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들 대부분이 연구직입니다. 업무 성격상 좁은 실험실에서 연구에만 몰두하다 보면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죠. 게다가 보통 자정을 넘도록 연구에 몰두하다 보니 육체적으로 항상 피곤에 젖어 있습니다. 이러한 스트레스와 건강관리를 위해 만든 게 바로 마라톤 동호회입니다." - 농진청 마라톤 동호회 김용환 회장

농촌진흥청 마라톤 동호회는 지난 2003년 농업생명공학연구원 소속 직원들이 모여 만든 직장 동호회다. 물론 건강증진과 친목도모가 가장 큰 목적이다. 하지만 21세기 핵심전략기술로 떠오르는 농업생명공학을 널리 알리겠다는 숨은 의도도 있다. 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회원들의 유니폼에 '농업은 생명산업'이란 구호를 새겨 넣는 것 역시 '농진청' 홍보를 위해서다. 회원들에게는 마라톤을 통해 건강을 관리하도록 하고, 농진청으로서는 활동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노린 셈이다.

마라톤 잘하는 직원이 실적도 좋아

현재 동호를 이끌고 있는 김용환(56) 회장은 "마라톤 활동을 열심히 하는 직원일수록 연구에도 더욱 열심히 한다"고 주장한다. 

"연구직은 일반적으로 운동과 거리를 두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막상 동호회를 운영해 보니 열심히 연구하는 분들이 운동도 열심히 하더군요. 운동을 열심히 하는 분들은 생활 역시 성실하다고 할까? 사실 게으르면 주말에 이렇게 나와서 운동하기 힘들죠. 이렇게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이 연구 실적이 우수한 것을 보면 얼마나 성실한지 알 수 있죠."

 농촌진흥청 마라톤 동호회

농촌진흥청 마라톤 동호회 ⓒ 장정욱


현재 농진청은 본청을 포함해 전국에 산개해 있는 산하기관까지 총 140여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20여명으로 시작한 동호회가 7년 만에 농진청 동아리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동호회로 성장한 것이다.

농진청의 기관의 성격에 맞게 대회 참가는 주로 '러브米 농촌사랑 국제마라톤대회'나 지역에서 열리는 '경기마라톤대회'에 많이 참가 하고 있다. 대회 참가를 통한 농진청을 홍보가 생각보다 높은 효과를 보인다고 한다.

"농촌에서는 농진청을 많이 알지만 도시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 분들을 상대로 마라톤 홍보가 의외로 효과가 있더라고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면 함께 달리는 일반분들이 '농진청이 뭐하는 곳이냐', '어디에 위치해 있느냐'며 많이 궁금해 하십니다. 그런 분들과 대화하면서 농진청을 많이 알리려 노력하고 있죠. 자체적으로 인지도 조사를 실시 해 봐도 마라톤 덕분에 인지도가 많이 올라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김용환 회장

보직이동 적어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어

훈련은 수원시 팔달구에 위치한 '서호공원'과 광교산 일대에서 주로 하는 데 '서호공원'의 경우 경치가 워낙 뛰어나 농진청 마라톤동호회의 자랑거리다. 평일에는 보통 20km 정도를 달리지만 대회를 앞둔 경우에는 거리를 늘려 35km까지 연습한다.

 김용환 농촌진흥청 연합 마라톤 동호회장

김용환 농촌진흥청 연합 마라톤 동호회장 ⓒ 장정욱


직장 동호회, 특히 공무원 직장 동호회의 경우 '보직이동'에 따른 회원관리의 문제점이 많은 편인데 농진청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농진청 자체가 보직이동이 많지 않은 점도 있고, 무엇보다 보직이동이 있더라도 대부분의 기관들이 수원에 밀집해 있다 보니 항상 자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연합회 형식이다 보니 소속 기관에 관계없이 함께 훈련하고 활동할 수 있는 것이다. 

