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끝에 도달한 어른같은 아이들이 상처난 철길 위에 서 있다. 서로를 어루만지던 그때가 행복했음이 그들의 얼굴 속에서 묻어 난다. '너가 거기 있기에 난 오랫동안 행복했어'라고 속으로 몇번이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밝게 웃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하지만 이제는 지쳐 무거운 기차를 떠받치기에 벅찬 낡은 철길처럼 시간이 지나 다시 나타난 소년들의 모습은 어느새 우울하고 얼룩져 있다.

스스로를 상처 주기에는 너무나도 모자란 소년의 길목에서 그들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쉽게 서로를 떠나보내고 있다. 그렇게 아파하면서까지 서로에게 '안녕'이라고 인사하고 있다. 마음 속 생채기는 어느새 얼룩지고 고름져 소년들을 돌이킬 수 없는 모서리까지 내몰게 한다. 서로를 어루만져 주었던 과거는 온데간데 없이 먼지처럼 사라지고 이제 남은 것은 쓸쓸한 공기, 그 공기 위를 떠도는 담배연기 그리고 그들이 숨쉬던 공간일 뿐이다. 과연 이 회복할 수 없는 감정의 골은 어떻게 그들을 생에서 내몰게 했을까?

 오래된 철길위를 걷는 소년, 그 끝에서 서늘하게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

오래된 철길위를 걷는 소년, 그 끝에서 서늘하게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 ⓒ 빈장원


윤성현의 <파수꾼>을 나는 감히 '빛나는' 데뷔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느 것 하나 겉멋 부리지 않는 영화는 인물들의 감정을 후벼파고 움직여 영화 속에 등장하는 소년들의 빛나는 외모만큼이나 그 자체에 감흥의 빛이라는 소용돌이를 가진다. 어쩌면 이 작품은 그의 단편 <아이들>의 장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때 단편을 보고 느꼈던 감정, 그리고 그 영화를 둘러싸고 있던 기운, 마지막으로 '오해와 진실'이라는 인물들간의 관계속에서 불거져 나오는 철학적 명제들이 과감하게 이번 작품에서도 그만의 필체로 그려져서 소름끼쳤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것은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는 기분좋은 소름이었다. 116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을 세 소년의 이야기에 빠져들어가 그들이 내뱉은 언어 한 마디 한 마디를 귀기울여 듣고, 표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세심한 주위가 필요했던 때가 실로 오랜만이었다.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좋을 10대의 어두운 추억을 끄집어 내면서까지 이 작품을 온전히 볼 수 있었던 것도 윤성현이 가지고 있는 연출의 힘과 <파수꾼> 속에 비친 매서린 아픔의 공기때문이 아니었을까? 영화에서 냄새가 난다고 하면 역설적으로 <파수꾼>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름다운' 냄새가 난다.

누구라도 그 상처를 견디기 힘들지만, 누구라도 오래 버틸 수 없는 순간이겠지만 이상하게도 난 그 모습들이 향기롭지도 역하지도 않는 '아름다운' 냄새라고 표현하고 싶다. 

모르지만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소년들

모든 것이 순간이다. 순간을 견뎌내지 못하는 순간 골은 깊어지고, 관계는 멀어진다. 기태로 인해 친구들은 멀어진다. 희준은 전학을 가고, 동윤은 학교를 그만둔다. 모든 것이 누구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다. 어쩌면 모두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들은 모르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생채기를 만든다.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고백하겠지만 그들의 말과 행동엔 날이 서있다. 기태에게 최선은 못되게 행동했던 자신의 행동을 희준에게 사과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여러 번 희준에게 미안하다고 고백하지만 희준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적절한 때를 찾지 못한 이유이다. 그것은 동윤과 희준에게도 마찬가지다. 세정과의 관계의 속사정은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기태로 인해서 어긋났다고 생각하는 동윤과 자신의 사소한 행동 하나를 크게 해석하는 기태로 인해 맘이 상한 희준 역시 실은 그들의 말과 행동으로 수십번 기태에게 성처를 준다.

