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군의 영화씹어먹기:개구리 소년 사건을 다룬 팩션영화 <아이들>

R군의 영화씹어먹기:개구리 소년 사건을 다룬 팩션영화 <아이들> ⓒ 황홍선

 

팩트, 아이들은 산에 가지 않았다

 

실화 미제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으로 빚어지는 장르적 재미와, 또 하나는 그 사건이 미제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안타까움과 사회적 반성을 끌어낼 수 있다. 이 두 가지 의미를 잘 잡은 궁극적인 한국영화로서는 <살인의 추억>이 있다.

 

<아이들> 역시 목표는 <살인의 추억>일 것이다. '실종 사건'을 파헤치는 장르적 재미와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실제 사건'이 주는 사회적 의미. 이 두 가지를 잡기 위해 영화는 노력했고, 이규만 감독 스스로는 진심을 가지고 작품을 대했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아이들>의 전반부는 매우 훌륭하다. 사건의 진상을 취재하는 방송국 PD를 관찰자 시점으로 고정, 아이들을 잃은 부모, 그런 부모를 의심하는 범죄학자, 그리고 수사관등 각기 다른 시선에서 출발하며 사건에 다가가는 과정을 밀도 있게 잘 그려냈다. 이 와중에 빚어지는 상황의 아이러니는 진지한 영화에서 감칠 맛을 더하는 웃음이 되고 때로는 깊은 사회적 통찰을 지니고 있으며, 무엇보다 어떤 가설을 가지고 그것을 추리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물론 이 가설은 영화의 중요한 이야기 축일 뿐 아니라 사건을 달리 보게 하는 사회적 영향력까지 지니고 있어, 관객은 조마조마 하면서도 따라가는 흡입력까지 더한다.

 

영화는 이런 가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당시 시대적 상황의 재현, 꼼꼼한 디테일은 영화를 더욱 탄탄하게 만든다. 각 캐릭터들이 왜 이럴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당위성과 해결되지 못하는 사건의 안타까움은 감성적으로도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의 전반부는 흡사 <살인의 추억> "백광호 취조씬"과 비슷하다. 정황으로 짐작해 사건을 수습하려했고 그 결과에 대한 사회적 비난은 당시의 안타까움은 물론이고 이럴 수밖에 없는 지금 현실에 대한 반성 또한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전반부의 이런 과정을 통해 특종만을 잡으려는 관찰자 강지승(박용우)에게 사건의 대한 진심과 무서움을 동시에 전달, 그것이 캐릭터의 성장으로 까지 도달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거기에 가설을 주장했던 황우혁 교수의(류승룡) 혼돈과 궁극적으로 이런 장르적 접근에서 외면 받았던 진정, 가슴 아파해야 할 부모들의 심정을 여과 없이 보여줘 관객들의 감성적인 동요를 유도한다.

 

영화 속 전반부는 전적으로 실제 사건의 "팩트"를 따라 간다. 사실적 재현 사이 장르적 재미와 감성을 자극하는 가설이 극의 흥미를 이루고 또한 큰 추임새 없이 관객들에게 많은 것을 전달한다. "아이들은 산에 가지 않았다"고 영화는 말한다. 그 설득력을 위해 영화의 진심과 이야기 역시 지금 스크린에서 흔들리지 않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극중 종호 부모역으로 나오는 성지루씨. 영화 <아이들>을 통해 말하고 싶은 건 바로 이 캐릭터다.

극중 종호 부모역으로 나오는 성지루씨. 영화 <아이들>을 통해 말하고 싶은 건 바로 이 캐릭터다. ⓒ 롯데쇼핑㈜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픽션, 정작 산으로 간 건 이야기

 

하지만 후반부 들어 영화는 잘 만들었던 모든 것을 놓친다. 장르적 완성도, 사회적 메시지 둘 다. 

 

실제 사건처럼 유골이 발견한 이후부터 실질적 증거로 영화는 픽션(가상의 이야기)를 만든다. 하지만 전반부 팩트에 근거한 사실적 재현을 모조리 뒤집은 채 후반부 픽션은 실마리를 잃는다. 아이들은 산으로 가지 않았다며 그렇게 완강했던 이야기 구조와 메시지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인가? 아이들은 산으로 가지 않았건만, 이야기만 산으로 가버렸다.