2008년 농진청 존폐 논란에 '위기'

농진청 마라톤 동호회는 지난 2008년 뜻하지 않는 위기에 봉착했다. 정부가 부처 통폐합을 추진하면서 농진청이 존폐의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다행해 농진청은 농업 산업 발전에 대한 역할을 인정받아 계속 존치시키는 것으로 결정 났고, 다행히 농진청 마라톤 동호회 역시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게됐다.

2008년 일이 전화위복이 된 것일까? '사건(?)'을 치른 후 회원들의 동호회에 대한 애착은 더욱 높아졌다고 한다. 업무에 대한 열정도 깊어졌으며 '나눔'에 대한 의지도 높아졌다. 2007년 계획했던 봉사기금 적립이 2008년 '사건'을 겪으며 유야무야 됐기 때문이다. 농진청 마라톤 동호회는 다시 기금적립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해 지역에 있는 장애시설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한편, 1906년 설립된 '권업모범장'을 모태로 발족한 농촌진흥청은 1970~1980년대 보릿고개 해결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농업발전과 식량자급을 이루는 데 많은 기여를 해 왔다. 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농업' 인구가 줄어들면서, 지난 2008년에는 존폐의 위기까지 몰렸지만 현재 '농업녹색기술'을 필두로 농산업 발전을 위해 연구를 매진하고 있다.  

"24년 테니스 접고 마라톤으로 전향했죠"
달리기로 출퇴근 하는 전해익 회원
"마라톤을 하기 전까지 24년 동안 테니스를 쳤죠.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더 이상 테니스를 못하겠더라고요. 부상도 늘어나고. 그래서 마라톤을 시작했고, 지금은 테니스를 끊었죠."

전해익(58) 회원은 일주일에 1~2번은 '뛰어서' 출근을 한다. 경기도 안양에서 출발해 수원시에 위치한 농진청까지 달리면 약 15km의 거리.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마라톤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마라톤이란 게 많이 힘들지만 그만큼 완주 후의 쾌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죠. 그런 쾌감이 23년간 해 온 테니스를 과감하게 버리게 만들더라고요."

전 회원이 말하는 마라톤의 장점은 무엇보다 '상시' 즐길 수 있다는 데 있다. 테니스처럼 함께 할 '동료'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운동화 한 켤레와 걸칠 수 있는 옷 한 벌만 있으면 그만이다. 장비 마련에 많은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달릴 수 있는 '전천후' 운동인 것이다.

"처음에 나이 먹고 힘든 운동한다며 반대하던 가족들, 그리고 함께 등산이나 하자며 마라톤을 싫어했던 아내도 이제 오히려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있어요. 고마울 따름이죠. 요즘은 아내도 5km구간을 함께 달릴 정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전해익 회원

전해익 회원 ⓒ 전해익



"세상과 사람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커졌죠"
농진청 마라톤 홍일점 김둘이 회원
"마라톤은 건강한 두 다리가 있어야 달릴 수 있는 운동이잖아요. 달리고 싶어도 달릴 수 없는 장애인들을 보면 건강한 제 자신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죠. 아마 42km라는 긴 거리를 달리면서 많이 생각하고, 자기를 돌아보다 보니 세상에 대한, 사회에 대한, 사람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커지게 된 것 같습니다."

김둘이(44) 회원은 농진청에서 벼와 감자 등 식물들의 유전자를 연구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연구실에서 '샬레'와 '비커'를 놓고 고군분투하는 전형적인 '박사님'이다. 좁은 연구실에서 연구과제와 씨름하다 보니 '운동'은 당연히 '남의 일'이었다.

게다가 김 회원은 본인 스스로 체격도 워낙 작고 건강도 별로 좋은 편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마라톤과 같은 운동은 꿈에서도 생각해 본 적 없다고 한다. 그러던 그녀가 7년 전 농진청에 마라톤 동호회가 생기자 겁 없이 덜컥 마라톤에 도전장을 던졌고, 지금은 10여 차례에 이르는 완주 기록을 갖고 있다.

김 회원은 "마라톤을 통해 소심했던 성격도 많이 고쳤고 자신감도 많이 얻었다"며 "긍정의 마인드가 생기니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김둘이 회원

김둘이 회원 ⓒ 김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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