았다고 했다. 속이 쓰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길 잘했단다.

 

"영화 대사중에 '색깔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꿈에서도 시각장애인입니다'라는 대사를 듣는데 왠지 울컥하더라. 그런데 너무 웃기지 않니? 그는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왜 우리는 그를 보면서 동정하는 걸까?"

 

그 선배의 말이 옳았다. 장애인들이 불쌍하다고 짐작하는 것은 우리만의 지독한 오만, 편견에 불과할 지 모른다. 지독한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은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아무리 많은 여행을 하고 많은 책을 본다 해도 '편견'이라는 집에 갇히는 것이다.

 

그들은 그저 우리와 다른 소통체계를 갖고 있을 뿐이다. 다만, 그 소통체계가 조금 불편할 뿐이다. 그 불편함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에 우리 모두가 고민하고 노력해야겠다. 그것이 바로 함께 사는 세상 아닐까.

 

영찬씨의 희망은 글을 쓰는 일이다. 그리고 선배의 희망은 사람냄새 나는 다큐를 만드는 일이다. 두 사람은 왠지 잘 해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찬씨를 보며 편견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내게 나무와 데이트하는 법도 알려줬다. 데이트란 '만남'이다. 진정한 만남이란 영혼이 만나는 것. 그 방법을 알려줘서 고마워요 조영찬씨!

2011.05.05 10:12 ⓒ 2011 OhmyNews
전주국제영화제 달팽이의 별 조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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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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