 

일단 논리적으로 허술한 픽션이 한 둘이 아니다. 정말 그런 추리의 의도라면 왜 그토록 범인을 잡기 어려웠을까? 또한 그것이 아이들이 실종 된 이후 지금에 와서 허술하게 나오는 것은 또 무엇인가? <아이들>은 전반부의 겸손하게 사건을 대하는 태도와 달리 후반부 큰 욕심을 부린다. 개구리 소녀 실종 사건이라는 하나를 넘어, 이것을 아동 범죄의 어떤 교훈적 메시지로 까지 넓히려고 한다. 하지만 확장공사는 탄탄한 설계위에 그것이 다듬어야지, 이제 막 흥미를 끄는 이야기에 분위기를 탔다고 몰아쳐서는 안 되었다. <아이들>은 충분히 전반부의 팩트를 이용한 사건 재현과 그것에 대해 조금 더 물고 늘어졌다면 <살인의 추억>만큼 괜찮은 이야기가 될 수 있었지만 의미 없는 추격 씬, 기가 차는 추리, 그리고 범인의 이미지마저 모조리 드러내 미스터리 사건이 풍기는 긴장감을 모두 놓쳐버린다.

 

박용우가 가상의 범인을 잡고 아무리 울부짖고 설교를 해보아도 팩트적 근거를 완전히 상실한 픽션 앞에서는 허공에 묻히고 말뿐이다. 이규만 감독은 영화의 진심을 담고 싶다고 했는데, 진심을 넘은 후반부 욕심에서는 그 진심마저 퇴색 될 뻔했다.

 

 사건만큼 후반부도 안타깝다. 물론 다른 의미로.

사건만큼 후반부도 안타깝다. 물론 다른 의미로. ⓒ 롯데쇼핑㈜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메시지, 최선을 다한 영화적 진심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영화는 마지막에 이르러 전반부가 가졌던 의미를 다시 되찾는다. 픽션의 방황을[?] 끝나고 다시 팩트로 돌아오는 과정, 전반부 중요한 단서가 되었던 어떤 사건이[?] 다른 의미를 가져 영화를 완전히 새롭게 보게 만든다. 그 모습은 <살인의 추억> 마지막과도 닮았다.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미안함, 그리고 범인을 잡지 못했다는 울분, 하지만 그런 사회적 의미 속에서 가장 고통 받는 건 바로 실종된 아이들의 부모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관객에게 상기시킨다.

 

이 장면으로 인해 개구리소년 사건이 왜 영화화 되었는지 당위성을 갖는다. 또한 이규만 감독이 왜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하는 진심의 답이다. 영화 내내 휘몰아쳤던 범인은 누구이고 왜 아이들은 실종되었는가?라는 추리적 재미를 떠나 어쩜 우리가 이 영화를 보기 전 먼저 생각해야 했는 건 바로 이런 것이었는데, 세월이 흘러 그 의미를 잊고 살지는 않았나 반성을 해 보게 만든다. 비로소 산으로 갔던 이야기는 제 자리를 찾고 실화 미제 사건이 가져야 할 두 번째 의미, 사회적 메시지를 또박또박 그리고 관객의 마음 깊숙이 전달한다.

 

영화 형식적으로 보면, <아이들>은 팩트가 괜찮지만, 픽션이 허술하다. 그러나 두 가지의 어떤 형식적 완성도를 떠나 20여 년 동안 아이들을 찾지 못했던 사회적 패배가 가장 마음이 아팠고 영화는 그것을 꼬집는다. <살인의 추억>에서는 그 패배가 깊은 울분으로 진한 여운을 주었다면 <아이들>은 그 패배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다시 한 번 사회적 희망을 걸어보게 만든다. 물론 둘 다 다시는 이런 사건이 영화화가 되지 않았음 하는 것이 궁극적인 바람이다.

 

 범인이 누구냐? 왜 죽였느냐? 질문 이전 정작 우리가 잊어버린 건 무엇일까?

범인이 누구냐? 왜 죽였느냐? 질문 이전 정작 우리가 잊어버린 건 무엇일까? ⓒ 롯데쇼핑㈜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2011.02.16 19:52 ⓒ 2011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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