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터 스틸컷

▲ 파이터 스틸컷 ⓒ ㈜데이지 엔터테인먼트


복서 아투르 가티와 미키 워드는 사각의 링에서 총 3번의 맞대결을 펼쳤다. 특히 이 중에서 2002년 1차전은 복싱 팬들에게 최고의 경기로 회자되고 있다. 단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사생결단의 정신으로 주먹을 교환하는 그들의 경기를 보고 있노라면 온 몸에서 전기가 흐를 정도였다. 물론 2, 3차전 역시 그들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을 정도의 멋진 경기였다. 두 사람의 총 3번의 맞대결은 스포츠케이블채널에서 심심치 않게 방송되고 있을 정도다.

미키 워드는 65년생, 아투르 가티는 72년생이다.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 자신의 라이벌을 만난 미키 워드는 불굴의 정신을 보여준다. 사실 두 사람의 경기를 직접 본 복싱팬들이라면 충분히 느끼겠지만, 기술적인 부분에서 1, 2, 3차전 모두 초반 아투르 가티가 앞선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미키 워드는 맞아도 물러서지 않는 정신과 다운이 되어도 다시 일어나서 경기에 임하는 불굴의 의지로 경기 전체를 인파이터 형태로 바꾸어버렸다. 영화 <파이터>는 바로 이런 미키 워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파이터>는 아투르 가티와의 혈전을 다룬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미키(마크 월버그)가 어떻게 고난을 극복하고 정상의 복싱선수로 일어서게 되는지에 집중하는 영화다. 미키는 재능은 있지만 오랜 기간 빛을 보지 못하고 백업선수로 머물다가 2000년 WBU JR 웰터급 월드챔피언에 오르면서 드디어 그의 재능을 꽃피우게 된다. 아투르 가티와 경기가 있기 2년 전의 일이었다. 이렇게 그가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형 디키(크리스천 베일)와 어머니(멜리사 레오) 때문이다.

디키는 미키의 배다른 형제로 그에게 복싱을 알려준 영웅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디키는 마약중독자로 헤매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동생에게 복싱의 길을 알려준 인물이었음에도, 이제는 골칫거리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여기에 어머니 멜리사는 매니저를 겸하고 있다. 그녀는 미키가 선수로 커가는 것보다 오로지 대전료에만 목을 매달고 있다. 아들이 이길 수 있는 경기도 대전료 때문에 다른 요구를 한다. 아무리 복싱선수로서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이런 매니저와 형이 트레이너라면 도저히 클 수 없을 것이다.

너무나 빤한 이야기지만 감동이 있다

파이터 스틸컷

▲ 파이터 스틸컷 ⓒ ㈜데이지 엔터테인먼트


<파이터>는 솔직히 너무 뻔한 이야기다. 실화이기 때문에 그가 2000년 WBU JR 웰터급 월드챔피언에 오른 이야기는 검색만 해도 충분히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에서 관객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감동 자체가 스포일러 형태로 난무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여기에다 가족 이야기를 훈훈하게 끌어들인 것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 공식이기 때문에 마지막 결말까지 알고 있는 와중에 크게 재미를 줄 수 있는 요소가 아니란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이터>는 감동적이다. 이유는 실화를 옮겨오면서 한 인물이 겪게 되는 감정적인 기복과 심리적인 상태,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 이야기가 진실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한 복싱영웅을 미화시키기 위해서 억지로 인위적인 감동 포인트를 만들지 않고 담담하게 가족의 갈등과 봉합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이런 선택은 내용이 뻔한 영화임에도, 미키가 세계챔피언에 오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하는 힘이 된다.

특히 연기파 배우 크리스찬 베일은 자신의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14kg을 감량하는 인내를 보여주었다. 마약중독자의 이미지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런 그의 노력은 영화에서 그대로 묻어나고 있다. 여기에 어머니 역을 맡은 멜리사 레오의 연기 역시 주연 마크 월버그를 뛰어넘고 있다. 이 작품에서 두 사람의 연기가 얼마나 뛰어났는지는 시상식을 되돌아보면 된다.

2011년 골든 글로버와 아카데미시상식, 미국배우조합상은 두 사람에게 각각 남녀 조연상을 모두 안겼다. 여기에다 2011년 런던비평가협회상은 크리스찬 베일이 실제 주연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 주었을 정도다.

<파이터>는 좋은 배우들이 보여준 연기열연과 실화의 감동을 묵직하게 정공법으로 밀어붙인 감독의 노력이 빛난 작품이다. 특히 크리스찬 베일과 마크 월버그 같은 인지도 있는 배우를, 할리우드 평균영화 제작비(보통 4000만 불 이상)에 훨씬 못 미치는 2500만 불로 캐스팅 해서 4개관에 먼저 개봉한 후, 관객들의 폭발적인 호응으로 2534개 극장으로 확대 개봉된 부분은 분명 부러운 것이 현실이다.

계속해서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지만 한국에서도 좋은 영화들이 몇 개 관에 개봉한 후 점차적으로 확대 개봉하여 장기간 상영할 수 있는 극장 시스템이 만들어져야만 <파이터>, <블랙 스완> 같은 좋은 작품들이 나올 수 있다.

덧붙이는 글 국내개봉 2011년 3월 10일. 이 기사는 영화리뷰전문사이트 무비조이(http://www.moviejo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파이터 무비조이 MOVIEJOY 크리스찬 베일 마크 월버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