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안해유?" 하지만 영화 <적과의 동침>(박건용 감독)에서 인민군들은 홍보문구와 달리 '전쟁'을 하려 하고 '학살'을 하려 한다. <웰컴 투 동막골>(2005, 박광현 감독)을 떠올린다는 세간의 평과 의도적 묻어감이 엿보이는 '동막골'스러운 포스터를 유심히 살폈던 관객들이라면, 영화의 시작과 함께 자신의 예상이 깨져나가는 독특한 '반전'을 경험하게 된다.


'반공청년단' 소속 남택수(이신성 분)와 결혼을 앞둔 박설희(정려원 분)의 할아버지인 석정리 터줏대감 구장 어른(변희봉 분)은 마을사람들과 함께 라디오로 전쟁이 났다는 소식을 듣지만 별일 있겠냐며 반신반의한다. 하지만 말 한마디 없이 택수가 야반도주하자 구장댁은 뒤집어지고 인민군 부대가 들이닥치자 마을은 뒤숭숭해진다. 부대가 진주하면서 잠시 감정 충돌도 불사하던 주민들은 마을의 안전을 위해 인민군에게 '위장' 협조하며 그들의 의도대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준다.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했던 아버지들끼리의 인연으로 어릴 적 중국에서 설희와 첫 만남의 연정을 간직하고 있던 인민군 장교 정웅(김주혁 분)은 우연찮게 진주하게 된 석정리에서 다시 만난 설희에 대한 감정과 주민들을 믿지 못하는 상부의 압박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때마침 미군의 무력이 서해에 집결하며 전세가 불투명해지자, 상부의 압박은 거세진다.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홍보단계에서 내세웠던 '실화'를 모티브로 재구성했다는 설정과 코미디적 환상 사이에서 갈짓자 걸음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살'을 꾀하며 갈등을 일으키는 인민군에 대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묘사 부분과 이를 극복해보려는 주민들의 다소 비현실적인 촌극이 번갈아가며 이어지는데 색깔 다른 색테이프를 거칠게 붙여놓은 느낌이다.

<웰컴 투 동막골>의 영화적 성취는 '무슨 전쟁이 저래?'라는 비아냥이 있을지언정 전쟁에 대한 옳고 그름, 평가를 과감하게 접어두고 상상의 공간인 동막골을 창조해, 그 안에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미래를 위해 손잡자는 당시의 시대 흐름을 반영한 환상곡을 만들었다는 데 있었다. 2000년, 숨죽이며 지켜봤던 두 정상의 세기적 만남이 빚어낸 시대상의 적절한 반영이었기에 놀라운 대중적 성취까지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웰컴 투 동막골>의 '아류'라는 오해를 의도적으로, 기꺼이 홍보에 활용한 것으로 보이는 <적과의 동침>은 "총들고 들어온 적도 눌러앉게 만드는 순박하고 유쾌한 로비작전"을 표방하지만 인민군과 주민들은 정웅과 설희의 개인적 사랑을 뛰어넘지 못한 채 결코 융화될 수 없음을 증명한다. 비극적 최후를 맞더라도 주민과 인민군이 화합의 주체로서 걸판지게 잔치판을 벌였던 동막골과의 결정적 차이가 되는 셈이다. 그러다보니 마을주민들로 등장하는 유해진(재춘 역), 김상호(백씨 역), 신정근(봉기 역), 양정아(수원댁 역) 등의 열연이 일관된 상승을 이끌지 못하고 집합과 해산을 반복한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오르며 등장하는 실제 석정리 노인들의 증언은 영화의 엇박자를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전쟁 시기를 회상하는 어느 할아버지는 다른 마을 소문에 대해서도 말하지만 석정리에서는 인민군들이 "해코지 한 거 하나도 없었어"라고 증언하고, 또 다른 할머니는 "학생 같이" 앳되게 보였던 인민군들이 "발안쯤 가서 다 죽었대... 너무 불쌍해"라고 당시를 떠올리는데 영화 속 "종간나"를 거듭 외치던 인민군의 모습과 묘한 불협화음을 이룬다. 한편 잠시 비춰지는 미군 하나는 혼란 속 아이가 놀랄까 안고 가는데 그 뒷모습이 제법 듬직하게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