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한나>의 포스터

영화<한나>의 포스터 ⓒ 소니 픽쳐스

추격 장면이 압권인 영화로<본 얼티메이텀>의 탕헤르 지역 추격 장면을 빼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지붕을 달리는 착한 얼굴의 맷 데이먼은 정말 무섭게 달렸고 정확하게 싸웠다. 참신한 액션에 지루할 틈 없었던 <본 얼티메이텀>은 달리고 싸우는 영화가 별로인 자들에게도 기꺼이 착한 영화였다.

이제 순수한 얼굴로 치명적인 액션을 선보이는 소녀 배우가 등장한다. 개봉을 앞둔 <한나>의 시얼샤 로넌이 그다. <어톤먼트>에서 호흡을 맞춘 조 라이트 감독이 그녀와 함께한 두 번째 작품 <한나>는 할리우드 제일의 추격 장면을 선보인 '본'시리즈의 무술감독과 함께한 액션 블록버스터다.

품에 안겨 울던 소녀가 갑자기 상대의 목을 비틀어 죽이는 장면으로 티브이 예고편 심의에 걸려 재편집 후 방영되는 등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된 <한나>가 4월 14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순수해서 더욱 치명적인 소녀

끝없이 펼쳐지는 핀란드의 설원 속에서 오로지 살인 훈련만을 반복하는 소녀가 있다. 소녀의 나이는 16세. 친구와 밤새 얘기를 하거나 남자친구에 대한 환상을 품을 수 있는 나이의 소녀 한나(시얼샤 로넌)는 킬러로 길들여진다. 사람도 음악도 전기도 그 어떤 문명의 혜택도 받지 못한 곳에서 야생의 근성을 배운다. 한나에게 세상은 오로지 아빠가 들려주는 책 속의 이야기가 전부다.  

전직 CIA 출신의 아빠 에릭 헬러(에릭 바나)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동원하여 딸을 최고의 살인병기로 키운다. 잘 때도 항상 깨어있게 하고 감정을 갖지 못하게 하며 오로지 동물적 방어 본능과 전투력을 훈련시키는 게 양육의 전부다. 16살이 된 딸은 극비리에 수행할 임무를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

하지만 임무수행을 위해 딸과 헤어져야 한다. 에릭은 딸 한나의 임무를 위해 자신들의 위치를 드러낸 채 딸의 곁을 떠난다. 곧바로 들이닥친 정보기관 특수요원은 한나를 납치하지만 고도의 기술을 이용해 한나가 탈출한 후 추격전이 시작된다.

 아빠와 헤어져 CIA의 정보기관에 납치된 한나

아빠와 헤어져 CIA의 정보기관에 납치된 한나 ⓒ 소니 픽쳐스


탈출한 한나의 목표는 마리사 위글러(케이트 블란쳇)를 찾는 것.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고 배운 한나에게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냥한 노루의 뱃속에서 내장들을 빼내는 첫 장면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가 아닌 사람들과 얘기하며 겪는 모든 것은 신기하다.  '여러 가지 소리가 결합하여 인간의 감정을 움직이는 예술'이라 전해 들은 음악도 듣게 된다. 스위치를 누르면 들어오는 전기와 물을 뿜는 샤워기에 당황하고 자신의 또래인 소녀에게서 느끼는 친구라는 존재도, 남자친구도, 키스도 낯설기만 하다.

아버지인 에릭과 함께 일한 CIA 특수요원인 마리사 위글러 역시 한나를 집요하게 추격한다. 상대를 먼저 죽여야 하는 한나와 마리사. 출생에 얽힌 비밀과 그 뒤에 숨겨진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기 시작한 한나는 자신이 그렇게 자랄 수밖에 없던 이유를 알게 된다. 아빠는 그간 감추고 살았던 한나의 비밀이 그녀를 극단으로 내몰게 될 것을 직감한 것이다.

뛰어난 액션, 식상한 스토리

 핀란드의 광대한 설원에서 킬러로 훈련 받는 한나

핀란드의 광대한 설원에서 킬러로 훈련 받는 한나 ⓒ 소니 픽쳐스


설원의 숲과 열대의 사막을 종횡무진 하는 배경은 얼마 전 좋은 영화임에도 며칠 만에 막을 내린 <웨이백>과 비슷하다. <웨이백>의 주인공이 살기 위해 현실에 적응해야 하는 사랑스럽고 강인한 소녀였다면 한나는 순수한 표정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신나게 수다를 떨던 소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살인을 저지른다는 충격적인 설정은 영화<한나>의 압권이라 할 수 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푸른 눈빛으로 세상을 처음 접하는 야생 소녀의 역할을 소화해낸 시얼샤 로넌의 액션에는 무표정의 서늘함까지 더했다.

 깊고 푸른 공허한 눈빛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소녀 한나

깊고 푸른 공허한 눈빛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소녀 한나 ⓒ 소니 픽쳐스


실제 나이가 17살인 시얼샤 로넌이 이처럼 격렬한 액션을 소화할 수 있게 된 건 수개월간 맹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본 시리즈의 액션 담당으로 무술감독을 한 제프 이마는 여린 외모에서 한순간에 뿜어져 나오는 절도 있는 동작을 위해 시얼샤 로넌에 맞는 맞춤 액션 안무를 고안했다고 한다.

어지럽게 움직이는 카메라와 빠른 비트의 음악으로 액션 장면을 장식하는 <한나>의 또다른 볼거리는 설원 숲속의 훈련과정과 모로코 거대 사막에서 하는 추격 장면이다. 오로지 쫓고 쫓기는 추격전에서 빠르게 달라지는 배경이 눈여겨 볼만하다.

시얼샤 로넌의 몸을 아끼지 않는 연기나 드넓은 배경 속에서 펼쳐지는 추격 장면이 <한나>의 액션에 힘을 실어 주지만 할리우드 영화의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하는 스토리가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 속에 새로운 배경과 '소녀 킬러'라는 것을 내세워 승부를 건다고 볼 수 있다.

 모로코의 거대한 사막에서 탈출해 처음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한나

모로코의 거대한 사막에서 탈출해 처음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한나 ⓒ 소니 픽쳐스


<어톤먼트>와 <오만과 편견>등 드라마가 강한 영화로 인정받은 조 라이트 감독의 또 다른 선택이 우리나라에서 먹힐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거대한 음모 속에서 오로지 복수를 향해 달리는 소녀 시얼샤 로넌은 안젤리나 졸리나 밀라 요보비치의 뒤를 잇는 액션 여배우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시얼샤 로넌 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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