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언론시민연합이 주최하는 퍼블릭액세스시민영상제(이하 시민영상제)가 올해로 10회를 맞는다. 올해는 11월 5일부터 7일까지 3일 동안 대학로 배우세상소극장에서 열린다. 퍼블릭액세스의 기본적인 정신은 말 그대로 일반 시민에게 영상으로 발언할 기회를 준다는 것이었고 많은 시민이 이에 호응하고 동참해 왔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을 시민영상제는 그 사이 '뜻밖에' 반짝반짝 빛을 내며 영화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는 특출한 사람들을 배출하게 되었다.

<방독피> 2010년 베니스 영화제 초청, <정당정치의 역습> 2006년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의 비평가 주간 초청, <뇌절개술> 2005년 밴쿠버영화제 용호상 부문 특별언급, <자본당 선언:만국의 노동자여, 축적하라!> 2004년 베를린영화제 영포럼 부문 초청, <반변증법> 2002년 베니스 영화제 뉴테리토리 초청….

이렇게 화려한 국제무대 초청 경력을 가진 한국 감독(들)이 있다. 누구의 이름이 떠오르는가. 박찬욱? 이창동? 홍상수? 물론 아니다. 주인공은 바로 제1회 시민영상제에서 <이 사람을 보라>로 '작품상'을 수상했던 영화창작 집단 <곡사>의 김곡, 김선 감독이다.

김곡, 김선. 아무리 국제영화제에 진출했더라도 오직 경쟁부분에서 본상을 수상해야만 기억하는 우리 풍토에서는 생소한 이름일 수도 있겠지만, 2009년 2월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최초로 (공동으로 작품을 만들어 온) 이들의 전작전이 마련되기도 했다. 나름 그쪽으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감독이란 얘기다.

가을이 무르익어 가는 10월 19일. 시민영상제 열 돌을 기념하면서 제1회 시민영상제 '작품상' 수상자인 김곡, 김선 감독을 전미희, 최윤정 집행위원이 인터뷰했다.

10년 전 첫 만남... <이 사람들을 보라>

김곡,김선 감독의 <이 사람을 보라> 김곡,김선 감독의 <이 사람을 보라>

▲ 김곡,김선 감독의 <이 사람을 보라> 김곡,김선 감독의 <이 사람을 보라> ⓒ 염찬희

- 우리의 첫 만남인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수상작이 <이 사람을 보라>였는데 아주 독특했어요. 페이퍼 워크로 영화를 만든 것인데 등장인물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 마릴린 먼로, 아인슈타인이었어요. 왜 종이로 작업을 했나요? 그리고 이 튀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뭘 표현하려 했던 거죠?
김곡 : "(페이퍼 워크는) 배우를 찾지 못해서 선택한 거예요. 주인공들이 다들 죽어서 캐스팅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죠.(웃음) 진짜예요. 그것 때문에 분위기가 어두워졌죠."
김선 : "나름대로 세계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였어요. 22살 때였던 것 같은데 니체나 칸트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의 책을 읽고 있었어요."

- 작품의 내용이 어려워 본선에 올릴 때 논란이 많았던 작품이에요. 물론 본선에서는 눈 밝은 김소영 교수님이 적극적으로 편을 들어주셨지만. 제목을 '이 사람을 보라'라고 붙인 이유는요?
김곡 : "그냥 성경에서 따왔어요. 빌라도가 예수를 군중들 앞에 세워놓고 한 말이에요."

- 지금도 실존주의를 탐구하고 있나요?
김곡 : "지금은 실존주의는 졸업했어요. (실존주의는 마스터했다는 뜻?). 시민도 실존은 졸업할 수 있다고요."

- 그리고 실존에서 넘어간 게 바로 유물론?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
김곡 : "바로 유물론으로 넘어가 헤집고 다녔어요. 그때는 진짜 머릿속이 복잡하고 책 읽는 속도가 빨랐던 것 같아요. 세상에 대한 불만이 많고 공격적이고 다크하고 그랬어요."

- 10년 전과 중간 5년, 그리고 지금, 본인들의 변화 추이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 실존과 유물론을 넘어갈 때 쯤?
김곡 : "현장에 뒤처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방안에서만 영화를 만들다 보니 길거리에 카메라를 들고 나가는 것에 대해 소홀했어요. 카메라 들고 나가기 시작한 시기가 <정당정치의 역습>쯤 이었죠. 카메라를 들고 나가는 것이 즐겁고 재미있었요. 곡사의 대중화가 은근 욕심 난 거죠. <Bomb! Bomb! Bomb!> 이후로 수습기간이 시작된 거죠(1, 2년 동안 골방에 앉아 시나리오만 쓰던 시기가 2006∼7년 정도).

