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볼란티어> 국회시사회용 포스터

<섹스볼란티어> 국회시사회용 포스터 ⓒ 아침해놀이

몇 년 전 여름. 2박 3일의 장애인 여름캠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였다. 피곤했는지 잠깐 눈을 붙인 것 같은데 옆 좌석에서 심상치 않은 진동이 느껴져 반사적으로 눈이 떠졌다.

그때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자의 자위행위 장면을 목격했다. 내가 깊이 잠들었을 거라 생각을 했는지 옆자리에 앉은 장애인친구가 자위행위에 열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애인 주말학교 교사로 5년 이상 봉사활동을 하며 나름대로는 장애인의 특성에 많은 이해를 하고 있다고 자부하던 나였지만 그 순간 심하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인지 알지 못했던 나는 다만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공개된 장소에서의 자위행위는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그 친구의 손등을 살짝 때려주었다. 그리고 "남이 보는데서 이러면 안 되는 거야"라고 전혀 '놀라지 않은 척' 말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 

그리고 며칠 뒤 그 친구의 자원봉사파트너로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남자선생님에게 당시의 충격을 털어 놓을 수 있었다. 그때 선생님은 나에게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

"이 친구가 올해 서른 초반이지요.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이라 제 몸을 제 스스로 움직이지 못해서 그런 거지 몸도 마음도 다 어른입니다. 몸을 움직일 수 없다고 성적 욕구도 사라졌다고 생각하면 오해인 거죠. 솔직히 사춘기 아이들조차도 자기의 본능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지만 장애가 심한 친구들의 경우엔 그게 어렵거든요. 장애인들도 우리와 똑같습니다. 다만 인간이 가지는 기본적 욕구조차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해결하지 못하는 것 뿐이라고  보시면 이해가 쉬우실 겁니다."

그 선생님은 자신도 여러 번 그 친구의 자위행위 뒤처리를 해준 경험이 있다면서 장애인들에게 인권이 중요한 만큼 성적 권리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나는 그때 이미 일본에 있다는 장애인들을 위한 '섹스볼란티어'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장애인의 성적 권리나 향유권에 대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아 지금도 장애인들의 돌발적 성충동이나 욕구에 놀라거나 당황하곤 한다. 물론 처음보다는 그 충격이 많이 완화되어 유연하게 받아 들이게 된 것은 사실이다.

<섹스 볼란티어>, 주머니 속 장애인 '성'을 꺼내다

 영화 <섹스볼란티어>의 한 장면.

영화 <섹스볼란티어>의 한 장면. ⓒ 아침해놀이


조경덕 감독의 <섹스 볼란티어: 공공연한 비밀 첫 번째 이야기>(Sex Volunteer: Open Secret 1st story, 2009, 123분, 전주국제영화제 상영당시 15세 이상 관람가, 이하 <섹스볼란티어>)는 바로 이런 비장애인들의 시각에 조심스런 의문을 제기한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장애인들을 이해하고 도와준다는 당신, 혹시 자기만족이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봉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정 장애인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어려움에 함께 웃고 울며 아파하며 온전히 그들에게 헌신·봉사하고 있는 것인지' 등등 아픈 물음을 던진다.

성(性)스러운 단어 '섹스'와 성(聖)스러운 단어 '볼란티어'(자원봉사)의 불편 조합처럼 영화는 보는 내내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20대 초반 앳된 여대생과 30대 중증장애인 남성의 섹스. 과연 그것을 순수한 의미의 자원봉사로 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일반의 의식은 여전히 부정적이며 앞으로도 쉽게 이해받기 어려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거 봉사활동을 가장한 변종 성매매 아닌가요?"
"육보시라는 말이 있지만 그건 잘 못 와전된 것이고. 섹스자원봉사 그건 잘못이지요."

<섹스볼란티어>는 이런 현실감 있는 대화처럼 철저하게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촬영방식 역시 페이크 다큐형식을 이용해 극대화된 사실감을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감독 스스로 장애인들 속으로 들어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듣고 보고 경험한 이야기들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려 애쓴 흔적을 곳곳에서 확인 할 수 있는 사실주의 영화인 것이다.

성매매여성과 장애인, 그 둘의 닮은꼴 삶

 영화 <섹스볼란티어>의 한 장면.

영화 <섹스볼란티어>의 한 장면. ⓒ 아침해놀이


미혼 장애인에게 성보조기구를 나누어 주는 신부(홍승기 분). 중증뇌성마비 장애인에게 성적자원봉사를 행한 여대생 예리(한여름 분),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자위라도 한번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뇌성마비 1급 장애인 황천길(조경호 분).

