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지략으로 부산 KT를 정상으로 이끈 전창진 감독

뛰어난 지략으로 부산 KT를 정상으로 이끈 전창진 감독 ⓒ 부산 KT 소닉붐


프로농구 부산 KT의 역사는 파란만장하다. 프로 원년인 1997년 실업농구 기업은행을 인수하여 광주 나산 플라망스라는 이름으로 첫 창단한 이래,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 여수 골드뱅크-여수 코리아덴더-부산 코리아텐더-부산 KTF 매직윙스, 그리고 현재의 부산 KT 소닉붐에 이르기까지 15년도 안 되는 시간동안 팀명과 연고지, 모기업이 바뀐 것만 수 차례였다.

불안정한 구단 상황을 반영하듯, KT의 프로농구 역사는 주로 변방에 머물러 있었다. 지난 시즌까지 KT는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 포함 프로무대에서 우승을 차지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06~07시즌 정규시즌과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 역대 최고 성적이었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주전들의 군입대와 외국인 선수 선발 실패로 다시 하향세를 겪으며 2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최하위권에 머물러야 했다.

팀에 새 바람 불러일으킨 감독

침체기를 보내던 KT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사람은 전창진 감독이었다. 원주 동부에 3회 우승을 안기며 프로농구계의 명장으로 떠오른 전창진 감독은 동부에서의 안정된 입지를 마다하고 새로운 도전을 위하여 전년도 꼴찌팀이던 KT의 지휘봉을 잡았다.

전창진 체제가 새롭게 출발했어도 당시 주변 상황은 비관적이었다. 팀이 세대교체기를 맞이하면서 포지션별로 리그 정상급 선수가 없었고, 1라운드 외국인 선수 조기교체 파동까지 겹치며 전망은 비관적으로 흘렀다. 동부에서 '선수빨'로 우승한 게 아니냐는 폄하를 받았던 전창진 감독의 지도력에 대한 의문부호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KT는 09~10시즌 일약 태풍의 눈으로 부상하며 전년도 꼴찌에서 한해만에 정규시즌 2위로 도약하는 기염을 토했다. KT가 거둔 40승은 전창진 감독이 동부 시절인 03~04시즌 세운 프로농구 역대 최다승 타이 기록이기도 했다. 당시 KT는 선두 모비스와 동률을 이루고도 상대 전적에서 밀려 아쉽게 2위에 그쳐야했다.

2라운드에서 선발한 외국인 선수 제스퍼 존슨이 기대 이상으로 대활약을 하고, 군제대를 마치고 복귀한 조성민을 비롯하여 김도수, 송영진, 박상오, 김영환으로 이어지는 막강 포워드진을 활용한 '모션 오펜스'전술이 빛을 발해 KT는 완전히 새로운 팀으로 탈바꿈했다.

올 시즌도 여러모로 상황은 쉽지 않았다. 지난해 전력의 한축을 이루던 김영환이 군에 입대한 데 이어 신기성이 FA로 이적했다. 조성민은 광저우 아시안게임 차출로 한동안 자리를 비워야했고, 송영진과 김도수, 이적생 표명일까지 연이어 부상에 시달렸다. 여기에 한층 상향평준화된 경쟁팀들의 전력을 감안할 때, 작년같은 돌풍을 이어가기는 어려워보였다.

각종 악재에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조직력

그러나 이번에도 전창진 KT는 주변의 예상을 보란듯이 뒤집었다. 주전들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KT의 수비 조직력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고, 누군가 부상을 당하면 새로운 식스맨들이 튀어나와 그 자리를 메웠다. 심지어 시즌 막판 에이스인 제스퍼 존슨의 시즌 아웃 부상이라는 초대형 악재에도 불구하고 또다른 2라운드 신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찰스 로드의 맹활약으로 KT는 좀처럼 선두권을 놓치지 않았다. 그 결과는 시즌을 2경기 남겨놓은 상황에서 객관적인 전력이 더 좋았던 지난 시즌에도 이루지 못한 창단 첫 정규시즌 우승이라는 결실로 돌아왔다.

KT의 우승은 여러모로 농구계의 속설을 뒤집는 이변이라고 할 만하다. 올시즌 전자랜드, 동부, KCC 등 막강한 높이를 앞세운 팀들의 고공농구가 대세를 이루는 가운데, KT는 외국인 선수인 찰스 로드와 앤서니 존슨 정도가 간신히 2m에 턱걸이 할 뿐, 국내 선수 중 이렇다 할 장신 선수나 정통 빅맨이 없는 팀이다. 평균 30.1개에 그친 리바운드는 10개 구단 중 최하위권 수준이다.

리바운드가 골밑 장악의 척도라고 했을 때, 높이의 비중이 절대적인 농구라는 스포츠에서 이러한 높이의 열세를 딛고 우승을 차지했다는 것만으로 남다른 의미가 있다. 높이의 한계를 한 발 더 부지런히 뛰는 농구와 조직력의 힘으로 극복해 낸 모범사례라 할 만하다.

중위권 전력으로 정상에... 눈부신 지도력

프로농구에서는 보기 드물게 프런트(주무)를 거쳐 지도자로 성공한 전창진 감독은, 동부에서 우승을 차지하고도 떨쳐내지 못한 '선수빨' 꼬리표를 말끔히 청산했다. 전창진 감독은 동부(2009)와 KT(2010)를 이끌고 지난 2년 연속 막판 경쟁에서 밀려 정규시즌 2위에 그쳤던 한을 말끔히 풀었다. 아직 플레이오프가 남아있지만 2년간 전창진 감독이 이룬 성과는 KT의 전신인 역대 그 어떤 팀들이나 감독보다도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06~07시즌 준우승 당시는 사실 애런 맥기와 필립 리치라는 걸출한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면, 이번에는 그때와 비교할 수없이 국내 선수들의 비중이 높아진 상황에서 잘해봐야 리그 중위권 정도로 평가받은 전력을 가지고 2년 연속 리그 정상에 올랐다는 것은 전창진 감독의 눈부신 지도력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내친 김에 KT는 지난해 못다한 챔피언 결정전 우승과 함께 프로농구 역대 최다승 신기록에 도전한다. 2경기를 남겨놓고 있는 KT가 전승을 거둘 경우, 프로농구 최초로 41승 고지에 올라서며 전창진 감독이 자신이 세운 정규 시즌 역대 최다승 신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또한 지난해 2위로 플레이오프 4강에 직행하고도, 준결승에서 허재의 KCC에 1승 3패로 무너지며 창단 첫 우승의 꿈을 접어야했던 KT는 올해야말로 챔피언 결정전의 한을 풀겠다는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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