단순 질문에 답 달기

 김곡,김선 감독

김곡,김선 감독 ⓒ 민언련


- 둘이 공동 작업을 하는데, 포털 <다음>에 떠 있는 정보가 얼마나 웃긴지 알아요? 둘의 최악과 최고 작품이 다르다는 거예요. 김곡은 최고 <Bomb! Bomb! Bomb!>(2006) 최악은 <정당정치의 원리>이고, 김선은 최고는 <정당정치의 역습> 최악은 <Bomb Bomb Bomb>이라는 거.
김곡 : "더 재미있는 건 나오지도 않은 작품 '드릴소년'에 네티즌 별점이 있다는 거예요."(이 말을 하면서 너무 유쾌해한다.)

- 단순 질문 해볼까요. 공동 작업의 장점은?
김곡 : "작업진행과 행사가 겹칠 때 한 사람은 남고, 나머지가 행사에 참여하는 거죠. 예를 들면 일본에 있는 어느 영화제와 영화 <화이트> 작업을 빨리 진행해야 할 때 분업이 잘 되죠.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때도 그랬죠. 한 사람은 현장에 있고 한 사람은 영화제 가고. 분업이 잘 된다!!!"

- 공동 작업의 단점은?
김선 : "결정권이 단일화되지 않을 수도 있는 거."

- 작업의 주도권은 누구에게?
김곡 : "처음 아이디어가 누구한테 나오느냐에 따라 달라요. 그런데 돌아보면 (아이디어가 누구에게서 나왔든) 맞게 말한 놈 말이 맞아요. 맞는 건 맞아요."

- 결국은 작품을 사람들이 많이 봐줘야 하는데,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고 국내에서 인정받는 사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김곡 : "그 문제는 차차 생각해야겠어요. 국내에서 인정받고 싶진 않지만 시민영상제에는 인정받고 싶어요."

동지란 무엇인가?

 제10회 퍼블릭액세스시민영상제 포스터

제10회 퍼블릭액세스시민영상제 포스터 ⓒ 민언련

- 작품 낼 때 민언련을 어떻게 알았어요?
김선 : "어떻게 냈지? 그건 모르겠어요. 퍼블릭액세스란 단어가 생소했고 재미있고 흥미로웠죠. 실제에서는 신상이죠. 영화 만들어놓고 10만 원 페스티벌에서 윤성호씨와 만났고, 민언련 시민영상제에서 또 만났고, 인디페스티벌에서 또 만났고 연달아 만났어요. 그전에는 사회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들이 우리뿐이라고 생각해서 우리끼리 지랄발광했는데 여러 영상, 영화제에서 비슷한 생각을 하는 친구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그 당시 1∼2년은 별천지(동지들)였어요. 그들 대부분이 학교나 어디서나 다들 왕따예요."

김곡 : "그때를 기억에 해 보면 무턱대고 낸 건 아니었어요. 작품과 영화제가 맞겠다는 생각을 하고 냈는데 자세한 과정들은 기억이 안 나요. 이미지들만 몇 개 떠오르는데, 여기저기서 만난 사람들이 '빡빡이(김곡 김선 감독은 언제나 짧은 머리를 하고 있다) 또 왔네!' 그랬죠. 우리가 민언련 제1회 시민영상제 때 탄 상패 안방에 있어요. 아버지가 별로 그런 걸 안 좋아하시는데도 그냥 올려놨어요. 영광이라며. 지금 생각하면 그 작품은 영상도 아니었지요."

- 윤성호 감독과 두 분은 수상한 바로 다음 해에 민언련 영상제에서 일을 맡기도 했죠?
김선 : "그때 윤성호 감독도 정말 열심히 했어요. 우리한테 2회 시민영상제 트레일러 만들자고 해서 했고, 성호 감독은 제1회 서강영화제 개최에도 정말 의욕적이었죠."
김곡 : "2회 때 윤성호 감독이 프로그래머로 함께 했을 때 미디액트에서 열렸던 개막식이 생각나네요. 좌석이 없으면 맨 앞에 <조선일보> 신문으로 방석 만들어서 깔고 앉으라고 했었는데…." (웃음)

- 초기에 여기저기 영화제에 뛰어다니던 시절 만난 친구들과는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고 있나요?
 김곡 감독

김곡 감독 ⓒ 민언련

김곡 : "(최)진성이 형도 그렇고 성호도 그렇고 연락 자주 안 하지만 마음에 동질감이 있어요. 마음에 동지라고 할까? 아무 때나 연락할 수 있는…. 최근 진성이형한테 4대강 사업을 도둑 촬영하러 가겠다고 그냥 전화했는데 바로 환경운동 하는 관계자들을 연결해줬어요. 그래서 우린 4대강 사업이 진행 중인 여수로 가 카메라로 시위를 하고 왔죠."

