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복싱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김지훈(23·일산주엽체육관)이 1라운드도 버티지 못하고 KO패로 무너졌다. 김지훈은 지난 10월 31일 호주 사우스웨일즈 올림픽파크 스포츠센터에서 홈링의 레오나르도 자파비냐(호주·23)를 상대로 IBF 도전자 결정전에 나섰지만 참패하고 말았다.

김지훈은 예전과는 달리 조심스럽게 경기를 풀어나갔다. 24전 전승(16KO)의 자파비냐의 주먹을 경계하려는 듯 빠른 움직임으로 잽을 던지며 탐색전을 벌였다. 하지만, 김지훈은 경기 시작 1분이 지날 무렵 뒤로 빠지며 상체를 숙이는 순간 자파비냐의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관자놀이에 맞았다.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가 겨우 일어났으나 다리가 풀린 상태였다. 경기가 속개되자마자 바로 자파비냐의 라이트를 맞고 또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긴 했지만 이어지는 자파비냐의 맹공에 주심이 경기를 중단 시킨 시간은 경기 시작한 지 100초가 채 되지 않았다. 허무하고 충격적인 패배였다.

통산 7번째 패배(27전21승18KO7패)를 당한 김지훈이지만 이번 경기는 그야말로 뼈아픈 패배가 아닐 수 없다. 지난 8월 15일 IBF 타이틀전에서 미겔 바스케스(멕시코)에게 판정패를 당한 이후 갖는 재기전이자 도전자 결정전이어서 향후 세계타이틀 도전에도 한참 멀어지게 됐다. 또한, 한국 복싱계도 그의 패배로 인해 이젠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처절한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유일한 세계랭킹 10위권 이내의 선수로 국제적인 지명도와 경험 면에서 견줄 만한 선수가 없는, 그야말로 마지막 보루였기 때문이다.

김지훈에게 큰 희망을 걸었던 한국 복싱팬들에게는 아쉬움과 자조적인 탄식이 이어지고 있다. 혼자서 한국복싱 부활의 희망이라는 기대와 부담감을 짊어지고 싸운 것만으로도 대견한 일이었지만, 이게 바로 월드 레벨과 한국복싱과의 차이를 현실적으로 드러내준 것이기 때문이다.

이토록 한국 프로복싱이 몰락한 원인은 무얼까. 비인기 종목으로 전락해서 선수층이 얇아진 면을 접어두더라도 김지훈을 비롯한 한국 선수 개개인의 체격은 과거 복싱 중흥기 때보다 더 좋아졌고 체력과 정신력도 나무랄 때 없다. 하지만, 기본기와 기술적인 부분에서 세계적인 흐름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 주된 이유다. 체계적으로 기본기를 배운 아마추어 선수 생활을 거치지 않고 동네 체육관을 통해 프로로 직행한 선수들이 대부분이고, 지도자들 또한 자신의 경험만을 토대로 가르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성장에 한계가 보인다는 것이다.

 유명우 사무총장 해임으로 복싱계 갈등은 더욱 깊어진 상태다

유명우 사무총장 해임으로 복싱계 갈등은 더욱 깊어진 상태다 ⓒ 이충섭


그렇다고 열악한 환경에서 수고하는 지도자들을 탓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런 세계적인 흐름과 훈련법을 전파하는 일은 복싱협회에서 해야 할 주된 임무인데, 협회는 선수 사망 책임공방과 합법적 회장 선출을 놓고 직무정지 소송을 이어가며 행정에 손을 놓고 있다. 이를 핑계로 신인왕전도 3년째 열리지 않고 있다. 2010년 10월 현재 모든 체급 랭킹10위 안에 공석이 있다. 한마디로 체급별로 활동하는 선수가 10명이 채 안 된다는 것이다.

프로의 젖줄인 아마추어 복싱도 암담하기는 마찬가지다. 1986년 아시안게임 전 종목을 석권하며 적어도 아시아에서만큼은 맹주를 자처하던 때는 까마득하고 이제는 아시안게임에서조차 금메달 한 개도 확신을 못하는 상태다. 협회장 선거를 둘러싼 내부 세력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급기야는 세계연맹과도 불화를 일으켜 출전정지를 당하자, 정부와 대한체육회가 직접 나서 사태를 수습하는 지경이니, 유망주 발굴과 육성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김지훈을 제외하면 세계 랭킹 30위권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 한국 복싱의 현실을 인정하고 거창한 타이틀전보다는 신인왕전, 4라운드 시합 등을 통해 저변을 확보하고 선수들의 기본기를 다져야만 한국 복싱이 소생할 수 있다.

 최요삼,배기석에 앞서 한국복싱이 먼저 사망했다

최요삼,배기석에 앞서 한국복싱이 먼저 사망했다 ⓒ 이충섭


김지훈 한국복싱 자파비냐 한국권투위원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KBO선수협의회 제1회 명예기자 가나안농군학교 전임강사 <저서>면접잔혹사(2012), 아프니까 격투기다(2012),사이버공간에서만난아버지(2007)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