영화는 이 세 사람이 한 모텔에서 성매매 단속반에게 체포되면서 시작된다.

이 영화 속에는 또다른 영화인 <손님>과 <간이역>이 등장한다. 여주인공 예리는 성매매여성을 주제로 한 <손님>이란 단편영화로 주목을 받았고, 어린시절부터 해 온 오랜시간의 자원봉사로 인해 장애인에 대한 특별한(?) 시각을 가지게 된 여대생이다. 

예리의 첫 영화 <손님>이 성매매여성과 포주의 부조리한 관계 그리고 성매매여성의 인권에 대한 깊은 관심을 담은 영화였다면 두 번째 작품인 <간이역>은 죽음을 앞둔 뇌성마비 1급 장애인 황천길의 성적권리에 대한 마지막 바람을 담은 영화다. 즉 죽기 전에 따뜻한 체온을 느껴보고 싶다는 소원을 들어 준 섹스자원봉사자였던 예리 자신과 그녀가 주목했던 장애인 황천길의 솔직한 삶이 담긴 내용이다.

<간이역>에서 성매매여성과 중증장애인은 서로 다르지 않다. 높은 통굽 구두에 붙잡혀 현실에서 도망치지 못하는 성매매여성과 불편한 자신의 몸에 갇혀 있는 더 이상 날아갈 수 없는 장애인들의 삶. 예리는 그 둘을,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공감하며 위로가 되어 줄 수 있는 보완적 관계로 보았던 것이다.   

잠깐의 등장이었지만 주인공 황천길이 프러포즈를 하려던 메일친구 이효정의 모습은 여성인 나에게 작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더 이상 자궁의 기능이 필요 없다는 이유로 자궁 적출 수술을 받은 하반신 마비 장애인 여성 이효정. 

영화에서처럼 실제로 많은 장애인 여성들이 보호자가 편리하다는 이유로 가정과 사회안에서 중성이길 강요 당하거나 보호자의 일방적인 선택으로 불임수술을 당하기도 한다. 이는 심신미약 상태에 있는 여성장애인들을 성폭행이나 강제성추행 등으로 인한 원치 않는 임신으로부터 보호하려 한다는 목적으로 자행되지만, 오히려 이것이 장애여성의 인권과 성적권리를 침해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달리 남자 장애인의 경우 약물치료를 통해 왕성한 성욕을 가라앉히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장애의 특성상 약물복용이 꼭 필요한 경우도 없지 않지만 현실에서는 장애인의 성적 권리에 앞서 보호자의 편의에 의해 남용되고 있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런 일련의 상황들로 볼 때 사회뿐만 아니라 가정안에서도 장애인 성 차별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도 <섹스볼란티어> 등장이 반가운 이유

 영화 <섹스볼란티어>의 한 장면.

영화 <섹스볼란티어>의 한 장면. ⓒ 아침해놀이


우리 현실이 이러하기에 장애인의 성적권리를 다룬 영화 <섹스볼란티어>에게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그동안 죄악시하고 외면하며 누르고 삭제시켜왔던 장애인의 성적권리를 수면위로 띄워 논란의 대상이 되게 한 것만으로도, 장애인 성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조금은 바뀌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페이크다큐의 형식의 <섹스볼란티어>가 더욱 사실감 있게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실제 뇌성마비 장애인인 조경호, 이윤호 두 배우의 열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알아듣게 대사를 전달할 수도 없는 장애인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있었기에 이 영화의 사실성은 극대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장애인의 성적 권리를 입에 담는 것조차 금기시 되어왔던 지난 시절에 비하면 <섹스볼란티어>의 개봉은 그만큼의 개선을 의미한다. 다만 이 영화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문화로써의 의식개선에서 머물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실제 우리 사회가 장애인의 인권은 물론 성적권리에까지 관심을 갖는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바뀌어야 할 의식의 장애요소들이 무척 많은 것이 우리 현실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영화 <섹스볼란티어>는 오는 22일 오전 0시를 기해 '0원 개봉' 된다. 제작사인 아침해놀이는 "영화를 포함한 콘텐츠 유통시장의 함법적, 윤리적 질서를 확립시킴과 동시에 불법 업로드와 다운로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선언적의미를 담고 있다"면서 영화 <섹스볼란티어>가 '140원짜리 꼬리표'를 단 영화로 불법 유통되는 것에 항의하는 의미로 '0원'짜리 영화로 '영원(永遠)히'관객들 곁에 남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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