김선 : "성호랑은 얼마 전에 대판 싸웠어요(유쾌하고 즐거운 표정). 그렇지만 아무리 싸웠어도 지금 당장에라도 연락할 수 있어요. 아무리 싸워도 동지인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이 아직까지 마음의 동지라는 것을 느끼죠. 성호랑 진성이 형한텐 미안하고 고마운 감정이 있어요. 직접 행동으로 뛰니까. 프로그램을 짠다든지 하는 그런 능력이 있어요. 난 어깨가 좋지 않아요. 돌멩이를 던지지는 못해요. 그 사람들은 어깨가 좋아요! 던지고, 뛰어다니죠. 부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합니다."

- 민언련 시민영상제가 10년 동안 매년 열렸는데 그때마다 관심은 좀 가졌었나요?
김선 : "고백하자면 마음이 멀어지긴 했어요. 하지만 민언련을 생각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줘야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저는 그동안 작품활동하면서 미디액트에서 장비 최다 대여상 받았어요. 그걸로 방값을 댔어요."

고마운 건 '영수증 처리'... 필요한 건 '아이돌 노동조합'

- 말이 나와서 말인데, 어떻게 먹고 살았어요?
김곡 : "요즘에는 영화 찍으니까 영수증 처리해요. 우리를 챙겨주는 영화사 만나서 많이 빌붙어요."
김선 : "예전에는 과외했어요. 한 번씩 강의도 하고. 영어 가르치며 생활했죠. 작년까지 과외를 했어요. 과외는 생활비와 용돈 정도. 여기저기서 빌붙어 살아요."(웃음)

- <Bomb Bomb Bomb> 이후 상업영화에 도전을 하는데, 엎어진 영화는 없나요?
김곡 : "상업영화 수습기간 안에 시나리오는 많이 썼는데, <화이트>는 그중의 하나예요."

 김선 감독

김선 감독 ⓒ 민언련

- <화이트>(대기업 투자로 작업진행 중이다), 누가 같이 하자는 제의를 했어요?
김곡 : "최두영 대표가 인권위의 인권영화 <Bomb Bomb Bomb>을 재미있게 봤나 봐요. 최두영 대표의 고군분투로 제일 쎈 곳부터 내밀었는데 CJ가 먼저 들어왔고 바로 OK! 했어요."

- 첫 상업영화인데 설레나요?
김선 : "그렇지는 않아요. 수습기간을 거치면서 (바로 들어갔으면 설렜겠지만). 똑같아요. 한참 영화계 가라앉을 때, 하나둘씩 도산될 때여서... 그 영화도 만들어야하는데, '드릴소년'이라고."

- 본인들이 '까는' 대기업 자본과 불편한 동거를 시작했는데 심정은?
김곡 : "자본이랑 돈은 다르다. 우리가 필요한 건 돈일 뿐이에요. 독립영화도 하고 상업영화도 하고. 상업영화를 하다가 독립영화를 할 수 있다는 케이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에요."
김선 : "대종상, 청룡영화제에 모습을 드러내진 않아도 시민영상제에는 나올 수 있도록 해야죠."

- 전에는 열악한 조건으로 영화를 만들었지만 자본이 들어가면 때깔 있는 영화가 나와야 할 텐데 (돈 준다고 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잘할 자신 있나요?
김곡 : "하던 대로 하고 있어요. 우리가 상대적으로 할 게 적어졌다는 거 말고는 달라진 건 없어요. 독립이나 상업이나 스텝 조율과 디렉트의 역할은 똑같아요. 아, 달라진 건, 밥은 제때 나와요. 밥차, 밥차가 있어요. 독립영화는 없으면 안 먹거나, 협찬 들어오면 먹는데."