그러니 그들은 자신들은  모두가 상처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상처를 주고 있다. 세정은 어느 날 기태에게 '낙인'에 관해 이야기한다. 둘은 머뭇거리면서 그 말을 흘리지만 '낙인'이라는 낱말은 이 영화에서 굉장히 크게 느껴진다. 기태, 동윤, 희준 그들이 바로 서로를 낙인시키고 있는지는 않은가?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그들의 관계가 그렇게 쉽게 찟어지고 균열된 데는 작은 입 밖으로 퍼져 나오는 거칠고 더러운 말 때문이리라. 그들이 끝까지 굉장히 두려워했던 것은 그 '낙인'되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특히 그것을 이겨내지 못한 '기태'는 스스로 자신을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칼날 위에 선 관계, 정민으로 인해서 동윤과 기태의 기싸움은 극에 달한다.

칼날 위에 선 관계, 정민으로 인해서 동윤과 기태의 기싸움은 극에 달한다. ⓒ 빈장원


진실을 알지 못하는 간계의 비극

이 영화에서 다른 의미에서 마음에 들었던 것은 고등학생을 다룬 '청춘' 이야기에서 흔히 등장하는 부모님 혹은 어른과의 갈등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들 죽음의 이유를 추적해 나가는 아버지가 등장하지만 영화 내에서 기태가 아버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기태, 동윤, 정민의 세 소년의 이야기 속에서, 울며 아픔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소년들이지만 직접적으로 후회하고 반성하는 행동의 주체는 기태의 아버지(어른)다.

아버지와 기태의 관계가 한번도 수면으로 떠오르지 않았던 것은 인위적인 배제가 아니라 정말로 그 둘의 관계가 말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던 것임을 보여준다. 아버지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들을 친구들을 통해서 해소할 수 밖에 없었던 위태로운 한 소년이 가장 친한 친구 둘을 떠나 보낸 뒤 허무함을 이기지 못해 죽은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아버지는 진심으로 눈물을 흘린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끝자락에 놓인 소년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진실을 알지 못하는 관계의 비극에 대해서도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영화는 진부하지 않고 뭔가 색다른 철학적 메시지까지 부여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깊이가 있다.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을 밝혀냄으로써 자신이 알지 못했던 아들을 이해해 나가는 것이다. 다르덴 형제나 이창동과의 색채가 보이지만 그보다 좀 더 멀리 떨어진 지점이 이 영화에서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묘한 감동은 그런 연유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소름끼치는 연기를 보여준 이제훈(기태)

소름끼치는 연기를 보여준 이제훈(기태) ⓒ 빈장원


단편 <아이들>에서 징검다리를 건너는 소년들의 눈부신 모습이 이 영화에서도 여러 번 등장한다. 월미도에서 촬영된 일련의 장면이라든가 오래된 철둑 위에서 야구하는 장면들은 <아이들>과 오버랩된다. 그 속에서 빛을 발하는 눈부신 소년들이 있기에 작품에서 느껴지는 슬픔의 파장이 더 넓고 깊은지도 모르겠다.

그 소년들을 떨림있게 연기한 세 배우 중에서도 기태역의 이제훈은 정말 아낌없이 칭찬해 주고 싶다. 그의 명확하게 내뱉는 말투나 표정없이 바라보는 거친 눈빛, 입술의 변화까지도 숨 죽여 바라볼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매혹적인 연기를 해냈다. 이 영화에서 떨림을 느낀 가장 긴 시간의 대부분은 그의 연기 속에서 기인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영화에서 그를 분명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해 본다. 그리고 윤성현, <아이들>을 처음보고 가졌던 기대가 헛되지 않음을 보여준 장편때문에 그의 다음이 기다려진다. 소년에서 청춘으로 다가서는 애매한 경계에서 또 어떤 살타래를 풀어낼지는 '그' 윤성현만이 알겠지만 그 기다림이 나쁘지 않을 것임을 믿고 또 믿어 보겠다.

덧붙이는 글 상영시간 : 116분

2011년 개봉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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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 윤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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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전주국제영화제 관객평론가 2008 시네마디지털서울 관객심사단 2009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관객심사단 2010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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