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5일 밤에서 26일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각, 우리 축구팬들은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2011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축구대회(개최지 : 카타르) 준결승전, 우리 국가대표팀이 맞수 일본과 외나무다리에서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보는 이들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던 이 경기는 '1-0, 1-1 / 연장전 1-2, 2-2 / 승부차기 0-3'으로 끝났다. 한 골을 먼저 넣으면 상대가 따라붙고, 연장전에 가서는 먼저 한 골을 내주며 패색이 짙었다가 거짓말같은 황재원의 동점골에 환호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2010 남아공월드컵을 포함해도 근래에 보기 드문 명승부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그리고 이어진 승부차기. 정말 피할 수 없는 외나무다리였다. 애석하게도 우리 선수는 단 한 골도 성공시키지 못했고, 일본 선수들은 네 명이 나와서 세 골을 넣으며 싱겁게 끝나버렸다. 120분이 넘는 필드 골 싸움에서의 명승부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고개를 떨군 우리 팀 선수 중에는 이 대회 득점왕 트로피까지 손에 쥔 구자철 선수도 있었다. 승부차기에 실패하면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심지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는 선수들도 있다. 오죽하면 승부차기를 다른 말로 '11미터 룰렛'이라 부르겠나? 눈 깜짝할 사이도 없이 날아오는 공을 향해 온몸을 날려야 하는 문지기나 11미터 지점에 공을 내려놓고 차 넣어야 하는 선수들 모두 정말 못할 노릇이다.

축구계 일각에서라도 승부차기를 대체할 수 있는 제도를 고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꼭 승리팀을 가려야 하는 토너먼트에서는 딱히 그럴듯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진정한 축구팬들은 이렇게 모두를 피말리게 하는 승부차기가 없는 리그에 열광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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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학교의 학급 대항 축구대회에서는 이번 대회부터 승부차기 대신 단체 줄넘기를 돌렸다. 역시 패하고 돌아서는 학생들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지만 이전 승부차기 패배 후의 표정과는 사뭇 달라보였다.

학급대항 축구대회, 5년의 역사...

2007년 7월 21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007 AFC 아시안컵 8강전 승부차기의 인상적인 장면이 떠오른다. 디펜딩 챔피언 일본과 아시아 축구 신흥 세력 호주가 맞붙은 이 경기는 승부차기까지 이어진 접전 끝에 일본이 4-3으로 이겼다. 일본 문지기 가와구치가 호주의 해리 큐얼, 루카스 닐의 날카로운 킥을 각각 막아내며 활짝 웃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당시 일본 축구대표팀을 이끌고 있던 이비카 오심 감독은 이 승부차기를 도저히 못 보겠다고 혼자서 라커룸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만큼 승부차기가 축구장의 불편한 일 중 으뜸인가 보다. 아마 그 때부터 동네 축구, 학교 울타리 안 축구대회에서 승부차기를 대체하는 뭔가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뒤늦은 일이기는 하지만 이번 학기(2010학년도 2학기) 학급대항 축구대회부터라도 승부차기를 없애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대신 '단체 줄넘기'를 돌리기로 했다. 그 반응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누구 아이디어인가라고 묻는 분들도 있고 일부 선수들에게만 돌아가는 심적인 부담감으로부터 조금이라도 가벼워질 수 있어서 좋았다는 평도 들었다. 물론, 오늘 낮 결승전이 끝나고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한 친구들로부터는 그래도 승부차기가 진행되었으면 하는 아쉬운 소리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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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는 한 학년에 14개 학급이 북적대는 남자 고등학교다. 혼자 운영하기에 무리가 따르는 줄 알았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남고생들의 혈기왕성함을 계속해서 외면할 수가 없었다. 사실 나 또한 이 친구들 이상으로 축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지금까지 이어 온 학급대항 축구대회는 2006년으로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2학년 수업에 들어갔는데 한 친구가 내게 점심시간에 하고 있는 학급대항 축구 경기에 심판을 맡아달란다. 그 이전까지는 심판 없이 자기들끼리 진행하다보니 불편한 점이 많았다고 한다. 그것이 동네 축구의 매력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제대로 실력을 겨루고 싶단다. 오프사이드 시비나 핸드 볼 판정 시비만으로도 얼굴 붉히는 일이 많았단다. 그렇게 우리들만의 월드컵이 시작된 것이다.