-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배우의 차이가 있나요?
김곡 : "배우들에게 독립, 상업의 차이는 못 느끼겠어요. 착한 사람은 착하고 나쁜 사람은 나빠요. 독립영화하다가 자본이랑 같이 하니 좀 더 영화작업이 '노동'같이 느껴요.(지금 티아라의 함은정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돌 노동조합'이 생겨야겠어요. 살인적인 스케줄에 맞춰 열심히 하려 하는데 너무 피곤해 해요. 그냥 아이돌도 노동자다. 잠 좀 자게 해주세요. 제~발!"

 2005년 제5회 퍼블릭액세스시민영상제 폐막식

2005년 제5회 퍼블릭액세스시민영상제 폐막식 ⓒ 민언련


- 앞으로 시민영상제가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는지?
김곡 : "번지르르한 거 말고 액세스적인 걸루! 공영방송에서 G20 선전하고, 4대강 선전하고 그거 안 하면 안 되나요? 아나운서 클로징 멘트 SBS 발언도 그렇고, 양배추 발언 등 그거 괜찮은 건가? 대중의 의견이 나오는 하부와 의견을 접수하는 상부(국회)가 피드백을 해야 하는데 그 사이의 매개의 역할이 공영방송이잖아요. 그런데 한국방송이 의무를 방기하고 있죠. 피드백이 망가진 작금의 사태는 홀랑 깨는 거죠. 피드백이 잘 돼야 건강할 건데. 그것이 안 되니까…."
김선 : "민언련 가서 말해. 민언련이 피드백을 잘해."
김곡 : "사실 영화에 좀 더 집중하면서 민언련과는 멀어지는 것 같아요. 활동에서 멀어지는 거지 항상 뭔 일이 있으면 민언련의 성명서나 문건이라도 찾아봐요. 나대신 민언련이 까대 주시니까."

- 시민영상제에 한말씀 하신다면?
김선 : "다크 에이지(Dark Age)!라 활기차게는 못하겠고, 잘 버텨 봐야죠! 뭐 암흑의 시대가 빨리 지나가길…."

[추신 인터뷰] 우문현답
인터뷰를 정리하는 중에 그 유명한 김곡, 김선 감독들에게 꼭 묻고 싶은 것이 있다는 사람이 있어, 메일로 추가 질문서를 보냈다. 다음은 그들의 대답이다.

[질문 1] <곡사>는 무슨 뜻인가요?
"아무 뜻도 없습니다."

[질문 2] 작품의 분위기가 독특한데, 영향을 받은 감독이 있나요? 국내외를 막론하고 어떤 감독을 좋아하나요?
(김곡 김선의 공통분모만 대강 적어보면) "로버트 알트만, 김기영, 루이스 부뉴엘, 가이 매딘, 데이빗 크로넨버그, 얀 스반크마예르, 아키 카우리스마키."

[질문 3] 퍼블릭액세스를 통해 작품을 발표하거나 수상을 한 고등학생 감독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세상 혹은 역사에 대해 '쪽팔리지 않게' 사는 것이 관건. 언제나 언저리를 둘러보고, 결국 '세상에 대한 싸가지를 챙기는 것'이 관건."

[질문 4] 영화로 사회적 발언을 많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 표현방식을 보면 대중들이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사회적 발언이 일정한 힘을 갖기 위해서는 보다 보편적인 감성에 평범한 사람들에게 호소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나요?
"평범한 사람들이란 없습니다. 평범한 코드들, 평범한 편견들, 평범한 비평들, 평범한 지식들, 평범한 댓글들, 평범 한 정권들만이 있을 뿐."

[질문 5] 젊은 감독들인데 작품 편수도 많고, 해외영화제 초청도 많았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제작비는 어떻게 만드나요?
"곡사의 제작 방식보단, 이 정권의 제작 방식이 더 궁금합니다."

- 4대강의 제작비는 어떻게 만드나요?
"풋!"

그들답다!

추신에 추신으로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덧붙이자.
이 유쾌 불온 발랄한 감독들을 탄생시킨, 이제 10년의 관록이 붙은 민언련 퍼블릭액세스시민영상제가 11월 5일∼7일까지 3일간 대학로 배우세상소극장에서 열린다. 올해 역시 번득이는 재기와 불온한 끼를 가진 감독들이 이 등용문을 통해 등장할 것이다. 어쩌면 미래의 거장이 될 그들의 풋풋하고 실험적인 초기 작품을 만나보는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이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를! 자세한 정보는 퍼블릭엑세스 홈페이지(http://www.publicaccess.or.kr/)
에서 확인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염찬희 기자는 시민영상제 집행위원장입니다.
민언련 시민영상제 퍼블릭액세스 김곡김선 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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