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시즌에 야구 동호인들을 위로하는 것은 따뜻한 장작불이다.

추운 겨울 시즌에 야구 동호인들을 위로하는 것은 따뜻한 장작불이다. ⓒ 박상익

'한강리그 시즌 마지막 경기 공지 1.16 성남고 9시 집합. 게시판참고.'

 

며칠 전 감독님에게 경기 안내 문자가 왔을 때만 하더라도 이럴 줄은 몰랐다. 영하 10도를 내려가는 강추위라 하더라도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말에 다가갈수록 최악의 한파가 주말에 닥칠 것이란 뉴스가 나를 불안하게 했다. 결국 '일요일 10년만의 강추위' '최저기온 영하 17도'등의 뉴스는 제목만으로도 날 질겁하게 했다.

 

토요일 밤, 추위 걱정에 뒤척이나 혹시 나처럼 내일 극한의 추위에 뛰어드는 동지들이 있나 확인해보기 위해 한 야구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내일 저 말고도 야구하는 분들 계시나요? ㅠㅠ"

 

댓글들이 이어졌다. 아무리 야구에 미친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요즘 추위는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마저 꺾을 기세였다.

 

 경기 시작 직전의 서울 기온. 한숨이 나온다.

경기 시작 직전의 서울 기온. 한숨이 나온다. ⓒ 박상익

극한 체험을 각오하셔야 합니다. 추위에 몸이 얼고 정신까지 혼미해져서 에러가 속출할 것입니다. 귀마개, 넥워머 꼭 준비하시구요 배트는 살짝 데워서 사용하십시오. 음료수 안 얼게 주의하셔야 하구요 부상방지에 초점을 두시고 무사히 게임 치르시기 바랍니다.

 

안하는게 좋을 듯 합니다. 저도 저희팀 내일경기 취소시켰습니다. 부상위험이 너무 크죠... 

 

내일 야구하면 죽을지도 몰라요. 특히 아침에..ㅋㅋㅋ

 

군대 다녀오셨죠? 전 포수 보는데 추운 날 잠깐 나오는 맨손은 저를 임진강에서 근무 서던 때로 돌려놓더군요. 구장의 특성상 하천변에 위치해서인지 바람까지 불어 정말 손 끊어버리고 싶어지죠.

 

저희도 오늘 오후 2시에 플옵 준준결승이 있었는데~ 리그측에서 연기를 결정했습니다. 1년 내내 맘에 드는 구석 하나 없는 리그였는데, 이번 결정은 소속팀들을 배려한 결정인거 같아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추운 날씨에 타격을 할 때 유의해야 할 점. 방망이 안쪽으로 공을 치지 말 것(감전에 버금가는 느낌이다), 맞지 말 것, 그리고 아까운 방망이 깨트리지 말 것.

추운 날씨에 타격을 할 때 유의해야 할 점. 방망이 안쪽으로 공을 치지 말 것(감전에 버금가는 느낌이다), 맞지 말 것, 그리고 아까운 방망이 깨트리지 말 것. ⓒ 박상익

 

댓글로 위로를 받으려고 했더니 근심어린 댓글들이 이어졌다. 야구를 한 지 11년째다. 처음으로 야구를 하기 싫었다. 아니 무서워졌다. 영하의 날씨에 가장 무서운 것은 손이 곱아 제대로 던질 수 없다는 것과 땅이 거친 상태로 얼면 불규칙 바운드가 얼굴로 날아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재수없게 공이라도 한 대 팔뚝에 맞으면 죽고 싶다는 기분이 들 정도다.

 

하지만 상대의 리그 잔여 일정이 많이 남았다는 이유로 우리는 미룰 수 없었다. 어차피 해야 한다면 유비무환. 준비만이 살 길이다. 긴팔티셔츠, 야구용 언더셔츠, 유니폼, 풀오버, 바람막이, 방풍재킷, 그리고 야구잠바. 군대에 있을 때도 이렇게 껴입었나 싶다.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가득 담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그나마 경기장과 집이 가까워 조금이라도 늦게까지 따뜻한 방바닥에 몸을 굴릴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이다.

 

 WM 팀의 유격수 한철. 고령(?)에도 불구하고 팀내 최강의 불방망이를 자랑한다.

WM 팀의 유격수 한철. 고령(?)에도 불구하고 팀내 최강의 불방망이를 자랑한다. ⓒ 박상익

 

야구장에 들어서니 찬바람이 씽씽 맞이한다. 자연스레 장작불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이런 날엔 워밍업이 무의미할 정도. 다들 난로 옆에서 몸을 녹이는 것이 최선의 워밍업이라는 듯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눈다.

 

경기는 시작됐다. 심판진은 이날 추위를 감안해 모든 방한장비의 착용을 허락했다. 모자 대신에 털모자를 쓰고 목토시를 얼굴이 다 덮이도록 쓴다. 아무리 추워도 야구는 야구니까 소리를 치고 공을 날리고 신나게 달린다. 어라? 달리다보니 몸이 따뜻해진다. 옷을 두껍게 입은 덕분이겠지만 다행히 칼바람이 잦아들어 조금씩 할 만 하다. 경기 중에 장작 연기가 마운드로 넘어오니 흡사 축구장의 연막 응원을 방불케 한다.

 

경기는 아무도 다친 사람 없이 잘 마무리됐다. 상대 팀의 선수출신 선수는 우리 수비가 방심한 틈을 타 단타성 타구에 2루까지 내달리는 센스를 보여줬다. 추운 땅에 슬라이딩까지 하면서... 다만 선수출신은 나무 배트를 써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그 선수는 방망이 두 개를 부러트리고 난롯불에 던져 넣었다.

 

12-4, 5회 콜드게임으로 패했다. 웃으면서 즐긴 경기지만 지면 정말 분하다. 하지만 어쩌랴. 남이 나보다 강해서 이겼는데. 야구를 비롯해 스포츠광들은 매번 죽음 없는 전투를 경험한다. 그것이 사람들을 이 혹한의 추위에 내몰게 하는 매력이 아닐까? 걱정했던 것보다는 춥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야구를 할 수 있어 행복했다.

 

 모쪼록 이 힘든 날 경기를 치렀던 양팀 선수들, 어딘가에서 공을 치고 날렸던 사회인야구 동호인들, 기타 스포츠를 즐겼던 모든 사람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 고생하셨습니다!

2011.01.16 18:12 ⓒ 2011 OhmyNews
사회인야구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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