그 2006년의 첫 대회는 입시 준비에 여념이 없었던 3학년 학급을 빼고 1, 2학년 학급만을 대상으로 시작했고, 그 이듬해 봄부터는 3학년 학급까지 모두 참가하는 큰 규모의 대회로 이어나갔다. 물론, 경기 시간은 점심 시간을 쪼개어 후반전 없이 25분 정도로 끝냈지만 그 열기는 웬만한 조기축구대회 못지 않았다.

이제 며칠 남지 않은 2010학년도에도 봄부터 여름까지는 3개 학년 대다수 학급이 참여하는 축구대회가 벌어졌는데 이례적으로 3학년 학급이 2학년 학급에 패하는 일이 여러 경기에서 나타났다. 아무리 10대 후반의 한 살 차이가 별 것 아니라고 하지만 결승전까지 그런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

'1학년 8반' 세 번의 줄넘기, 결국 우승의 영광까지!

그리고 수능시험이 끝나고 바로 다음 날(2010년 11월 19일)부터 시작된 1, 2학년 학급간의 맞대결이 따로 시작되었다. 바로 이 대회부터 승부차기 제도가 없어지고 '단체 줄넘기'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물론, 우승 트로피나 우승 팀 개인 메달, 약간의 상품이 주어지기는 하지만 체육 교과목 수행평가 점수 가산점이나 상급학교 진학 특전(체육특기자) 등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 그냥 학급대항 축구대회에서 결과에 따라 눈물이 쏟아지곤 했다. 특히, 승부차기가 끝나고 눈물이 더 떨어졌다.

킥 하나만큼은 데이빗 베컴이 부럽지 않았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신는다는 노란색 축구화도 신었지만 승부차기만큼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흘리는 눈물들이었다. 그것 나름대로 추억으로 삼을 것이지만 그래도 새로 도입한 '단체 줄넘기'는 눈물로 끝나지 않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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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회 첫 경기(2010. 11. 19)부터 무승부가 나오는 바람에 그들은 줄을 돌려야 했고, 결국 1학년 11반이 아홉 번만에 승리의 쾌재를 외쳤다. 그런데, 우승팀 1학년 8반(팀 이름 : 지리, 물리, 논리 크리) 친구들은 첫 경기만 3-0의 완승을 거뒀지 나중에 치른 세 경기(8강, 4강, 결승)에서 모두 줄넘기로 이기는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줄넘기만 잘 한 것은 아니다. 8강과 4강에서 맞붙은 팀이 각각 2학년의 실력자들이었기 때문에 밀리는 경기가 예상되었지만 실제 필드 골 경쟁을 당당히 이겨낸 것이었다. 왼발을 잘 쓰는 키다리 수비수는 위기 때마다 빼어난 걷어내기 실력을 자랑했고 노란 축구화를 신은 주장은 핵심 미드필더로 뛰면서 공-수 조율에 큰 역할을 해냈다.

마지막 2분간의 줄넘기 연습을 끝내고 먼저 1학년 3반 친구들이 줄을 돌렸는데 처음 돌리는 친구들치고는 꽤 많이 돌렸다. 제한 시간 1분 안에 끊김 없이 돌려야 하는 부담감 속에서도 36회나 돌린 것. 그러나 이어서 돌린 1학년 8반 친구들은 최근 두 경기 연속 줄넘기 경험을 살려 여유 있게 37회를 돌린 뒤 환호성을 질렀다.

마침 그들은 담임 선생님께서 멀리 외국으로 연수를 떠난 상태라 가까이에서 축하해 줄 선생님이 안 계셨지만 끝까지 자신들의 열정을 운동장에 쏟아부었다. 공도 잘 차고 줄넘기도 합심하여 잘 돌리는 그들이 끝내 웃었던 것이다.

이제 곧 시작되는 2011학년도 새 학기. 3월 하순이면 또 시작될 학급대항 축구대회를 위해 새내기들에게 줄넘기 연습 좀 시켜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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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줄넘기 승부차기 교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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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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