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도시2' 포스터

'경계도시2' 포스터 ⓒ 감어인필름

한 사람이 한 나라의 현행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2003년에는 징역 7년 형을, 그리고 2008년에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이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죄를 가볍게 해 주지는 않을 터.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7년 동안 편집된 1시간 40분짜리 영화가 있다. 홍형숙 감독의 <경계도시2>가 그것이다.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으며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선정한 '2009 올해의 독립영화상'도 수상해 주목받은 <경계도시2>는 재독철학자 송두율 뮌스턴대 교수가 2003년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황에서 귀국한 이후 간첩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며 벌어졌던 한국 사회의 풍경들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다.

 

<경계도시2>는 오는 18일 전국 7개 영화관에서 개봉되는데,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과 최문순 민주당 의원이 9일 오후 7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한 무료시사회를 공동개최했다. 이날 시사회에는 100여명의 시민이 참석했다.

 

7년 전, 한국 사회는 그에게 무슨 짓을 했나

 

2003년 9월. 송두율 교수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요청으로 37년 만에 독일 국적을 가지고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귀국한다. 국가정보원은 그의 귀국 전에 이미 그를 노동당 서열 23위 김철수와 동일인이라고 결론 내리고 체포 영장을 발부한 상태였지만 송 교수는 일단 귀국해서 상황을 정면 돌파하기로 한다.

 

송 교수가 지난 37년 동안 고국을 밟지 못했던 이유는 70년대 한국의 박정희 정권을 독재라고 규정하고 정권에 저항하는 반체제 운동을 주도했기 때문. 그는 스스로의 역할을 남과 북을 넘나드는 '경계인'으로 규정하고 학자로서 한반도 문제에 대해 여러 학문적인 성과를 내놓았었다.

 

강산이 네 번 가까이 변할 시간이 지났으니 조국의 민주화도 자신을 포용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판단했던 걸까. "담담하게 잘 해명이 될 것"이라던 그의 바람과는 달리 귀국 이후 상황은 꼬이기 시작한다. 송 교수의 국정원 조사에는 변호사 입회는커녕 참관도 거부되었고 야당 국회의원이 불법으로 빼돌린 국정원 수사과정은 연일 신문지면을 장식한다.

 

송 교수의 노동당 입당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호의적이던 여론도 등을 돌리기 시작한다. 평생을 경계인으로 살아왔던 송 교수에게 노동당 입당은 그가 사실은 경계에 서 있지 않고 북한 쪽으로 치우쳐 있었음을 입증하는 주요한 증거였다. 보수진영은 '해방 이후 최대 간첩'이라며 강력한 처벌을 언급하며 공세를 폈고 진보진영조차 그동안 부정해온 국가보안법을 송 교수에게는 점잖게 뒤집어씌운다. 그들에게 송두율은 이미 '우리편'이 아니었다.

 

상황이 급반전되자 카메라의 시선도 고민을 거듭한다. 홍형숙 감독은 영화 속 내레이션에서 "애당초 설정했던 <경계도시2>의 설정은 '철학자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의 초상'이었다"며 "3주일이면 끝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노동당에 입당한 철학자에게 대한민국의 초상을 찬찬히 뜯어볼 여유란 허락되지 않았다.

 

'경계인'으로의 송두율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사회

 

 지난 9일 저녁 7시에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경계도시2' 시사회에 1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석했다.

지난 9일 저녁 7시에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경계도시2' 시사회에 1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석했다. ⓒ 김동환

 

송 교수를 향하던 카메라는 어느새 송 교수를 성토하는 대한민국을 비추기 시작한다.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우위를 점한 보수 진영은 송 교수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방영한 방송사를 고발하는 등 송 교수 무너뜨리기에 총력을 기울인다.

 
송 교수는 노동당원으로 의식하고 행세한 적 없다고 몇 차례나 양심 고백을 하지만 그 고백은 여론은 물론 진보 진영에게도 닿지 않는다. 한국사회에서는 좌가 아니면 우, 남이 아니면 북 식의 양자택일만 허용될 뿐이다. 경계인인 송 교수가 설 곳은 없었다.

 

평생 경계인으로 스스로를 규정지어온 송 교수에게 남은 선택은 한국 밖으로 추방당하는 것 뿐. 그러나 진보 진영은 진보 운동의 미래와 선거를 위해 송 교수에게 독일 국적을 포기하고 확실히 남한으로 전향 해주기를 요구한다.

 

탁자가 있는 방에 송 교수의 지인들이 둘러앉아 전향이냐 아니냐를 토론하며 강도 높게 갈등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 중 하나. 토론 속에서 송 교수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보다 집단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 줄 것을 강요하는 한 진보 인사의 태도는 지금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도 수많은 형태로 변주되는, 눈에 익은 풍경이다.

