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앞의 세사람

피아노 앞의 세사람 ⓒ 헬마 샌더스 브람스



'클라라 슈만'에 관해서라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슈만의 아내, 한때 피아니스트, 여덟 명의 아이를 낳은 엄마 등이다. 90년대 초 TV, 슈만의 전기 영화에서 봤던 클라라는 독립적인 존재로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프리드리히 비크)와 슈만 사이에서 마음고생 죽도록 하고 늘 아이를 낳고 기르는데 아까운 청춘 다 바치는 피로한 여인일 뿐이었다. 무척 아름답기는 했으나 아이들의 엄마로 남편의 내조자로 희생하는 클라라의 모습은 안쓰러울 뿐 인상적으로 뇌리에 남진 않았었다.

그에 반해 이번에 나온 영화 <클라라 Clara, 2008>는 슈만의 아내, 브람스의 연인이기에 앞서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에 방점을 찍은 영화이다. 슈만과 브람스의 후광에 가려졌던 클라라의 진면목이 생생하다. 그동안 선입견으로 가졌던 클라라의 모습과는 달라도 많이 달랐다.

그래서 반가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클라라를 많이 미화한 것이 아닐까 살짝 의심이 들었는데. 예전에 사두고 제일 당기지 않아 건성으로 드문드문 읽었던 슈만의 전기를 비로소 줄쳐가며 밤새워 읽고 보니 클라라가 당대를 주름잡은 피아니스트였음은 사실이었네.

지금으로부터 19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옛 시절에 삶을 시작했던 여인이니만큼 제 아무리 뛰어났대도 자유롭게 활보하며 재능을 펼치며 살지는 못했으리라, 아는 사람만 알았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그녀는 음악가였던 아버지의 피를 타고나서 어려서부터 신동이었고 사춘기의 대부분을 아버지에 의해 유럽주요도시들을 순례하며 연주여행을 다녔고 가는 곳 마다 박수갈채를 받았다.

뛰어난 세 음악가, 한 집에 살다

영화는 새로운 도시에 정착한 클라라(마르티나 게덱 분)의 집에 브람스(말릭 지디 분)가 슈만(파스칼 그레고리 분)의 문하생으로 들어오면서 복잡 미묘해진다. 슈만이 브람스의 작곡실력을 찬탄하며 자신의 집에서 같이 살자 했을 때, '어, 저러면 안 되는데 왜 덥석 함께 살자는 말을 하지?' 의아했다(알고 보니 당시에는 스승들이 수제자를 주로 자기 집에서 먹고 재우며 지도했었다. 슈만도 클라라 아버지 제자로 클라라 집에서 먹고 자고 배우다 사랑이 싹튼 것).

풋~, 아침드라마 끊은 지 오래이지만 상황파악 능력은 녹슬지 않았어라. 더구나 스물의 브람스는 얼마나(!) 싱그러운지. 브람스하면 흔히 떠오르는 그 털북숭이 초상은 잠시 잊으시라. 브람스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다! 영화이니 만큼 역시 브람스의 외모도 좀 미화시켰나 했는데, 실지 젊은 날의 브람스도 영화 속 브람스만큼이나 풋풋했다. 눈빛이며 갸름한 턱 선이며 많이 닮았었다(브람스 전기 속 사진을 보니).

아무튼, 브람스는 존경하는 슈만과 클라라의 집에서 함께 음악을 추구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클라라의 아이들도 브람스 삼촌을 잘 따랐고 브람스 또한 천성이 어린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브람스에게 저런면이..ㅋㅋ

브람스에게 저런면이..ㅋㅋ ⓒ 헬마 샌더스브람스



클라라는 자신이 어린 시절 작곡한 곡을 브람스가 기억하며 연주하는 것에 놀랐고 브람스는 브람스대로 자신의 곡을 클라라가 능숙하게 연주해주니 더 없는 영광이었다. 그렇게 함께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브람스는 클라라에게 점점 경도되었고 열정은 드러나게 마련, 슈만은 불안해졌다.

하여, 가뜩이나 환청, 환각 등 온갖 망상을 앓으며 두통에 시달리던 슈만은 클라라와 브람스 사이를 의심하며 더욱 병들어간다.

"내겐 오직 당신뿐이에요." 

클라라가 진정으로 얘기해도 슈만은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때문에 이 영화를 보면서 특히 슈만에 마음이 갔다. 차이코프스키나 베토벤 슈베르트 등은 생각만 해도 너무 외로워 보여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슈만은 8명의 아이와 클라라가 있기에 불쌍함과는 거리가 먼 존재인 줄 알았는데 슈만도 외로움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

'파스칼 그레고리'의 연기가 슈만에 100% 빙의된 듯했기에 관객인 나또한 슈만의 외로움에 빙의되어 울컥했다. 아마도 슈만은 외로움 때문에 병이 더 깊어졌고 그 외로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그의 음악이 탄생했으리라. 클라라가 있었기에 수많은 곡이 만들어졌으나 반면, 그녀와의 사랑을 이루고자 그토록 스승과 투쟁했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만신창이가 되었을까.

깡마르고 주름진 늙은 슈만은 클라라에 빠져드는 브람스를 질투하면서도 자학은 할지언정 브람스를 함부로 대하지는 않는데 그 모습이 또 너무 짠했다. 시인을 꿈꿀 만큼 문학적 재능도 탁월했던 슈만. 넷째 손가락의 독립성을 위하여 셋째 손가락을 고정시켜 놓고 연습을 하다가 되려 손가락이 마비되고 마는 불운의 사나이. 때문에 작곡을 해도 전체를 연주, 검토 할 수 없기에 슈만에게 있어 '피아니스트' 클라라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나도 여자이면서, 남자 천재는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여자 천재에 대해서는 그런 여자 있을까 했는데, 클라라 슈만이야말로 당시 시대를 주름잡는 '천재' 피아니스트였다. 슈만 사후 40년이나 더 살며 그 긴 세월동안 슈만과 브람스의 음악을 홍보(?)했기에 오늘날 두 사람의 음악이 더 널리 알려진 것은 아닌지.

 클라라로 열연한 마르티나 게덱의 연주 솜씨 놀라워~

클라라로 열연한 마르티나 게덱의 연주 솜씨 놀라워~ ⓒ 헬마샌더스브람스



젊은 브람스는 클라라를 향해 상당히 저돌적이었는데 스승의 사후 그 저돌성은 내면화되었다.

"세상 모든 여자랑 자겠어요. 그러나 제 마음은 항상 당신과 함께 합(잡)니다."

하늘의 별이 된 스승님은 더 이상 질투도 그로인한 외로움도 없을 것인데 무얼 그리 평생을 견우직녀로 사셨던가. 200년 뒤 사람이 생각해도 짠하기 그지없는...ㅠㅠ. 오래 전에 백골이 진토 되었을 두 사람인데 여전히 짠해.

<타인의 삶>과 <바더 마인호프>에서 열연했던 '마르티나 게덱'은 클라라 역을 맡으면서 영화 속 피아노 연주를 대역 없이 손수 하였다고 다. 하여, 피아노 치는 모습을 손 따로 몸 따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 전체적으로 보여주며 능숙하게 피아노를 쳐주니 모처럼 보는 눈 이 호강했다. 특히나 마지막, 음악으로 교감하는 두 사람의 넋에 빠져 나 또한 극중 브람스처럼 얼어붙었다. 참으로 좋은 영화~.  

덧붙이는 글 <클라라>는 지난해 12월 16일 개봉했습니다
클라라슈만 브람스 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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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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