 

결국 송 교수는 기자회견을 통해 노동당을 탈퇴하고 독일국적을 포기하는 '완벽한' 전향 의사를 밝히고 백기 투항하지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7년의 중형을 언도받는다. 그리고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판정을, 2008년 대법원 판결에서는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인정받는다. "한국에 온 것을 후회한다"던 송 교수는 집행유예 판정을 받고 보름만에 한국을 떠났다.

 

"내 안에 있는 야만적인 레드 콤플렉스 느꼈다"

 

 지난 9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경계도시2' 시사회에 참석한 최문순 민주당 의원과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영화를 본 후 소감을 말하고 있다

지난 9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경계도시2' 시사회에 참석한 최문순 민주당 의원과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영화를 본 후 소감을 말하고 있다 ⓒ 김동환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자 장내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날 상영회를 주최한 이정희 의원과 최문순 의원은 영화 관람 후 모두 발언에서 홍형숙 감독에게 "이렇게 좋은 영화를 볼 수 있어 감사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정희 의원은 "우리는 국가보안법을 '단 하나의 조항도 남아 있을 수 없는 법'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송두율 교수는 왜 붙잡혀 있었나하는 대목에서 깊은 생각을 하게 됐다"며 "우리 사회가 국가보안법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지금은 가지고 있을까 반문해보게 된다"고 말했다.

 

최문순 의원은 영화를 보고 "핵심은 마녀사냥이고 그 중심에는 언론이 있다고 본다"며 "송두율 교수에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 MBC <PD수첩>, 한명숙 전 총리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마녀사냥은 계속되고 있으며 언론 문제를 바로잡기 전에는 해결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를 관람한 시민들도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강소영씨는 "기자들이 송두율 교수에게 계속 같은 질문을 하면서 자기 생각대로 (송 교수가) 답변하도록 강요하는 장면이 웃겼다"며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낡은 생각들을 확인한 것 같다"고 말했다.

 

송상훈씨는 "재미도 있지만 가슴에 울림을 주는 영화였다"며 "요즘 벌어지는 사회적인 일들에 무감각해진 사람들이 꼭 봐야하는 영화"라고 말했다.

 

추헌송씨는 "한국 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줘 나까지 부끄러워지는 느낌"이라며 "우리 사회의 레드 콤플렉스가 여전히 심하고 야만적이라는 것을 느꼈고, 내 안에도 역시 그런 레드 콤플렉스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10대, 20대 청년들이 영화 봐줬으면 좋겠어요"

[미니 인터뷰] <경계도시2> 홍형숙 감독

 
 '경계도시2'를 연출한 홍형숙 감독.

'경계도시2'를 연출한 홍형숙 감독. ⓒ 김동환

 
지난해부터 영화계 인사들과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경계도시2>는 꼭 챙겨봐야 할 작품'이라는 입소문이 돌았지만 그런 후한 평가가 일반 관객 동원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로서는 드물게 오는 18일부터 7개 영화관에서 개봉하는 <경계도시2>의 홍형숙 감독을 만나봤다.

 

- 이 영화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뭔가.

"영화 제목인 '경계도시'는 동·서독 분단시절 베를린의 별칭이었다. 세계 유일의 분단도시였던 베를린의 별칭과 지금도 분단국가인 한국의 도시 서울이 가지는 상징성이 비슷하다는 생각에 제목을 '경계도시'로 지었다. 이 영화는 송두율 교수를 프리즘삼아 들여다본 한국 사회의 단면을 다루고 있다. 소재 자체는 사회·정치적이지만 그 안에서는 우리 사회의 현 주소를 조망하고 있다. 누구나 2010년을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영화 안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2003년에 있었던 일을 영화로 내는 데 6년이 걸렸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2003년도의 상황으로부터 거리두기를 할 시간이 필요했다. 사람들이 송두율을 거의 잊었을 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송두율 사건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2003년에 송두율을 스파이로 몰았었지만, 2010년의 송두율은 더 이상 스파이가 아니다. 우리가 과거의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와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  감독으로서 누가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나.

"다음 시대를 이끌어갈 10대, 20대 청년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한다. 그들은 그 전 세대들이 넘지 못했던 한계, 문제점들을 풀어줄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 행동하는 젊은 지성들이 그 전세대의 아픔과 고민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30대 이후 사람들은 이 영화를 통해 자신 안에 숨겨져 있었던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들 영화를 보고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 하나씩 가져갔으면 한다."

 

- 영화가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 전체관람가가 나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15세 이상 관람가로 나와서 당황했다. 한국 사회의 통제와 규제가 이렇게 금을 긋는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 같다. 15세 이상은 돼야 이 영화를 봐도 선동을 안 당할 것이라고 생각한 건가?(웃음) 내 아들은 10살인데 이 영화를 수십 번 봤지만 일반 극영화 보듯이 재밌게 보더라. 통제받고 가려지는 사회보다는 다양한 목소리가 허용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본다."

2010.03.10 16:10 ⓒ 2010 OhmyNews
경계도시2 송두율 홍형숙 레드 컴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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